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3.18 07:27최종 업데이트 22.03.18 07:29

제보

"윤석열 당선인께, 선의의 의료행위 이어가려면 '의료분쟁처리특례법' 제정 필요합니다"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보건의료정책]⑩ 이로운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부대변인·인하대병원 영상의학과 진료교수

윤석열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보건의료정책 

제 20대 대통령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임기는 올해 5월 10일부터 5년간입니다. 윤 당선인은 코로나 대응체계 전면개편과 필수의료 국가 책임제를 주요 보건의료 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선거 이전 의료계 전현직 리더들의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agenda)'에 이어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보건의료정책' 릴레이 칼럼을 게재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본격적으로 출범하기에 앞서 의료계가 꼭 필요한 보건의료정책을 다시 한 번 선제적으로 제안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①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 "전문가 의견이 반영되는 보건의료정책 수립"
②이철호 전 의협 대의원회 의장 "코로나 최일선에서 의료진의 애로사항과 헌신 헤아리길"
③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 "국민 생명 지키는 필수의료 살리기가 최우선"
④박성민 의협 대의원회 의장 "직역 간 편가르기 대신 화합과 통합의 사회를"
⑤민복기 의협 대선기획단장 "국민을 위해 의사가 소신 진료할 수 있는 의료환경"
⑥안덕선 전 의료정책연구소장 "저수가 정책기조 버리고 적정한 의료비 지출을"
⑦박홍준 전 서울시의사회장 "의료는 산업발전 수단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
⑧김재연 산부인과의사회장 "전문가 배제된 보건의료정책, 국민들에게 비극과 참사"
⑨서연주 전공의협의회 수련이사 "합리적인 보건의료체계와 의료인력 양성 시스템"
⑩이로운 의협 홍보이사 "선의의 의료행위 위한 의료분쟁특례법 제정"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어려운 시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다하고 고사했던 환자를 내가 받았던 이유는 그저 ‘살리고 싶다’는 하나의 일념에서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혈관과 신경이 바늘 끝을 스쳐 지나갔다. 환자의 바이탈이 약간 흔들렸을 때, 등 뒤에는 식은 땀이 흘렀고,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가족들의 눈빛이 떠올랐다. 내가 의도치 않아도 결과가 좋지 않다면, 내일 내가 있어야 될 장소는 병원이 아닌 구치소의 철창 안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항상 나를 움츠러 들게 했다. 나는 그렇게 교도소 담벼락 위에서 외줄 타기를 하듯 위태위태한 시술을 진행해 나갔다. 의사인 나 자신에 대한 그 어떤 보호도 없이. -어떤 젊은 의과대학 교수의 일상 中-

최근 의료사고와 관련해 의사들이 법정 구속되거나 실형이 선고 되는 등 과도한 법적 처벌 사례에 대해 의료계내에서 놀라움과 아쉬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악의적인 의도가 아닌 선의로 환자를 진료한 의사에 대해 실형이 선고되고, 법정 구속이 이뤄지는 데에 대해 의료계는 구속을 피하기 위한 방어 진료와 소극적 진료가 늘 것이라는 여론이 생겨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이전에 있었던 장정결제 투여 관련 환자 사망사건에서의 의료진 법정 구속에 대해 다시 한번 되짚어 보고 싶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해당 교수님이 한 가정과 어린 자녀를 둔 여성 의사로 신변에 문제가 없고 도주의 우려는 더더욱 없음에도 우선 의사의 의료행위로 인해 의료과실이나 사망, 또는 이에 준하는 치명적인 결과가 나왔을 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강력한 처벌을 가해야 된다는 단순한 생각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형사 처벌은 행동에 명백한 잘못이 있을 때 처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번 장 정결제 투여 관련 사망 사건은 의료진이 환자를 살리겠다는 의도가 있는 진단의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대장암이 강력하게 의심되는 환자에서 진단을 위한 대장내시경을 수행하기 위한 전 처치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문제가 발생한 것인데요, 선한 의도로 의료행위를 한 것이고 고의적인 행동이 아니었음에도 구속 상태에서 재판이 이뤄진 것은 과도한 처사였다고 생각합니다.

법조 전문인으로서 평생을 보내신 당선인께서 저보다 더욱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2007년에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피의자에 대한 수사는 불구속 상태에서 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명시돼있고 이러한 불구속 수사원칙이 도입되면서 구속사유가 엄격해졌습니다. 그렇기에 불구속수사원칙 도입 이후에는 많은 형사 사건에서 사건의 중대성을 고려하더라도 ‘주거 일정,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해당 건의 경우 해당 교수님이 대학병원이라는 일정한 직장과 명확한 주거지를 가지고 있고, 두 아이의 엄마라는 도주할 가능성이 적은 안정적인 신분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구속이 결정됐습니다. 이는 누가봐도 온당치 못한 처사라고 생각하고 과도한 조치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의료사고로 환자 피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구제하고 의료인에게 보다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고의나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의료행위를 제외하고는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의료분쟁처리특례법’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지금과 같이 임상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과도한 처벌이 남발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대로 된 법안이 나오지 않으면 선한 의도로 환자를 도우는 의사들은 방어진료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또한 필수과에 대한 전공의 지원은 점점 더 감소할 것입니다. 이미 최근 전공의 지원에서도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의 필수과는 대부분 전공의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이미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게 된지 오래입니다. 

따라서 의료사고에 대한 특수성을 감안한 법률 신설이 절실하며, 이러한 법률에 대한 논의와 법률 제정을 당선인께서 인수위를 포함한 향후 보건의료정책 어젠다에 포함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이는 환자의 피해를 공정하게 구제함과 더불어 의료인을 법적 처벌에 대한 두려움에 근거한 소극적인 의료로 내몰지 않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선의를 근거로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보살피고 있는 의사들의 진료 환경 보장을 위해 ‘의료분쟁처리 특례법’을 포함한 법적인 안전 장치를 구축해 주시기를 윤석열 당선인께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께,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을 다시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면에 언급해드린 보건의료 관련 정책 뿐만 아니라, 사회 각 위치에서 묵묵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존중 받고, 이들의 의견이 국가 정책에 충실히 반영돼 국민이 행복한,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차기 정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댓글보기(0)

전체 뉴스 순위

칼럼/MG툰

English News

전체보기

유튜브

전체보기

사람들

이 게시글의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