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육성의 걸림돌? AI 의료기기·디지털치료기기 등 평가위원회 제도 투명성 강화, 수가 및 예측 가능성 개선 필요
디지털 헬스케어 육성의 걸림돌 주제로 열린 패널토의에선 "기술과 임상 근거를 갖춰도 제도권 진입 이후 사업을 이어가기 어렵다"라는 한목소리가 나왔다.
[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 개선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급여·수가 체계와 규제 운영 방식이 여전히 산업 성장의 핵심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술과 임상 근거를 갖춰도 제도권 진입 이후 사업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12일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 주최, 메디게이트뉴스 주관, 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 후원으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미래 바이오·헬스 포럼 PART2'에선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육성의 걸림돌은?'을 주제로 의료계·산업계·정부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대한디지털치료학회 조철현 학술이사(고대안암병원 저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의 특징을 현행 제도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기존 의료 행위를 대체·보완하는 기술과 기존에 없던 영역을 새롭게 만드는 기술로 혼재돼 있는 만큼, 규제를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조 학술이사는 특히 예방 중심 기술의 가치 입증이 어려운 점을 언급하며 "치료 기술과 달리 예방 기술은 발생하지 않은 위험을 어떻게 의학적·경제적으로 설득할지가 핵심이다. 전문가 집단뿐 아니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와 평가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학술이사는 "규제는 단순히 정부가 결정하지 않는다. 다양한 전문가가 모여 위원회를 구성하는데, 여기에 이 기술과 분야가 국민에게 얼마나 설득이 되는지가 중요하다"며 "국민에게 계속 홍보하고 관심을 가지도록 해 결국 국민들이 직접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의료 환경과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임재준 보험부위원장(이듬법률사무소 대표)은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허가 이후 급여 단계에서 장벽에 직면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 부위원장은 "우리나라는 식약처 허가를 받아도 급여·비급여 통제 구조 때문에 사업화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며 " 2018년 국내 최초로 AI 의료기기가 허가를 받았지만, 2022년까지 시장에 정식으로 진입한 제품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는 한국의 건강보험 체계가 해외에서 검증된 의료기술을 도입하는 팔로어(follower) 구조이기 때문"이라며, 세계 최초 기술이 등장하기 시작한 현재의 산업 환경과 제도가 맞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임 부위원장은 AI 의료기기 제도 개선이 단계적으로 이뤄졌지만 운영 과정에서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책 방향은 맞았지만, 실제 운영 단계에서는 기대 효과가 상당히 낮았다"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임 부위원장은 "2026년 3월을 기점으로 평가유예 종료 후 다수의 AI 의료기술이 정식 신의료기술 평가와 급여 등재 절차에 진입한다"며 "급여 여부뿐 아니라 수가 수준에 따라 산업이 지속될 수 있을지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급여 등재가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산업이 성장할수도, 사라질 수도 있다"며 "또 급여 등재가 됐더라도 수가가 지나치게 낮으면 기업은 철수할 수밖에 없다. 산업을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의료기술이 개발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위원회 결정 구조 불투명…평가 왜 탈락했는지 공개해야"
산업계는 제도 운영의 불투명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이어갔다.
웰트 강성지 대표는 "신의료기술 평가 관련 위원회 명단과 회의록 공개가 시급한 과제"라며, 위원회 중심의 평가 비공개 결정 구조가 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공개를 전제로 한 논의와 비공개를 전제로 한 논의는 완전히 다르다"며 "새로운 기술일수록 다양한 공개 토론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는 결과만 통보받는 구조여서 기업이 탈락 사유나 개선 방향을 알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강 대표는 "신의료기술 평가유예가 끝나는 제품이 대거 나올 예정인데, 기업 입장에서는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라며 "이에 따른 큰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위원회 결정이 더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프로세스가 정립되고, 평가받는 사람도 수긍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신의료기술 평가를 맡고 있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식약처와 심평원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면서도 과도한 책임이 집중돼 있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식약처도 심평원도 복지부도 다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보건의료연구원에 너무 많은 책임이 부여되고 있다"며 "회의록을 공개하면 이 부담을 함께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코어라인소프트 김진국 대표는 의료영상 AI 기술의 특성을 현행 수가 체계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김 대표는 의료영상 AI는 개별 검사 행위보다 병원 전체의 운영 효율을 높이는 인프라 성격이 강하다며 "병원이 잘 운영되려면 영상 촬영이 중요한 게 아니다. 판독이 제때 잘 나와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기에는 명성 외 직접적인 이득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거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도입을 언급하며, 병원 효율화를 위한 시스템 투자를 제도적으로 인정해야 산업 성장과 의료 질 개선이 동시에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대웅제약 디지털헬스사업부 조병하 상무는 혁신의료기술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예측 가능한 제도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 상무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혁신의료기술 등으로 진입하더라도 상한 수가가 정해져 있다 보니, 기술이 좋아도 사업이 될 수 없는 구조"라며 "이 같은 환경이 계속되면 기업은 오히려 혁신 트랙을 회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은 임상, 인허가, 데이터 축적 등 장기간의 연구와 투자가 필요하지만, 현 제도에서는 리스크 대비 보상이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량적 기준이 부족한 평가 체계가 기업의 시간과 자원을 소모시키고 있다고 했다.
조 상무는 "기준이 있으면 그에 맞춰 준비할 수 있지만, 기준이 없으면 계속 자료를 보완하고 시간을 소모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인력과 자원이 소진되고, 결국 사업을 접는 기업이 나올 수 있다"며, 예측 가능한 기준 설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조 상무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이 실제 임상 현장에서 활용되기 위해서는 의료진의 행정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 상무는 "이제 개원하거나 젊은 의료진은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에 대한 습득 속도가 빠르다. 하지만 고령 의료진이나 1차 의료기관의 경우 진입 장벽이 크다"며 "특히 행정·청구 부담이 크면 실제 활용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이를 간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책은 기술 도입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제도적 개선으로 만성질환 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부연했다.
정부 "규제 개선 지속…현장 의견 반영해 제도 정착"
정부 측은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 개선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복지부 김유라 과장은 "디지털 헬스케어를 포함해 바이오헬스 산업은 기존 제도 틀 안에서 다루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현장의 의견을 듣고 이를 제도에 반영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혁신위원회를 통해 규제 개선 과제를 발굴·이행해 왔으며, 향후 출범할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에서도 동일한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제도는 한 번에 완성될 수 없고, 운영 과정에서 보완해 나갈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계속해서 점검하고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식약처 손미정 과장은 디지털의료제품법 시행 이후 제도 정착 단계에 들어선 만큼, 올해는 현장과의 소통과 제도 보완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손 과장은 "올해는 현장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제도 운영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비점을 보완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며 "디지털 의료 제품의 특성을 반영한 지원 체계를 지속적으로 정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 의료 제품은 기존 의료기기와 다른 특성을 갖고 있어 제도 적용 과정에서 여러 논의가 필요하다"며 "식약처는 허가 단계에서 기업들이 예측 가능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허가 이후 단계에서도 관계 부처와 협력해 제도가 현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주영 의원은 "디지털 헬스케어는 기존 의료를 무너뜨리는 산업이 아니라 의료 시스템을 업데이트하는 산업"이라며 "급여·수가 문제와 함께 제도 운영의 투명성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미래 바이오헬스 포럼에 참가한 발제자들과 전시 참가자들 및 가운데 이주영, 천하람, 이준석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