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1.30 17:45최종 업데이트 24.01.3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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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최고의 시설에서 최고의 의사에게 진료받고 싶어한다

[칼럼]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전 대한의사협회장

사진=챗GPT가 그려준 의사들의 시위 장면. 

[메디게이트뉴스] 나는 군사전략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자세히 모르지만 공격과 방어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적군에 대한 방어선을 세울 때 최전방에 주력부대를 배치하지 않는 것도 상식이다. 1차, 2차, 3차 방어선을 구축하고 각각의 방어선이 깨질 때마다 좀더 집중된 자원을 투입해서 방어해야 한다.

최고의 주력부대를 최전선에 방어부대로 배치해서 집중 포화에 노출시키면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가 없다. 1차 방어선이 최종 방어선이 되는 방어전략이 성공할 것이라고 믿으면 어리석다고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회가 질병을 막아내는 과정은 군부대가 적군을 방어하는 것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군사방어전략과 유사하게 의료 시스템을 구축한다. 군부대에서 최전선에 초병을 배치하듯이 의료시스템도 최전선에는 자원이 집중되지 않은 의사 개인(동네의원)을 배치해서 일차적으로 질병을 상대하게 한다. 

인간의 몸을 통해서 나타나는 질병은 매우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가 아니면 질병의 경중을 파악하기 힘들다. 그래서 환자들은 질병의 본질이 아니라 겉으로 나타나는 피상적인 증상을 보고 스스로를 판단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이 자신이 제일 중하고 급한 환자라고 생각한다. 

1차 방어선에서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파악해서 홀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알아서 해결하고 혼자서 해결하지 어려운 환자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2차 방어선, 3차 방어선으로 인도하는 것이 진료전달체계이고 그 핵심에 게이트 키퍼라고 부르는 1차 의사가 존재한다. 그렇게 한번 걸러진 환자를 상대하는 2차 방어선, 3차 방어선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집중된 자원으로 질병과 싸울 수 있게 된다. 이런 기본적인 개념이 한국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의료자원이 집중된 대형병원은 거기에 걸 맞는 중환자들만 상대해야 한다. 그게 의료기관을 1차, 2차, 3차로 분류하는 기본 개념이다. 진입의 문턱이 제거되면 환자들은 당연히 같은 값이면 크고 시설 좋은 곳을 찾게 마련이다. 그것은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다. 누구나 자신의 몸을 그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크고 시설 좋은 곳에서 최고의 진료를 받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부산에서 상해를 당해도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그러한 행동을 사회자원의 낭비로 인식한다. 그래서 제도적으로 여러 문턱을 도입해서 철저하게 환자가 아닌 의사의 판단 아래 환자들이 치료받으러 갈 곳을 배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설명해야 하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나를 슬프게 한다. 

며칠 전 ‘상급종합병원에 갔는데 중증도가 낮으면 지역병원으로 보낸다’는 보도가 있었다. 복지부에서 중증 진료체계 강화를 위한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상급종합병원 3곳을 대상으로 상급종합병원을 방문한 환자 중 중증도가 낮은 환자는 지역의료기관으로 돌려보내 그곳에서 진료받게 한다는 정책이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럴 듯한 정책처럼 들리겠지만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어떻게 한 나라의 의료체계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부서에서 저런 정책이 나올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건 마치 최고의 주력부대(상급종합병원)을 최전선에 배치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최전선에 주력부대를 배치해서 모든 적군(질병)을 상대하게 하는데 그 중에 약한 적군은 뒤에서 대기하는 후방부대로 보내 거기서 상대하게 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진료전달체계에 대한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거라도 감지덕지하라는 말인가?

현재 대한민국의 보건복지부 장관은 일본 의사회가 의사증원에 반대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했던 일본 의사회의 관계자가 했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5,6년전쯤 일본 의사회가 한국을 방문했는데, 당시 그들은  인구 감소에 따른 환자 감소가 일본 의사회의 최대 현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정부와 의사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환자 감소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매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의사를 위한 정책을 같이 고민한다는 말이다. 

현재 한국은 20년째 의사당 환자수가 감소하는 나라이다. 그런데도 지난 20년 동안 단 한번이라도 정부가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가? 환자 감소를 견디지 못하고 전문의 간판을 뗀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이 6277곳까지 늘어날 때까지 보건복지부가 단 한번이라도 그 실상이라도 파악해보려고 했던 적이 있었는가? 굳건한 신뢰관계가 형성된 나라의 경우를 예로 들고 오는 우를 범하면서까지 한국의 의사들을 욕보이지 마시라. 

의료를 멈춰 세워야 의료가 제대로 갈 수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멈춰 세워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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