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드텍 인사이트] 유타대병원 맥레이 교수 “기업이 직접 위원회 찾아가도 내부 수요 없으면 승인 어려워”
“의사 1명보다 2명, 진료과 전체 요구가 가장 강력”…가격·DRG·비교자료도 필수
유타대 헬스 이비인후과 브라이언 맥레이(Bryan McRae) 교수가 16일 ‘메드텍 인사이트 2026’에서 발표하고 있다.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한국 의료기기 기업이 미국 병원 시장에 진입하려면 기술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앞서 제품 도입을 요청할 현지 의사를 확보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미국 병원에서는 새로운 의료기기 도입 여부를 여러 부서가 참여하는 위원회가 결정하는 만큼, 외부 기업의 설명만으로는 심의 절차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제품을 실제로 사용할 의사가 임상적 필요성을 설명하고 병원 비용에 미치는 영향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채택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유타대 헬스(University of Utah Health) 이비인후과 브라이언 맥레이(Bryan McRae) 교수는 16일 보건복지부 주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주관으로 열린 ‘메드텍 인사이트 2026’에서 ‘미국 병원 시스템의 기술 도입 동향’을 주제로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맥레이 교수는 유타대 의료혁신센터에서 10년 이상 초기 의료기기 기업과 연구팀을 의료진에게 연결하고 제품 개발과 병원 도입을 지원해왔다.
기업이 직접 찾아가도 승인 어려워…“병원 내부에 제품 원하는 의사 있어야”
맥레이 교수에 따르면 미국 병원은 가치분석위원회(Value Analysis Committee)나 기술평가위원회(Technology Assessment Committee)를 통해 새로운 의료기기의 도입 여부를 결정한다.
위원회의 명칭과 구성은 병원마다 다르지만 구매·재무·간호·병원 행정부서와 여러 진료과 의사가 참여해 임상적 필요성과 비용, 기존 진료 절차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평가한다.
유타대병원은 연간 총비용이 5000달러 미만인 제품은 개별 진료부서가 직접 구매할 수 있다. 연간 비용이 5000달러 이상 5만달러 미만이면 가치분석위원회, 5만달러를 넘으면 고가 기술을 담당하는 기술평가위원회의 심의를 받는다.
다만 기업이 직접 위원회를 찾아와 제품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승인받기 어렵다. 병원 내부에서 해당 제품을 사용하겠다고 요청하는 의사가 있어야 본격적인 검토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맥레이 교수는 “회사가 아무리 좋은 제품을 가져와도 병원 내부에서 원하는 사람이 없다면 위원회가 승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위원회는 기업의 설명보다 실제로 제품을 사용할 의사가 왜 필요한지 설명하기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현지 의사를 확보하더라도 한 명의 지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특정 의사 개인의 선호나 요구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의사 한 명이 요청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두 명이 함께 요구하면 훨씬 설득력이 높아진다”며 “진료과 전체가 제품 도입을 요구하면 새로운 표준 진료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대부분 승인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제품 개발자나 투자자로 참여한 의사가 직접 도입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이해충돌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병원에 소속된 의사가 제품의 창업자이거나 지분을 보유했다면 이를 공개해야 하며, 독립적인 다른 의료진이 임상적 필요성을 설명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조언이다.
“승인 기술 4분의 3 병원에는 손실”…환자 가치 크면 적자 감수
병원에 재정적 이익을 주지 못한다고 해서 의료기기 도입이 반드시 거절되는 것은 아니다.
맥레이 교수는 자신의 경험상 유타대병원이 승인한 신기술 가운데 약 4분의 3은 병원에 직접적인 재정 손실을 발생시켰다고 설명했다. 일부 기술은 병원에 수백만달러의 손실을 줄 수 있지만 환자에게 제공하는 임상적 가치가 충분하면 의료진이 도입에 찬성한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기술이 병원에 반드시 수익을 안겨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환자에게 중요한 편익을 제공한다는 근거가 충분하면 병원은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기업은 병원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숨기지 말고 제품 도입이 병원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미국 의사들은 의료행위별 보상을 결정하는 CPT(Current Procedural Terminology) 코드와 상대가치점수(Relative Value Unit, RVU)에 익숙하지만, 병원은 입원환자에게 지급되는 포괄수가인 DRG(Diagnosis Related Group)를 중심으로 비용을 계산한다.
병원이 받는 DRG 금액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새로운 의료기기 비용이 추가되면 그만큼 병원에 남는 기여이익이 줄어든다. 따라서 기업은 제품 가격뿐 아니라 입원기간과 간호업무, 의약품·일회용품 사용, 추가 검사와 처치 등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함께 제시해야 한다.
맥레이 교수는 “합병증을 줄인다는 주장만으로는 병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입원기간을 하루 줄일 수 있는지, 간호사의 업무나 의약품 사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병원이 실제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타대병원은 직접비용을 제외한 기여이익률 약 40%를 목표로 하지만 전기료와 행정비 등 간접비용까지 제외하면 실제 병원에 남는 이익은 3~5%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의료기기 비용이 추가되면 병원의 최종 이익이 크게 줄어들 수 있는 구조다.
가격 숨기고 근거 틀리면 ‘탈락’…“병원은 다른 병원 구매가격 안다”
한국 의료기기 기업이 미국 병원 심의 과정에서 흔히 하는 실수로는 비교자료와 가격정보 부족이 꼽혔다.
기업이 현재 사용 중인 제품이나 경쟁 제품의 가격을 제시하지 않거나 관련 CPT·DRG를 파악하지 않은 채 병원에 모든 분석을 맡기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한 질환에도 여러 개의 DRG가 적용될 수 있는 만큼, 자사 제품이 어떤 환자와 진료경로에 사용되는지 기업이 먼저 분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병원마다 지나치게 다른 가격을 제시하거나 협상 과정에서 가격을 계속 바꾸는 것도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맥레이 교수는 “병원들은 다른 지역의 비슷한 규모 병원이 같은 제품을 얼마에 구매했는지 벤치마크 자료를 공유한다”며 “시장가격보다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 병원은 구매하지 않고 가격이 내려갈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모든 병원에 일관된 가격을 제시하면 불필요한 협상을 줄이고 도입 절차를 앞당길 수 있다고 했다.
부정확한 자료는 즉각적인 탈락 사유가 될 수 있다. 발표자료에 서로 충돌하는 수치가 들어가거나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문헌을 인용하고, AI가 생성한 것으로 의심되는 잘못된 근거를 제출하면 위원회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맥레이 교수는 “위원회가 기업의 자료를 신뢰하지 못하는 순간 이후에 제시되는 가격이나 임상 근거도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며 “현지 의사를 확보하고 경쟁 제품과의 비교자료, 관련 DRG, 명확한 가격을 준비하는 것이 미국 병원 진입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