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다시 닥칠 수 있는 의료대란 위기...정부는 의대 증원 발표 전에 의료계와 끝장 토론에 나서라
[칼럼] 김재연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
사진=31일 오후 5시 대한의사협회 지하 1층 강당에서 진행된 '전국의사대표자대회' 장면.
[메디게이트뉴스] 대한의사협회는 궐기대회 이후 투쟁의 기치를 올렸으나, 건정심 의대 증원 결정전의 투쟁은 구체적인 실천 방안(How)을 제시하지 못했다. 2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서 예상 밖의 의대 증원 결과가 발표 된 이후에는 그 어떤 투쟁으로도 대세를 되돌리기 어렵다.
현재 대한민국 보건의료 체계는 1977년 건강보험 제도 도입 이후 가장 파괴적인 정책 충돌 국면에 직면해 있다. 정부는 필수의료 붕괴와 지역 의료 격차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단순한 인력 수급 문제를 넘어 전문직의 자율성, 의학교육의 질 저하, 국가 보건의료 거버넌스의 신뢰성 붕괴 문제로 확산됐다.
보정심 발표 임박, 의협은 선도적인 투쟁 로드맵 제시해야 할 때
2026년에 접어들며 보정심의 운영 방식과 구성에 대한 의료계의 불신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보정심은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실질적으로 반영하기보다, 정부가 미리 설정한 '증원'이라는 결론을 정당화하는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
전문적인 기술적 논의를 '사회적 합의' 라는 명분으로 희석하려는 정부의 전략 에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특히 보정심 구성상 공급자인 의료계 의 목소리가 소수에 불과한 구조적 불균형은 갈등의 핵심이다.
정부는 인력수급추계위원회의 분석을 토대로 증원 규모를 결정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참여 전문가들은 데이터 산출 방식과 모형의 적절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보건복지부가 추계위의 12차례 논의 결과와 별개로, 보정심 회의 직전 '의대 교육 여건'을 빌미로 새로운 증원 숫자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국립대와 사립대에 따라 20~ 50%의 증원 상한선을 설정한 것은 추계위 의 과학적 근거와 무관한 행정 편의적 기준일 뿐이다. 추계위 관계자들 사이에서 "수개월간의 노력이 허사였다"는 허탈감이 확산되는 것은 정책 신뢰성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의협은 그동안 강경 대응에 대해 "보정심 결과를 지켜본 뒤 단계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신중론을 유지해 왔다. 정부 발표 수위에 맞춰 투쟁 강도를 조절하겠다는 전략이나, 이미 내부적으로는 설 명절 전후로 장외집회 신고를 마치는 등 실행 준비도 하고 있다.
이제 의협은 보정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선도적인 투쟁 로드맵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정부의 '시간 끌기' 전략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투쟁의 시점과 방식을 의협이 주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교육 여건 확보되지 않은 무리한 증원은 미래 세대에 대한 범죄행위
의대 증원의 직격탄은 교육 현장이 맞고 있다. 2024~2025년 휴학한 학생들이 2026년 혹은 2027년에 복귀할 경우, 기존 정원에 증원 인원 까지 합쳐져 수업을 듣는 이른바 '더블링' 또는 '트리플링' 현상이 예견된다. 교육 여건이 확보되지 않은 무리한 증원은 미래 세대에 대한 범죄행위다.
2024년 2월 시작된 전공의 사직과 의대생 휴학 사태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한 채 의대 교육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더구나 올해는 2024년 휴학을 선택하고 군대로 입대해 복학하지 않은 의대생들이 전역해 의대에 복학 하는 인원이 1586명의 학생과 대폭 증원된 신입생들이 2월 초 증원 인력에 복학하는 인원이 동일한 시기에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적으로 한 학년에 약 7500명의 학생이 한꺼번에 수업을 받는 것은 명백한 수용 한계 초과이자 교육 시스템의 붕괴 상태에 이르게 된다.
기존 의학교육 인프라가 연간 3058명 수준에 맞춰져 있음을 감안하면, 교육 현장의 파행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
일부 대학은 17주 분량의 커리큘럼을 단 6주간의 비대면 강의로 압축해 운영하며, '유급 없는 진급'을 위한 비정상적인 학사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교수 1인당 교육해야 할 학생 수가 기존의 4.25배까지 폭증한 대학도 나타나고 있어, 실질적인 의학 지도를 기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인원 급증은 단순히 강의실의 좌석 부족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의학 교육의 특성상 실험, 실습, 그리고 소그룹 토의(PBL)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인프라는 5000명 수준의 수용 한계를 이미 넘어선 상태다. 이는 교육의 질 저하라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예과 과정에서의 이러한 과부하는 향후 본과 진입 시 실습 병원의 수용 역량 문제로 전이될 것이 자명하다. 이는 전체적인 의료 인력 양성 체계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지방 의대의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충남대 의과대학의 경우, 2024년 1학기부터 제적 위기를 피하기 위해 가장 먼저 수업에 복귀한 24학번 학생들이 오히려 '6개월 강제 휴학'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학교 측은 당초 24학번 복귀를 독려하며 '5.5년제 도입', '특별 계절학기 개설', '25학번보다 한 학기 빠른 본과 진급' 등을 약속했으나, 최근 이를 이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충남대는 학사 규정을 이유로 2026학년도 2학기를 24학번 학생들을 위한 '교양자율이수 학기'로 안내했다. 이는 사실상 진급과 무관한 수업으로 시간을 때워야 하는 공백기로, 학생들은 이를 25학번 증원 인원과 본과 진급 시점을 맞추기 위한 '강제 휴학' 이자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특히 대학 본부를 믿고 조기에 복귀한 학생들이 이후 복귀한 학생들보다 더 큰 불이익을 당하는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교육 현장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2026년, 다시 찾아온 의료 위기, 의료 문제 해결할 마지막 기회
특히 지방 대학병원의 교수 이탈은 수도권 병원의 결원을 메우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수도권 대형 병원(Big 5)조차 교수 사직이 이어지자, 이들이 지방의 실력 있는 교수들을 영입하면서 지방 의료 체계가 무너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지방 의대생들이 양질의 임상 교육을 받을 기회를 박탈당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지역 의사 양성이라는 정부의 정책 목표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
의대 증원 갈등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보건의료 정책을 누가, 어떤 근거로 결정하는가'라는 민주적 거버넌스의 문제다.
정부는 보정심과 추계위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책 신뢰 회복을 위해 첫째, 정치적 논리를 배제하고 독립적인 과학적 추계 기구를 운영해야 한다. 둘째,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교육의 질이 담보되는 범위 내에서 증원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
2026년의 의료 위기는 역설적으로 대한민국 의료 체계의 묵은 과제들을 해결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의학교육 붕괴와 의료의 중단 여부는 정부의 최종선택에 달려있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 생명 보호' 라는 본연의 가치 아래 의대증원 최종발표 전에 진정성 있는 끝장 토론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