"의료 AI·디지털치료기기, 기술만으로 부족…고품질 데이터·인허가·수가 진입 등 의료현장 채택 위한 설계 필요"
(왼쪽부터) 카카오벤처스 김치원 부대표, 정주연 선임심사역
[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이 성장하는 가운데, 카카오벤처스는 뇌신경, 심전도 등 특화된 영역에서 독자적 기술과 시장 전략을 갖춘 극초기 기업에 투자하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노바원어드바이저(Nova One Advisor)에 따르면 2023년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2408억5000만달러(약 332조3000억원)다. 2024년에서 2033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21.11%로, 약 1조6351억1000만달러(2255조8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러한 흐름에 카카오벤처스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갖춘 극초기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카카오벤처스는 15일 서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브라운백 미팅'을 개최해 디지털치료기기 투자 이유와 전망에 대해 발표했다.
김치원 부대표는 "의료 파운데이션 모델이 발전해도 의료 분야는 특수한 데이터와 까다로운 인허가 과정 때문에 전문 기업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라며 "이모코그와 알피처럼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뢰성과 확장 가능성을 입증한 팀들이 앞으로 의료 AI 생태계 표준을 만들어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카카오벤처스 김치원 부대표가 '카카오벤처스에서 생각하는 의료AI, 디지털치료기기 투자'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의료AI·디지털치료기기, 투자 과제는? 데이터 확보, 인허가, 수가 등
김치원 부대표는 헬스케어 시장은 단순히 기기만 잘 만들어서 성공하기 어렵다며, 기술적 유망성을 넘어 규제와 건강보험, 현장 채택, 유통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부대표는 "많은 기업이 의료에 적용할 수 있는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겠다고 한다. 파운데이션 모델이 의료도 바꿔놓을 것이란 기대가 있지만, 실제로 임상 현장에 안착하는 데 복잡한 요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 AI 상용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 ▲고품질 데이터 확보 ▲인허가 ▲건강보험 수가 문제를 꼽았다.
김 부대표는 "의료 AI는 단순히 가슴 엑스레이만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CT나 MRI 같은 이종 데이터 간 연계 학습이 필요한데, 이는 동일한 환자의 복합 데이터를 정밀하게 수집해야 가능한 일"이라며 "공공데이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병원 내 정밀한 진료 기록, 시계열 변화, 결과 중심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영국이 의료 환경에서의 생성형 AI를 더 엄격하게 관리·감독해 도입·운용한다는 발표를 언급하며 "AI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규제와 요구가 증가한다. 인허가 이슈는 유동적"이라고 했다.
김 부대표는 건강보험 수가 문제를 언급하며, "AI 개발 기업이 각국의 규제기관과 일일이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구조는 글로벌 빅테크가 쉽게 뛰어들기 어려운 이유"라고 밝혔다.
김 부대표는 "헬스케어는 기본적으로 로컬 비즈니스다. 국가 혹은 지역 단위로 인허가와 보험 적용이 이뤄지는 만큼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 미국 식품의약국(FDA), 유럽 규제기관 등에 들어가서 하나씩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도도 국가마다 달라 삼성전자나 구글 같은 다품종 대량생산 기업에게는 번거로운 절차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치료기기 시장도 만만치 않다. 김 부대표는 "의사와 환자, 비용 지불자가 다른 의료 시장 구조에서 디지털치료기기는 세 그룹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유일한 제품군"이라며 "일반 의료기기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다. 이 때문에 허가를 받고도 사용되지 않는 제품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디지털치료기기 회사의 해외 진출 난이도가 높다. 특히 정신과 영역이 높다. 정신과 디지털치료기기는 인지행동치료(CBT)에 기반을 두는데, 국가와 언어, 문화별 차이가 크다. 또한 이미 해외에서는 다수의 선도 회사가 정신과 제품을 개발·시판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의료 AI와 디지털치료기기 시장 진입 어려움을 나열하면서도 "(이모코그와 알피는) 다르다고 봤다"며 투자 이유를 설명했다.
김 부대표는 "치매는 시장이 크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영역이다. (이모코그는) 앱만 만든 게 아니라 MRI에서 실제로 뇌 변화가 일어났다는 근거를 갖췄다. 이뿐 아니라 병·의원 유통 채널까지 구축해 투자했다"며 "제품이 나왔다고 의료 현장이 알아서 써주지 않는데, 이를 고려해 채널을 미리 확보한 것이다. 이런 경우는 드물다"고 평가했다.
이어 "알피는 심전도 데이터와 다양한 복잡한 검사 결과를 결합해 의사 분석보다 높은 정확도를 가질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며 "한국에서 가장 단기간에 인허가받고 인정비급여까지 받은 사례"라고 덧붙였다.
사진=카카오벤처스 정주연 선임심사역 발표 자료.
"신약과 디지털 헬스케어는 다르다…인허가 이후가 진짜 시작"
정주연 선임심사역은 "디지털 헬스케어는 신약처럼 인허가를 받으면 판매 가능한 게 아니라, 그때부터 제품 설득과 유통, 병원 채택 과정이 시작된다"며 "인허가 획득은 시작일 뿐, 실제 의료 현장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과제다. 기술적 우수성을 넘어 임상 현장에서의 실용성과 확산 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심사역은 "신약은 1~3상 임상까지 마친 후 인허가가 이뤄지기 때문에 완성도나 기대 수준이 명확하지만,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은 제한된 연구, 후향적 분석, 소규모 임상으로도 인허가가 가능하다"며 "같은 '허가'라도 의미가 다르다"고 말했다.
이에 그는 인허가 이후 제품이 현장에 안착하려면 ▲현장 도입 준비 및 사용 유도 ▲리얼월드데이터(RWD) 확보 ▲보험·수가 제도 진입까지 이르는 전 과정을 사전에 전략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선임심사역은 "2020년 이후 의료 AI 시장에 뛰어든 기업은 (현장 도입) 설득 기간을 2년으로 단축시켜야 한다. 과거에는 3~5년이 걸렸지만, 앞으로는 빠르게 실질적 성과를 내야 한다"며 "빠르게 설득하기 위해서는 기존 시스템과의 호환성을 확보하고 의료진 교육을 사전에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그는 "1차적으로 물 끓이기 전략이 필요하다. 병원에 있는 의료진에게 미리 노출시켜야 한다. 의료 AI의 가치 입증이 어렵다는 의견이 있지만, 실제로 사용해보면 가치를 알 수 있다"며 "또한 키오피니언 리더와 좋은 연구결과를 제공하면 물에 떨어뜨린 아로마 오일이 사방으로 퍼지듯 쉽게 바이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약과 달리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은 환경에 따라 사용성과 효과가 바뀌기 때문에 시판후감시(Post-market surveillance, PMS)가 아닌 시판후재검증(Post-market re-validation) 과정이 중요하다"며 "임상시험 데이터, 실제 사용 데이터를 확보해 비용 효과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정 심사역은 "사용을 유도하고 설득하기 위한 데이터를 잘 모으면 비급여 수가 등 임시 수가를 설정할 수 있다"며 "마지막 협상 시 헬스케어 제품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것들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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