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국내 의료기기 기업이 유럽 시장에 진출할 때 유럽을 하나의 시장으로 보고 접근하기보다 국가별 급여·조달 구조와 시장 접근성을 따져 첫 진출국부터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유럽연합(EU) 의료기기 규정(MDR)에 따른 CE 인증을 획득하더라도 실제 비용을 누가 지불하고 병원이 어떤 절차로 제품을 구매하는지는 국가마다 다른 만큼, 인증 이후 실제 매출로 이어지는 경로까지 사전에 설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헤지호그 컨설팅(Hedgehog Consulting) 드라젠 예세(Drazen Jese) 매니징 파트너는 15일 보건복지부 주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주관으로 서울 엘타워에서 열린 '메드텍 인사이트 2026'에서 이같이 밝혔다.
"CE 인증이 매출 보장 안 해…급여·조달·사용까지 설계해야"
이날 예세 파트너는 "기업들은 '어떻게 CE 마크를 획득할 것인가'에서 '이 인증이 실제 어디에서 매출로 전환될 것인가'로 관점을 바꿔 시장 진출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유럽은 MDR 시행으로 기존 의료기기 지침(MDD)보다 임상근거와 사후관리 등의 요건이 강화됐다. 기존 MDD 체계에서 인증받은 의료기기도 새로운 규정에 맞춰 전환해야 하며, 시판 후 감시(PMS)와 시판 후 임상추적(PMCF) 등 제품 수명주기에 걸친 관리도 중요해졌다.
예세 파트너는 이러한 변화로 시장 진입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이 늘어나면서 잘못된 상업적 의사결정에 따른 부담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인증에 상당한 자금과 시간을 투입하고도 이후 시장진입 경로가 마련돼 있지 않다면 이를 실제 사업 성과로 연결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특히 유럽을 하나의 시장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CE 마크 등 규제 체계는 EU 차원에서 통용되지만, 의료기기의 비용을 누가 부담하고 어떤 절차로 병원이 제품을 구매하는지 등은 국가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예세 파트너는 유럽 의료기기의 실제 시장진입 과정에서 넘어야 할 관문으로 ▲급여·지불 ▲조달 ▲도입을 꼽았다. 각각에서는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가', '누가 어떤 방식으로 구매할 수 있는가', '실제로 누가 사용할 것인가'를 확인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급여·지불은 국가·지역·보험자 등이 해당 의료기기나 시술에 비용을 지급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비용을 지급받을 수 있더라도 개별 병원이 특정 제조사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공공병원에서는 입찰이나 구매 프레임워크 등 별도의 조달 절차를 거쳐야 할 수 있다.
실제 구매가 이뤄졌다고 해서 의료현장에서 사용되는 것도 아니다. 의료진이 기존 진료방식을 바꿔 새로운 기기를 사용하는 '도입'이라는 마지막 관문이 남는다.
그는 "의료기기는 재정 지원을 받고 구매되고도 여전히 사용되지 않을 수 있다"며 "도입은 임상의에게 기존의 일상적인 진료방식을 바꾸도록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는 사용할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와 의료기사, IT·멸균 담당자 등 주변 인력의 업무 흐름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새로운 기기가 추가 업무를 발생시키거나 충분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임상의가 제품을 원하더라도 실제 사용이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세 파트너는 첫 진출국의 선택이 이후 유럽 시장 확대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신중하게 결정할 것을 강조했다.
예세 파트너는 "유럽은 한 번의 출시가 아니라 일련의 출시"라며 "단순히 큰 시장을 찾는 것보다 어느 국가에 먼저 진출할지, 자금을 투입하기 전에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첫 국가에서 결정된 가격이 후속 시장의 가격 협상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대적으로 진입이 쉬운 중·동부유럽 시장에서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출시할 경우 이후 더 큰 시장의 가격 협상에서 해당 가격이 참조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실질적인 급여·지불 경로가 있는지 ▲의사결정 이후 첫 매출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경쟁제품과 기존 계약 상황은 어떤지 ▲해당 국가에서의 성공이 다른 시장에서 레퍼런스로 활용될 수 있는지 ▲교육·언어·서비스 등 시장을 지원하는 데 드는 비용과 역량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평가할 것을 제시했다.
이어 유럽 시장 진출 과정에서 현지 임상근거를 전략적으로 확보할 것을 강조했다. 유럽의 지불자와 의료진은 아시아에서 확보한 임상 데이터가 유럽 환자와 실제 진료환경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 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그는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는 단계부터 유럽 의료기관을 연구에 포함하는 방안을 고려할 것을 제안했다. 예세 파트너는 "같은 예산으로 근거 확보와 시장진입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며 "의료기기에 대한 임상시험을 처음 진행할 때부터 이를 사전에 고려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특히 현지 의료기관에서 데이터를 생성하면 규제 근거뿐 아니라 지불자에게 제시할 근거와 레퍼런스센터를 동시에 확보하고, 연구에 참여한 임상의를 향후 제품의 현지 지지자로 연결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조달 구조에 대한 사전 조사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유럽에서는 제품을 실제 사용하는 임상의와 구매 결정자가 다른 경우가 많아 의사가 제품을 원하더라도 병원이 참여하는 공동구매조직(GPO)이나 구매 프레임워크에 포함되지 않으면 실제 구매로 이어지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공공병원 입찰의 제품 사양은 입찰 공고 이전부터 논의된다며 "입찰 공고가 발표됐을 때 도착한다면 이미 너무 늦었다. 실제 입찰 관련 작업은 그보다 1년 전부터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어 구매 프레임워크가 수년간 유지되는 경우 한 차례 주기를 놓치면 다음 기회까지 3~4년을 기다릴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현지 유통사 역시 영업망이나 병원 커버리지에 대한 설명만으로 선정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실제 참여 중인 구매 프레임워크와 거래 병원, 경쟁제품 취급 여부, 제품 지원 역량 등을 계약 전에 확인해야 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