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연이어 글로벌 제약사와 대규모 기술이전 계약 체결에 성공하면서 국내 기업의 플랫폼 기술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바이오 플랫폼 기술은 여러 질환과 표적에 적용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을 말한다. 다양한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할 수 있어 확장성이 높고, 기존 의약품의 효능과 안전성, 편의성을 개선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로슈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후보물질 간테네루맙(gantenerumab)은 효능 문제로 3상 임상시험에 실패해 개발이 중단됐다. 그러나 여기에 혈액뇌장벽(BBB) 투과율을 높이는 셔틀을 붙여 새로운 이중항체 '트론티네맙(trontinemab)'을 만들었고, 현재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이 외에도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활용됐던 mRNA 플랫폼, 항체약물접합체(ADC) 플랫폼, 경구용 약물 전달 플랫폼 등 다양한 플랫폼 기술이 있다.
국내 기업으로는 최근 에이비엘바이오(ABLbio)가 BBB 셔틀 플랫폼인 그랩바디-B(Grabody-B)를 기반으로 GSK에 이어 일라이 릴리(Eli Lilly and Company)와 각각 신규 후부몰질을 개발하는 대규모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해 화제를 모았다.
21일 메디게이트뉴스는 올해 체결된 계약을 중심으로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어떤 플랫폼 기술을 바탕으로 신약 개발에 전념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에이비엘바이오, 이중항체 플랫폼 그랩바디 기반 파이프라인 확장 중
에이비엘바이오는 이중항체 플랫폼 '그랩바디(Grabody)'를 기반으로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개발하고 있다. 그랩바디-T는 4-1BB 기반 면역항암제 플랫폼으로, 면역세포의 4-1BB 수용체와 암세포의 종양 항원에 동시에 결합해 T세포 활성화시킨다. 유한양행, 중국 아이맵(I-Mab)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후보물질을 개발 중이다.
올해 빅딜을 이끌어낸 것은 그랩바디-B다. 이 플랫폼은 BBB를 효율적으로 통과시키기 위한 셔틀 역할을 하는 기술이다. 최근 항체뿐 아니라 소간섭 리보핵산(siRNA) 같은 다른 모달리티에 적용될 수 있고, 효소나 근육, 지방으로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음이 확인되며 신약 개발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4월 GSK는 그랩바디-B를 활용해 새로운 신경퇴행성질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다중 프로그램 계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siRNA,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Oligonucleotide) 또는 폴리뉴클레오타이드(Polynucleotide), 항체 등 다양한 치료 기전을 아우르는 신규 타깃 치료제 개발에 협력할 예정이다. 계약 규모는 최대 21억5210만 파운드(약 28억1200만 달러)에 달한다.
릴리와도 26억200만 달러 규모에 달하는 계약을 체결햇으며, 그랩바디 플랫폼을 활용해 다양한 모달리티 기반 복수의 치료제를 개발할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릴리로부터 지분투자를 받기로 계약했다. 투자를 통해 확보한 220억 원은 그랩바디 플랫폼과 이중항체 ADC 등 핵심 기술 연구 개발에 사용된다.
에이비엘바이오 이상훈 대표는 기업간담회에서 "그랩바디-B 플랫폼은 이미 글로벌 빅파마들을 통해 검증된 플랫폼이고, 내년 JP 모건 이후부터 새로운 파트너십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할 예정이다"면서 "그랩바디-T 기반 파이프라인인 ABL111과 ABL503 등에서도 지속해서 좋은 데이터를 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알지노믹스, RNA 편집 플랫폼으로 릴리와 유전성 난청 치료제 개발
알지노믹스(Rznomics)는 독자적인 '트랜스 스플라이싱 라이보자임' 플랫폼을 기반으로 RNA 편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리보자임(Ribozyme)은 리보핵산(RNA)의 'ribo'와 효소의 'zyme'의 합성어로 효소 기능을 하는 RNA를 말한다. RNA 치환효소(Trans-splicing Ribozyme)는 자기 자신을 잘라내고 옆에 있는 RNA와 연결시키는, 인위적으로 별개의 RNA를 합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알지노믹스의 플랫폼은 RNA로 된 효소를 통해 질병 관련 RNA를 잘라 없애고, 없어진 부위를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는 RNA로 치환하는 기술이다.
질환 관련 RNA를 특이적으로 표적하기 때문에 의약품의 타깃이 되지 못하는(non-druggable) 타깃을 표적화할 수 있다. 유전자를 무조건 발현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표적 RNA 발현 양에 비례해 치료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며, DNA 벡터를 툴로 이용하기 때문에 세포 내에서 지속해서 발현양을 조절할 수 있다.
이러한 플랫폼을 활용해 유전성 난청질환에 대한 RNA 편집 치료제의 발굴과 개발을 위해 5월 릴리와 글로벌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상 모든 옵션을 행사할 경우 총 계약 가치는 약 1조9000억 원 이상에 달한다.
알테오젠, ALT-B4 기반 제품 상업화 단계 진입…AZ와도 계약
알테오젠(Alteogen)은 피하주사제형 치료제 개발을 위한 하이브로자임(Hybrozyme) 플랫폼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인간 히알루로니다제(hyaluronidase)에 하이브로자임 기술을 적용해 효소 활성과 열 안정성이 증가한 신규 인간 히알루로니다제 ALT-B4를 개발했다. ALT-B4는 정맥주사(IV)에서 피하주사(SC) 방식으로 약물전달 방식을 변경할 수 있다.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는 3월 자회사인 메드이뮨(MedImmune) 영국 및 미국 법인을 통해 알테오젠과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각각 항암치료제 2개 품목과 1개 품목에 대한 SC 개발 및 상업화에 전 세계 독점권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계약 규모는 각 7억5000만 달러, 6억 달러였다.
특히 ALT-B4가 활용된 첫 제품이 상업화 단계에 진입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기대가 크다.
알테오젠은 2020년 MSD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며 면역관문억제제 키트루다(Keytruda, 성분명 펨브롤리주맙)에 활용할 수 있도록 ALT-B4 사용권을 부여했다. 올해 9월 '키트루다 큐렉스(Keytruda Qlex)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고 시판을 시작했고, 19일 유럽연합(EU)에서 '키트루다 SC'가 품목허가를 받아 순차적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이는 진행 중인 해외 파트너사와의 기술수출 및 판권계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트리오어, TROCAD 플랫폼 기술로 셀트리온과 차세대 ADC 개발 나서
국내 기업 간의 오픈 이노베이션에서도 5000억 원이 넘는 대형 거래가 진행됐다. 항암제 개발 스타트업인 트리오어(TriOar)는 19일 셀트리온(Celltrion)과 플랫폼 기술이전 및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트리오어는 리가켐바이오와 인투셀의 창업 멤버였던 우성호 박사가 2021년 설립한 회사다. 항체약물접합체(ADC)를 포함한 항체 기반 치료제에 동시 또는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인 TROCAD와 차세대 ADC 링커 시스템 TROSIG을 보유하고 있다.
TROCAD(TriOar’s Conditionally Activatable Domain)는 암 조직에는 약물이 더 정확하게 도달하도록 하고, 정상 세포에는 불필요하게 결합하지 않도록 차단하는 이중 기능을 갖췄다. 이를 통해 암 병변으로의 약물 전달 효율을 극대화하면서도 정상 세포와의 결합을 차단하여 독성을 감소시켜, 치료 지수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으로 기대된다.
셀트리온은 이 기술을 활용해 6개 타깃을 대상으로 차세대 ADC 개발과 상업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개발 마일스톤 최대 2억3100만 달러, 판매 마일스톤 최대 1억2500만 달러 등 6개 타깃의 실시권을 모두 행사할 경우 계약 규모는 총 3억5600만 달러에 달한다.
트리오어 측은 "이번 계약으로 트리오어의 플랫폼 기술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평가된다"면서 "양사는 향후 해당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신약 개발 협력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