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파마들, 혁신 파이프라인의 31% 중국서 도입…한국 역시 발맞추려면 규제 혁신 및 임상시험 효율화 시급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새로운 혁신 치료제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을 찾는 다국적 제약사가 늘고, 거래 규모도 점자 확대되면서 중국이 제약바이오 라이선스 거래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투자은행 스티펠(Stifel)에 따르면 2024년 해외 주요 제약사는 혁신 파이프라인 자산의 31%를 중국에서 도입했다. 올해 역시 로슈(Roche), MSD,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 화이자(Pfizer) 등 빅파마들이 연초부터 10억 달러(약 1조3700억 원)가 넘는 대규모 거래를 대거 진행했다.
중국 정부가 바이오기술을 전략적 우선순위로 삼은 지 2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중국에 뒤처질 수 있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 벨퍼 센터(Belfer Center)는 '핵심 및 신흥 기술 지수' 보고서에서 중국은 바이오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가장 빠르게 추월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미국과 유사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의회 자문기구인 신흥 바이오기술 국가안보위원회(NSCEB)는 4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향후 3년 동안 신속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뒤처질 위험이 있으며, 결코 회복할 수 없는 좌절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이밸류에이트(Evaluate)에 따르면 업계 전체 임상 파이프라인에서 최소 5분의 1은 중국 기업이 개발한 프로그램이 차지하고 있다. 항체약물접합체(ADC)와 이중특이항체, 키메라 항원 수용체 T(CAR-T) 세포 치료제 임상 파이프라인의 절반 이상은 중국에서 시작됐거나 중국 기업과의 협력으로 개발됐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연구원은 이러한 현황에 대해 "중국 제약바이오산업은 미국 다음으로 큰 시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최근 몇 년 사이 글로벌 라이선스 거래에서 미국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발전 속도는 빠를 뿐 아니라 전략적이며, 구조적으로 강력한 성장 기반을 갖춘 모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정부 주도의 강력한 정책지원 ▲풍부한 인력과 시장 규모 ▲위탁개발생산(CDMO)·임상시험수탁(CRO) 산업 기반의 성장 ▲해외 투자 및 기술 제휴 등을 꼽았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는 보고서에서 "지난 20년간 중국의 제약산업은 서구 기업에서 돌아온 경험 많은 임원들의 유입,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교육을 받은 전문가의 꾸준한 공급, 강력한 정부 지원의 혜택을 받았다"면서 "이를 통해 중국은 위탁 연구, 개발 및 제조 조직의 확고한 선도적 위치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시장조사기업 글로벌데이터(GlobalData) 자료를 보면, 대형 제약사와 중국 바이오제약 기업 간 라이선스 거래 규모는 2023년 166억 달러에서 2024년 315억 달러로 66% 증가했다. 미국 제약기업만 해도 이미 올해 6월 기준 중국 기업과 계약 14건을 체결했고 그 규모는 183억 달러에 달한다.
최근 사례를 보면 로슈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새해 첫 시작을 중국 바이오 기업과의 항체약물접합체(ADC) 라이선스 계약으로 열었다. 이노벤트 바이오로직스(Innovent Biologics)의 1상 단계 DLL3 표적 ADC 후보물질 IBI3009을 개발하기 위해 선급금 8000만 달러에 마일스톤으로 최대 10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3월 하버 바이오메드(Harbour BioMed)와 차세대 다중특이성 항체를 개발하기 위해 계약금 1억7500만 달러에 마일스톤 최대 44억 달러를, 시네론 바이오(Syneron Bio)와 거대고리형 펩타이드(macrocyclic peptides)를 개발하기 위해 계약금 7500만 달러와 최대 34억 달러의 마일스톤을 지급하는 계약을 연이어 체결했다. 동시에 25억 달러를 투자해 베이징에 새로운 글로벌 전략 센터를 설립하기로 하는 등 한달 동안 100억 달러 이상 투자를 단행했다.
6월에는 CSPC 제약(CSPC Pharmaceutical)과 AI 기반 연구에 중점을 둔 전략적 협업을 체결했다. 만성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여러 표적에 대한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선급금 1억1000만 달러와, 개발 마일스톤 최대 16억2000만 달러, 매출 기반 조건부 지급금 최대 36억 달러를 약속했다.
화이자는 5월 3S바이오(3SBio)와 PD-1/VEGF 이중특이항체 SSGJ-707를 개발하기 위해 선급금 12억5000만 달러에 마일스톤으로 최대 45억 달러를 지급하는 6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해 화제를 모았다. 이는 최근 진행된 중국 라이선스 계약 중 최대 규모다.
이 외에도 MSD는 중국 항서제약(Jiangsu Hengrui Pharmaceuticals)의 지질 저하제 개발에 최대 20억 달러, 노보 노디스크는 유나이티드 래버러토리스(United Laboratories)의 비만 치료제 개발에 최대 2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처럼 중국 기업의 라이선스 계약은 기존의 저분자 약물에에서 나아가 ADC, 다중항체 등 퍼스트인클래스(first-in-class) 신약으로 전환되고 있다. 전임상 또는 1상 단계 자산에 대한 거래가 크게 늘어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바이오경제연구센터는 "초기 단계 거래가 늘어난 것은 서구 기업들 사이에서 중국 신약 혁신에 대한 신뢰가 커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대형 제약사들의 특허 절벽 등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중국의 기술수출 증가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진흥원 연구원은 한국 역시 이런 발전 속도에 맞추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과제는 규제 혁신 및 임상시험의 효율화라고 했다. 그는 "중국은 2017년 이후 규제 개혁을 통해 임상 승인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글로벌 시장 진출 시기를 앞당겼다"면서 "임상시험 승인을 간소화하고 세계 트렌드에 맞추어 비임상 데이터를 대체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등 시뮬레이션 활용 허용 범위를 확대해 나가면 대한민국의 제약바이오산업 발전 속도를 향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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