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화된 기준과 가이드라인 정립, 중장기적인 연계형 정책 설계, 전략적 우선순위 설정 등 필요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국내에서 인공지능(AI) 신약개발 관련 투자가 확대되고 있음에도, 글로벌 대비 기술력과 산업화 성과 측면에서 해외 주요국가들과 격차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에서 다양한 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논문 영향력, 특허의 글로벌 경쟁력, AI 플랫폼 기반 파이프라인 성과 등에서 선도국 대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바이오협회가 15일 'AI기반 신약개발 산업화 전략' 정책 보고서를 발표해 각국 사례를 공유하고 이들을 따라잡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정책적 방향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AI 기술이 의약품 개발과 규제 전반에 급속히 도입되면서 이에 대응하는 새로운 규제체계 마련이 중요한 정책과제로 부상했다"면서 "각국 규제 당국은 AI 모델을 평가하고 검증하기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식품의약국(FDA)을 중심으로 AI 기반 의약품 심사·평가 파일럿과 관련 지침 발간 등을 진행하고 있다. AI 지원 과학적 심사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단순한 기술 시연이 아닌 실제 심사에서의 실효성을 입증했으며, 전 부서에 AI 기반 도구를 배포했다. 유럽 역시 세계 최초로 AI법안을 도입하고 유럽의약품청(EMA)의 의료제품 규제 시 AI 적용에 대한 페이퍼를 발표했다.
미국 스타라이트, 영국 오픈바인드 등 통해 주요국들 AI 신약개발 전폭 지원
해외 주요국들은 정책적인 측면에서도 AI 신약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AI 실행 계획을 발표하고, AI 산업 혁신을 위한 규제 완화, 기술 표준 마련, 규제 샌드박스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 AI 인프라 구축 사업인 스타게이트에 약 700조원을 투자, 2025년부터 2029년까지 4년 동안 데이터 센터와 반도체 생산기반, 클라우드 서비스 구축 등 미국전역에 새로운 AI 인프라를 구축할 예정이다.
영국은 AI 신약개발 분야의 세계적 리더가 되기 위해 '오픈바인드(OpenBind)' 컨소시엄을 발표했다. 실험 기술을 활용해 약물이 신체의 구성 요소인 단백질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세계 최대 규모의 데이터를 수집할 계획이다. 지난 50년간 수집된 데이터보다 20배 더 많은 양의 데이터가 수집될 예정이며 소버린 AI 유닛(Sovereign AI Unit)에서 최대 800만 파운드를 투자 지원한다.
중국은 '제약산업 디지털 전환 추진계획(2025~2030)'에서 AI 신약개발을 공식적인 우선순위로 지정했다. 베이징시와 상하이시도 AI 기술 기반 의약품 관련 내용을 포함한 정책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다양한 정책이 발표되고 있다. 8월 대통령 행정부가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하면서 AI 대전환·초혁신경제 30대 선도 프로젝트에 'K-바이오 의약품'을 포함시켰다. 또한 국가바이오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바이오 R&D 10대 중점분야 중 하나로 AI 신약개발을 제시했다. AI 데이터 기반 최적의 신약 후보물질 발굴, 설계 및 유효성 검증 등 전주기 연계 지원을 목표한다. 다만 보고서는 글로벌 대비 양적, 질적 측면에서 연구 경쟁력이 미흡하며 경쟁력 미확보된 상황이라고 한계를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합성생물학 등 주요 바이오기술은 선진국 대비 70~80% 수준이고, 양적 측면에서 논문 수는 6위, 질적 측면에서 RCR(Relative Citation Ratio) 지표값은 최근 3년 평균치 기준 5위 정도다. 특허출원 기준으로 한국은 데이터 프로세싱, 단백질 구조예측 및 분야예측 분야에서 평균 이상의 점유율 확보했으나 미국 특허청에 등록된 특허가 없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기술경쟁력 확보가 미흡하다.
국내 투자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AI 신약개발 생태계 초기 단계
국가별 사례를 보면 미국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엔비디아, 세일즈포스 등 주요 기술 기업들이 이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며 발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바이오 기업들 역시 AI를 활용해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파트너십과 자체 플랫폼 개발을 통해 본격적으로 산업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으로 인실리코 메디슨(Insilico Medicine), 리커젼 파마슈티컬스(Recursion Pharmaceuticals), 슈뢰딩거(Schrödinger) 등이 있다.
중국은 2025년 상반기 기준 제약 기업들이 기술수출 계약을 잇달아 체결했는데, 그 규모가 660억 달러(약 89조 원)에 이르렀다. CSPC 파마슈티컬스(CSPC Pharmaceuticals)는 영국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와, 크리스탈파이(XTalPi)는 미국 도브트리(DoveTree)와, 장쑤헝루이제약(Jiangsu Hengrui Pharmaceuticals)는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각각 계약을 맺었다.
국내에서도 JW중외제약과 대웅제약, SK바이오팜, 갤럭스, 온코크로스, 파로스아이바이오, 신테카바이오 등 여러 제약 및 바이오 기업들이 AI 신약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보고서는 "국내에서도 투자가 많이 이뤄지고 있으나 AI 신약개발 생태계는 아직 초기 단계"면서 AI 신약개발 산업화 전략 방안으로 5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AI 신약개발 데이터 활용 및 신뢰성 평가에 대한 표준화된 기준과 가이드라인 정립이 필요하다. R&D에서 사업화까지 연결되는 중장기적인 연계형 정책 설계도 있어야 한다. 더불어 AI와 바이오분야의 기술을 동시에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현장 중심의 '바이오-AI 융합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교육·훈련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국내에 특화된 AI 바이오 영역에 대한 전략적 우선순위 설정이 필요하며, AI 신약개발과 관련 부처 간 거버넌스를 일원화해 전주기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보고서는 "신약개발 전 과정에서 AI가 활용될 수 있는 영역 중 우리나라가 타국 대비 특화된 영역으로 우선적으로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AI 신약개발 기업별 추상적인 특징이 이나니 특장점을 명확하게 구분해, 핵심기술과 사업모델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AI 기반 신약개발 성과물은 R&D-규제-임상-사업화 단계에서 소관 부처의 별도 관리 체계가 적용되고 있어 정책 정합성이 부족하고 책임소재가 불명확하다"면서 "제품의 안전성·효과성 평가와 실제 임상·의료현장에서의 활용은 긴밀히 연계돼야 하며 전주기적 관점에서 일관된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