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수용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 발생하는 일명 ‘응급실 뺑뺑이’로 인해 뇌졸중환자의 골든타임이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응급실 내 신경계 전문의를 포함한 배후진료 전문의가 상주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제로 ‘의식 저하’ 상태로 응급실에 온 환자의 경우 트리아지 단계에서 배후진료 전문의가 없을 경우 환자의 전문적 분류가 어려워 필수중증응급환자 임에도 응급실을 전전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 대한뇌졸중학회는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의실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실과 함께 '초고령화 사회에서 급성 뇌졸중 치료환경 혁신 및 골든타임 확보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하고, 급성 뇌졸중 치료환경 개선과 응급신경의료체계 강화를 위한 정책 방안을 논의했다.
"배후진료과 전문의 부재로 환자 분류·병원 선정·치료 결정 지연 발생"
이날 뇌졸중학회 부이사장인 이경복(순천향대 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119 단계에서 치료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서, 병원의 배후진료과는 치료가 가능하지만 응급실 인력이 부족하거나 다른 환자가 많아서 수용 거부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또 응급실에 수용되더라도 트리아지 단계에서 제대로 진단되지 못하거나, 뇌졸중으로 진단되더라도 전문의가 없어 치료가 지연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응급실 내 신경계 전문의를 포함한 배후진료과 전문의가 상주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며 "현재는 응급의료법상 응급실 전담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에 대한 필수 규정만 있고, 배후 전문진료과에 대한 규정은 '둘 수 있다'는 임의 규정으로 돼 있어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법 개정을 통해 전문 진료과 역량을 갖춘 전문의가 응급실에 상주하도록 한다면 119와 미리 환자 분류(트리아지)를 진행해 적절한 병원으로 가도록 지시할 수 있다"며 "해당 병원 및 타병원 배후 전문진료인력과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어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응급실 내 배후진료과 전문의는 진단이 어려운 중증응급환자의 감별 진단과 진료를 담당하고, 소홀해진 배후진료과와 응급의학과 간의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 나아가 중증응급환자의 수술이나 시술 시행 여부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고, 배후 전문 진료과 의사들의 당직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등 많은 기대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이 대표발의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해당 법안은 응급의료기관 내 중증응급환자의 근본적 치료를 담당하는 '배후진료' 개념을 법에 신설했다. 또한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의 업무 범위에 배후진료를 명시해 응급실에서 응급의학과와 신경과·심장내과 등 배후진료과가 함께 책임 있게 중증응급환자를 돌보는 체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여기서 더 나아가 해당 법안에 중증 응급실 전담 인력기준에 평일 주간 내과 소아과 신경계 전문의 확보하는 기준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대한뇌졸중학회 정책이사 고상배(서울대병원 신경과/중환자의학과) 교수
119구급대 'pre-KTAS'·응급실 'KTAS' 사이 괴리 존재…"세부 중증도 분류 정비 시급"
뇌졸중학회 정책이사 고상배(서울대병원 신경과/중환자의학과) 교수는 뇌졸중 환자의 중증도 분류 체계가 현장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119구급대에서 사용하는 pre-KTAS는 초급성 뇌졸중의 특성을 고려해 24시간 이내 뇌졸중을 긴급 환자로 분류하도록 돼 있지만, 정작 응급실에서 적용되는 KTAS는 1998년 기준을 유지하고 있는 2015년 버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학회에 따르면 국내 병원 조사에서 전체 뇌졸중 환자의 약 65%가 KTAS 3단계(응급)로 분류되고 초급성 환자 일부만이 KTAS 2단계(긴급)로 인정되는 등 뇌졸중의 임상적 긴급성과 행정적 분류 사이에 큰 괴리가 존재했다.
고 교수는 "그간 지속적으로 KTAS 분류 개선에 대한 요청이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우리나라 뇌졸중 환자는 1998년도 기준으로 치료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긴급한 치료가 필요한 뇌졸중 환자가 중증으로 인정받지 못해 진료 우선순위에서 밀려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학회는 실제 뇌졸중 치료 의료진의 평가 사이의 기준을 일치시키기 위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과 세부 중증도 분류 기준의 정비를 촉구했다.
신경과 전공의, 높은 업무 강도에 지원율 급감…"전공의 정원 확대 해야"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뇌졸중학회 보험이사 하삼열(중앙대광명병원 신경과) 교수는 중증응급 뇌졸중 환자의 골든타임 향상 및 생존율 제고를 위해 새로운 혈전용해제(TNK)의 신속한 급여 도입과 전공의 증원을 제언했다.
하 교수는 "기존 혈전용해제(tPA)는 짧은 반감기로 지속적 주입이 필요하며 1시간 동안의 정맥 점적투여 등 복잡한 투여의 단점을 갖고 잇으나 새로운 혈전용해제(TNK)는 높은 혈전용해 효율과 5~10초 단일 주사 투여로 절차가 단순해 응급의료진 업무 및 모니터링 부담이 감소되는 등 장점이 크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하 교수는 신경과 전공의의 응급실 중증 진료 부담이 타 진료과보다 월등히 큼을 지적하며 전공의 증원을 촉구했다.
실제로 전국 23개 상급종합병원을 분석한 결과 전체 전공의 중 신경과 전공의는 단 3.4%에 불과하지만 중증응급 진료 담당은 인력 대비 3배에 달하는 11%였다. 전공의 1인당 연간 응급실 진료 건수 역시 신경과 전공의의 진료 건수는 전체 평균 97건의 약 4.2배인 406.6건으로 전체 전공의 중 1위였다.
하 교수는 "현행 선발 인원을 유지해서는 급증하는 신경계 질환 진료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전공의 정원 확대를 통해 최소한의 필수 의료인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며 "특히 수도권은 병원당 전공의 규모는 비슷하지만 전공의 1인당 환자부담이 더 높아 수도권 신경과 전공의 증원 필요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뇌졸중학회 부이사장인 고임석(국립중앙의료원 신경과) 교수 역시 전공의 부족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신경과 전공의 지원율이 60%에 불과했다. 의정사태로 신경과 전공의들이 각성했다는 말이 나온다"며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어 사명감을 갖고 신경과를 선택했지만, 어마어마한 당직과 외래에 시달리는 등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수명을 짧은 신경과의 미래를 보고 이를 신경과를 포기하는 젊은 의사들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단순한 수가 인상만으로는 유인이 어렵다"며 "소방서도 24시간 대기하며 비상 사태에 대비하듯 의료진도 일종의 대기 수당을 제공하는 등 정책수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송영진 응급의학과 과장
복지부 "코로나·의정갈등에 해결 지연…학회 취지 담기도록 노력"
이어진 토론에서 보건복지부 송영진 응급의학과 과장은 "응급실 미수용 문제는 하루 이틀 사이에 될 문제는 아니다. 코로나19부터 의정갈등까지 거치면서 응급의료뿐 아니라 연관된 진료체계 기반이 많이 약화됐다. 정부 측에서 바라보는 해결과제가 산적해 있으나 적시에 해결되지 못하고 밀려 있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송 과장은 "하반기 응급의료기관 재지정 주기 완료되면 응급실에 대해 어떤 병원이 중증 환자를 잘 돌보고 치료하는 지를 반영해서 이에 따라 보상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려 한다"며 "학회의 취지가 최대한 담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중증도 분류 체계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는 "복지부에서도 KTAS 분류체계 정비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고, 준비하고 있다"며 "확정은 아니지만 연내 연구용역을 마무리하고 기준을 실무적으로 개정하려고 준비 중이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