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김상일 병원장은 9월 3일 서울 코엑스에서 메디게이트뉴스 주최로 열린 ‘2026 미래 헬스케어 트렌드 컨퍼런스’에서 ‘병원의 디지털화와 AX 전략-대형병원이 아닌 병원들의 현실적 AX’를 주제로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김 병원장은 인력과 자본이 부족한 중소병원이 대형병원의 AX 전략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는 생산성 향상과 행정 자동화, 장비∙공간 가동률 개선 등 당장 효과를 낼 수 있는 영역부터 AI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작 AX가 가장 절실한 병원, 즉 사람이 부족하고 반복 업무가 많고 장비 한 대의 가동률이 바로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병원들이 오히려 AX를 시작하기 가장 어려워한다”며 “돈도, 사람도 없고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새 시스템만 깐다고 AX 안돼…“핵심은 워크플로와 데이터 흐름”
김 병원장은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로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과 베트남 하노이 클리닉에서의 경험을 소개했다. 50년 역사를 가진 양지병원은 수년간 쌓인 기존 시스템과 부서별로 얽힌 업무 방식이 디지털 전환의 걸림돌이었다.
반면 약 18개월 전 문을 연 하노이 클리닉에서는 처음부터 HIS, PACS, LIS, CRM 등을 새로 구축했다. 기존 시스템의 제약이 없는 만큼 새로운 디지털 혁신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언어와 소통, 시스템 활용 등의 문제가 겹치면서 데이터가 서로 분절되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김 병원장은 “시스템은 새것인데 데이터는 다 갈라져 있고 통합되지 않았다”며 “두 경험을 통해 좋은 시스템을 많이 갖추는 것과 AX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배웠다. 핵심은 시스템이 아니라 워크플로와 데이터의 흐름, 그리고 통합”이라고 했다.
김 병원장은 대형병원과 중소병원의 AX 투자 영역 역시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형병원은 자체 연구비와 AI 전담조직, 석∙박사급 연구인력과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등을 갖추고 임상 AI를 직접 개발하거나 데이터 플랫폼에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다. 중소병원이 같은 전략을 택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병원 AX 영역을 ▲임상진료∙진단 ▲검사∙자원 가동률 ▲원무∙행정 자동화 ▲환자경험∙CRM ▲물류∙SCM ▲기록∙경영 등 6개로 구분했다.
김 병원장은 “대형병원은 6개 영역에 모두 투자하고 있고 특히 중소병원이 하기 어려운 임상진료∙진단 AI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 중소병원은 나머지 영역에 더 집중해 훨씬 빠른 효과를 봐야 한다”며 “목표는 AI를 개발하는 병원이 아니라 잘 활용하는 병원이 되는 것이다. 이미 가진 인력과 장비와 시간을 AI로 더 잘 굴리는 병원이 돼야 한다”고 했다.
AI 확보 방식도 직접 개발보다는 검증된 상용 솔루션과 챗GPT∙클로드 등 범용 AI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김 병원장은 “중소병원이 대형병원을 따라 직접 연구개발을 하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진다”며 “영상, 심전도, 모니터링, 행정처럼 공통적인 문제는 시장에서 구입하고 마지막 10~20%의 ‘라스트 마일’은 현장에서 만드는 방식으로 두 가지를 잘 배합해야 한다”고 했다.
AI 20개 도입한다고 AX 아냐…직원이 스스로 활용법 찾아야
김 병원장은 AX를 단순한 기술 프로젝트가 아닌 ‘조직 변화’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영진이 AI를 20개 사온다고 AX가 되지 않는다”며 “경영진이 방향을 정하고 예산을 열고 보안 원칙을 세우고 실패를 허용해야 하지만 탑다운 방식만으로는 지속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AI를 설치하더라도 현장 직원이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비싼 자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김 병원장은 직원들이 업무 과정에서 스스로 ‘이 업무는 AI로 바꿀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을 ‘AX 인사이트’라고 표현했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현장에서 나온 성공 사례를 경영진이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공유하면서 다른 부서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는 “초기에는 전담 AI 조직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이런 순환을 돌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며 “탑다운 디렉션과 바텀업 이노베이션이라는 두 힘이 만나야 AX가 가능하다”고 했다.
중소병원이 AX를 시작하기 위해 모든 AI를 EMR·OCS·PACS와 처음부터 실시간 양방향으로 연동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김 병원장은 “처음에는 독립형으로 써보고 가치가 있으면 단방향으로 연결하고, 그다음 양방향으로 연결한 뒤 마지막에 생태계로 가면 된다”며 “통합은 목적지이지 입장권이 아니다”고 했다.
상용 AI를 도입할 때는 ‘제품은 사되 데이터는 병원의 것’이라는 원칙도 강조했다. 계약 단계부터 데이터 소유권과 외부 반출 가능성, API와 표준 포맷 지원 여부, 계약 종료 후 데이터 이전 옵션 등을 확보해 특정 업체에 종속되는 ‘벤더 락인’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체 개발이 항상 해답인 것도 아니다. 그는 “중소병원이 어설프게 자체 개발하면 이번에는 개발자 한 명과 코드, 유지보수에 병원이 묶인다”며 “개발자가 퇴사하거나 시스템이 무너지면 재앙이 될 수 있다. ‘인하우스 락인’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김상일 병원장은 3일 미래 헬스케어 트렌드 컨퍼런스에서 중소병원의 AX 전략을 주제로 발표했다.
“페인포인트 하나∙오너 한 명∙KPI 하나…60~90일이면 된다”
김 병원장은 중소병원이 실제 AX를 시작할 때는 개발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명확히 정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기능을 개발하기 전 가상 화면으로 반응을 확인하는 ‘프리토타입(pretotype)’, 사람이 뒤에서 AI처럼 업무를 수행해 실제 사용 여부를 검증하는 ‘위저드 오브 오즈(Wizard of Oz)’ 등의 단계를 거친 뒤 필요성이 확인됐을 때 최소기능제품(MVP)을 만들고 파일럿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그는 특히 MVP보다 중요한 개념으로 ‘MVE(Minimum Viable Evidence∙최소한의 증거)’를 제시했다. AI를 개발하는 것 자체보다 실제 효과가 있다는 최소한의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김 병원장은 이를 “페인포인트 하나, 오너 한 명, 솔루션 하나, KPI 하나, 60~90일”로 요약했다. 해당 기간에 성과가 확인되면 확대하고 효과가 없으면 과감하게 중단하는 방식이다.
성과 역시 업무시간, 투입 인력, 대기시간, 장비 가동률, 비용, 매출, 오류, 환자∙직원 경험 등을 도입 전후로 비교해 숫자로 측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병원장은 “효과 없는 것은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것을 계속 시험하면 된다. 멈추는 것도 성과”라며 “대형병원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규모가 아니라 방향을 벤치마킹하면 된다”고 했다.
이어 “작게 시작하고, 빨리 움직이고, 크게 생각해야 한다. 공통 문제는 상용 AI로 해결하고 우리만의 문제는 현장이 직접 만들면 된다”며 “중소병원은 대형병원처럼 AX를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더 작게 시작할 수 있고, 그래서 오히려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