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6.04.27 08:51최종 업데이트 26.04.2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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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 과실’의 덫에 걸린 의료,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칼럼]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최근 국회 본 회의를 통과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환자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선의에서 출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료 현장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의사들의 시각에서 이 법안은 ‘최선의 진료’를 ‘방어적 진료’로 퇴보시키는 거대한 덫과 같습니다.

의료 현장의 특수성과 의학적 불확실성을 간과한 채, 결과론적인 잣대로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이 법안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어보고자 합니다.
 
제2조의2(중대한 과실이 있는 의료행위의 정의) 이 법에서 “중대한 과실이 있는 의료행위”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의료과실이 인정되는 의료행위를 말한다. 다만, 제7호부터 제9호까지에 해당하는 의료과실에 대해서는 환자의 사망 또는 중대한 신체 손상이 발생한 경우에 한하여 중대한 과실이 있는 의료행위로 본다.

1. 「의료법」 제24조의2제1항에 따라 설명하고 동의를 받은 내용과 다른 내용의 수술, 수혈, 전신마취를 한 경우. 다만, 「의료법」 제24조의2제1항 단서에 해당하여 설명하지 아니하거나 동의를 받지 못하고 수술, 수혈, 전신마취를 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
2. 환자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의료행위에 대하여 설명을 하지 아니하거나 동의를 받지 아니한 경우. 다만, 「의료법」 제24조의2제1항 단서에 해당하여 설명하지 아니하거나 동의를 받지 못하고 수술, 수혈, 전신마취를 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
3. 환자의 사망 또는 중대한 신체 손상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학적으로 예측 가능하였음에도 의학적으로 필요한 진단, 모니터링, 처치 또는 전원을 하지 아니한 경우
4. 환자의 사망 또는 중대한 신체 손상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도가 높은 의료행위에 필요한 기본적 안전관리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
5. 수술 또는 시술 과정에서 의료기구 또는 이물질을 체내에 잔존시킨 경우
6. 의료행위를 전공의 또는 다른 보건의료인에게 지시한 후 감독을 하지 아니한 경우. 다만, 전공의 또는 다른 보건의료인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지시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

7. 의학적 진료지침 또는 통상적으로 수용되는 진료에서 현저히 벗어난 의료행위를 한 경우
8. 1회용 의료기구를 재사용하거나 유효기간이 경과하거나 변질된 의약품을 사용한 경우
9. 다른 환자에게 의약품을 투여하거나 약품의 종류, 용량, 경로 또는 시기를 잘못 사용한 경우
10. 약제 투여 전 필수적인 과민반응조사를 하지 아니한 경우
11. 다른 환자에게 수혈하거나 혈액형이 일치하지 아니하는 혈액 등 잘못된 혈액을 수혈한 경우
12. 다른 환자나 다른 부위를 수술한 경우

‘결과론’에 매몰된 의학적 예측 가능성 (제3호 관련)

법안 제3호는 사망이나 중대 손상을 '예측 가능'했음에도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를 중대 과실로 봅니다. 하지만 의료는 수학이 아닙니다. 환자가 사망한 뒤에 과거를 복기하면 모든 징후는 '예측 가능'해 보이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사후 결과론적 해석은 의사들로 하여금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온갖 검사를 남발하게 만드는 방어 진료를 부추깁니다. 이는 결국 환자의 진료비 부담 증가와 의료 자원의 낭비로 이어질 뿐입니다.

가이드라인은 ‘교과서’일 뿐 ‘법전’이 아니다 (제7호 관련)

제7호는 의학적 진료지침에서 '현저히 벗어난' 행위를 처벌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료지침(Guideline)은 참고치일 뿐, 모든 환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없습니다. 환자의 기저질환이나 특이 체질에 따라 의사는 때로 지침과는 다른 창의적이고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일탈'로 규정한다면, 어느 의사가 난치병 환자를 위해 교과서 밖의 시도를 하겠습니까? 결국 의료의 발전은 멈추고 환자는 ‘평균적인 치료’ 그 이상을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시스템의 결함을 의사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 (제8, 9, 11호 관련)

유효기간 경과 약제 사용이나 투약·수혈 오류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하지만 대형 병원의 복잡한 물류·행정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최종 처방권자인 의사 한 명에게 '중대 과실'의 멍에를 씌우는 것은 가혹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진국은 개인을 처벌하기보다 ‘오류가 발생할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집중합니다. 시스템의 공백을 의사의 형사 처벌로 메우려 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필수의료와 수련 환경의 붕괴 (제6호 관련)

전공의에 대한 감독 의무를 명시한 제6호는 수련 병원의 현실을 전혀 모르는 탁상공론입니다. 응급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현장에서 지도 전문의가 모든 전공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독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조항은 결과적으로 고위험 수술이나 응급 처치를 가르쳐야 할 교수들이 전공의에게 기회를 주지 않게 만들 것이며, 이는 곧 미래 대한민국 의료의 질 저하로 직결될 것입니다.

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위험’을 수반합니다. 의사는 그 위험을 감수하며 사투를 벌이는 사람이지, 신이 아닙니다. 이 법안이 이대로 시행된다면, 의사들은 '살릴 수 있는 환자'보다 '나를 감옥에 보내지 않을 환자'를 먼저 찾게 될 것입니다. 중증 환자와 응급 환자가 병원을 떠도는 '응급실 뺑뺑이'는 더욱 심화될 것이며, 이는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뼈아픈 비용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환자 안전은 의사를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소신껏 최선의 진료를 다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대통령의 현명한 재고를 촉구합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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