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병상이 만들어지면, 그 병상은 채워진다.’ 이른바 ‘로에머의 법칙(Roemer’s Law)’이다. 일반적인 시장경제에서는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지만, 의료시장은 다르다. 의료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만들어내며, 이를 ‘공급자 유인 수요(Supplier-induced Demand)’라고 부른다.
병원이 병상을 늘리면 인건비, 유지비, 장비 리스료 등 막대한 고정비가 발생한다. 병상이 비어 있으면 병원은 손실을 본다. 그래서 통원치료로 충분한 환자에게도 입원을 권유하게 된다. 이는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망하지 않으려면 입원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입원이 늘어나면 검사와 처치가 자연스럽게 따라붙고, 그 결과는 의료비 상승이다.
한국의 병상 증가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2년 보건복지부 국민보건의료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13.2개로 OECD 평균(4.4개)의 3배에 달하며 단연 1위다. 특히 요양병상은 OECD 평균보다 8.7배나 많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병상 확충을 위해 대출까지 알선하며 병상 증설을 사실상 독려해 왔다.
만약 이렇게 늘어난 병상에 환자들이 가득 찼다면, “한국은 원래 입원환자가 많은 나라니 병상이 많은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늘어난 병상의 절반은 1년 내내 빈병상이다. 병상이 만들어지면 채워진다는 로에머의 법칙조차 작동하지 않을 만큼, 병상은 이미 필요 수준을 훨씬 넘어 과잉 공급되었다.
문제는 이 빈병상이 의료체계의 상부가 아니라 하부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대학병원보다 종합병원, 동네병원, 요양병원으로 내려갈수록 공실률은 급격히 높아진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렇게 빈병상이 많은 병원과 요양병원에서 의사 1인당 발생시키는 건강보험 진료비는 대학병원보다 훨씬 높다. 중증환자 진료보다 경증환자 진료 쪽으로 돈이 흘러가도록 제도가 설계된 결과다.
그렇다고 이 구조에서 병원 자본이 실질적인 이익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돈을 좇아 병상을 늘렸지만, 그 병상의 절반이 비어 있으니 경상비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경쟁은 치열해졌지만 남는 것은 없다. 구조적으로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게임이다.
지금 한국 의료체계에서 행복한 주체는 없다. 국민은 응급실 뺑뺑이와 필수의료 붕괴 앞에서 불안을 느끼고, 병원 자본은 1년 내내 비어 있는 병상을 보며 한숨을 쉰다. 대학병원과 대형병원 진입을 목표로 수련받은 전문의들은 자리를 찾지 못해 동네병원, 요양병원, 개원가로 내몰리며 피터지는 경쟁 속에 질식해 가지만, 동시에 ‘돈을 좇아갔다’는 비난까지 감내해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1년 내내 비어 있는 병상이 약 30만 병상에 달한다. 빅5로 불리는 초대형 대학병원의 병상 수가 평균 2000~3000병상임을 감안하면, 이는 초대형 대학병원 100~150개가 통째로 비어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를 더 쏟아붓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의사 인력수급을 논하려면, 무엇보다도 이 과잉 공급된 병상 수부터 보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정책이 아니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정부는 대출까지 알선하며 병상 증설을 유도했고, ‘눕혀만 놓으면 돈이 나오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그 결과 병상은 돈을 좇아 급격히 몸집을 키웠다. 법에는 정부가 병상 수급과 인력 수급 계획을 세우도록 되어 있지만, 제대로 된 병상 수급 계획이나 인력 수급 계획을 본 기억은 없다. 간호사의 절반이 장롱면허가 되는 과잉 공급이 발생했고, 외과·소아과·산부인과를 비롯한 여러 전문과에서 공급 과잉의 신호가 나타나며 붕괴가 진행됐지만, 책임지는 이는 없었다. 언제나 “민간의 선택”이라는 말로 모든 것이 정리됐다.
병상도 이제 같은 길을 갈 것이다. 정부와 무관한 민간의 선택이었다면, 버티지 못하는 병상은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 과잉 병상을 그대로 둔 채로는 어떤 정부도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논의는 다시 의사에게로 돌아온다.
문제는 의사 수가 아니다. 병상이 과잉이고, 그 병상을 채우도록 의료체계가 잘못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이 구조를 바로잡지 않은 채 의사만 늘리는 정책은 해법이 아니라 문제의 연장이다. 의료 인력 수급 논의는 병상 과잉이라는 원인을 제거한 뒤에야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그렇지 않다면 의사 증원은 해결책이 아니라, 붕괴를 잠시 지연시키는 값비싼 착시에 불과하거나 파탄을 가속화시키는 트리거가 될 것이다.
그런데도 이 모든 구조적 실패의 비용은 언제나 의사 개인의 헌신과 희생으로 떠넘겨진다. 병상은 정책이 늘렸고, 수가는 제도가 설계했으며, 과잉은 구조가 만들었는데, 그 결과를 감당하라는 요구는 늘 의사에게만 향한다.
“의사니까 참아라.”
“환자를 외면하지 말라.”
“숭고한 사명감을 가져라.”
이 말들은 미덕이 아니다. 구조적 실패를 은폐하기 위한 주문이다. 그리고 그 주문에 순응하는 순간, 다음 희생도, 그 다음 붕괴도 당연한 것으로 고정된다.
의사들이 지금 느끼는 불안과 분노는 이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시스템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는 가장 정확한 신호다. 짐승조차 위험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도망친다. 의사에게만 그 본능을 죄악시하는 사회는 정상일 수 없다.
이제 의사들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내가 채우지 않으면 안 되는 병상이 이토록 많은가.
왜 정책 실패의 대가는 언제나 개인의 양심과 체력으로 결제되는가.
이 질문을 회피하는 한, 의료는 계속 무너질 것이고 침묵하는 의사는 결국 다음 희생자가 될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