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6.06.17 06:48최종 업데이트 26.06.17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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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가 되는 탈모, 건강보험만은 안 된다

[칼럼] 박지용 공정한사회를바라는의사들의모임 대표·대한병원의사협의회 조직강화이사

사진=챗GPT

[메디게이트뉴스] 국민건강보험법 제1조는 보험급여의 대상을 분명히 한정한다. 국민의 질병·부상에 대한 예방·진단·치료·재활, 그리고 출산·사망·건강증진이다. 탈모가 질병이 아니라면 이 조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급여 대상이 될 법적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탈모를 급여화하려면 먼저 탈모를 질병으로 규정해야 한다. 순서가 그렇게 된다.

탈모는 표가 된다. 호소력이 강한 이슈는 정치공학적으로 이용되기 쉽다. 정치인이 여기에 돈을 쓰려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것은 철저하게 정치인의 영역이다. 다만 그 돈을 어디서 끌어다 쓸 것인가, 그리고 그러기 위해 무엇을 질병으로 만들 것인가는 다른 문제다.

미셸 푸코는 어디까지가 질병인지는 의학적 진리가 정하지 않는다고 봤다. 그것은 권력이 정하는 것이다. 그는 '광기의 역사'에서 근대 사회가 노동할 수 없는 자들을 광인으로, 정신질환자로 분류해 치료 대상으로 다뤘다고 보았다. 사회적, 직업적 기능의 손상을 질병의 영역으로 밀어 넣었다는 것이다.

그의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최근 사례가 있다. 바로 탈모다. 모낭의 병태생리가 바뀐 것이 아니다. 바뀐 것은 정치적 계산이다. 그동안 탈모는 질병이 아닌 노화였다. 그랬던 탈모를 이제 질병의 카테고리에 넣으려고 한다. 새로운 의학적 발견 때문이 아니라, 표가 되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표를 위해 복지를 늘리는 것까지 의사가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재원이 건강보험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것은 의사로서 지켜야 할 마지막 선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한계에 다다랐다. 질병으로 분류되던 탈모는 이미 급여 대상이었다. 삭감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제도상으로는 처리되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던 탈모까지 급여로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전에는 질병 여부를 따지더니, 이제는 질병이 아닌 것도 건보 급여 대상으로 끌어들인다.

건강보험은 질병의 치료를 위한 사회보험이다. 올해는 물가상승률에 턱없이 못 미치는 병원 1.2%, 의원 1.6%만 인상시키기도 했다. 고갈이 얼마 안 남았다며 마른 수건 쥐어짜듯 하던 건강보험을 질병이 아닌 탈모에도 적용한다면 건강보험은 유지될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손톱만큼 인상해서는 안 된다' 했는데, 실제로는 수가가 손톱만큼 인상되었고 엉뚱한 탈모 급여화가 진행된다. 한정된 재원에서 필수의료는 더욱 빠르게 무너진다.

굳이 건강보험이어야 하는가. 대안은 분명히 존재한다. 생리대 지원이나 난임 바우처가 지방자치단체와 성평등가족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것과 같다. 탈모 지원도 별도 예산으로 설계하면 된다.

그동안 성평등가족부의 복지는 주로 여성을 향했다. 그러나 탈모로 자존감이 흔들리고 사회생활에 위축되는 이들의 다수는 젊은 남성이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던 집단이다. 젊은 남성의 어려움을 제도가 들여다보는 것은 성평등가족부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한쪽 성에 치우쳤던 복지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탈모 지원을 이 예산으로 가져가면 두 가지가 동시에 해결된다. 건강보험 재정은 질병을 위해 지켜지고, 그동안 비어 있던 젊은 남성 복지가 채워진다.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2030은 포퓰리즘을 위한 확장재정에 반대한다. 정부의 지출이 유동성을 늘리고 부동산 가격을 밀어 올린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확장재정정책의 부작용은 결국 자산을 갖지 못한 세대에게 돌아온다.

그러나 정부가 굳이 포퓰리즘을 택하고 재정을 풀어야겠다면, 그것을 막을 도리는 없다. 의사가 정치인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재원이 건강보험이라면, 나는 결사반대한다. 건강보험은 표를 위해 헐어 쓸 곳간이 아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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