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교수 "탈모약 급여화, 연간 최대 7000억 소모…건보재정 새 지출 늘릴 형편 아냐"
일단 급여화하면 퇴출 어렵고 비슷한 요구 쏟아질 것…청년층 혜택 목적이라면 더 나은 대안도 있어
정재훈 교수는 16일 페이스북에 탈모약 급여화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정부가 추진하는 청년 대상 탈모약 급여화가 현실화할 경우 최대 연 7000억원 가량의 건강보험 재정이 추가 투입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고대의대 예방의학교실 정재훈 교수는 16일 페이스북에서 “몇몇 가정과 자료로 직접 추계해본 결과 남성형 탈모 약물 급여화시 연간 수천억원의 재원이 소모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 교수에 따르면 본인 부담 30%를 적용했을 때 보수적으로 연간 약 1000억~1400억원(약 100만명), 중간 시나리오에서 약 3000억~4200억원(약 300만명), 최악의 경우 5000억~7000억원(현재 인구집단의 10%)을 건보공단이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게다가 보험 적용으로 가격 부담이 줄어들 경우 더 많은 청년들이 탈모 치료를 받으려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라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남성형 탈모 치료에 대한 건보 적용은 공보험 급여의 취지와 맞지 않으며, 의학적 필요라는 기준이 무너질 경우 비슷한 요구들이 터져나올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사보험은 위험이 큰 사람에게 보험료를 더 받는다. 공보험은 정반대로 능력에 따라 내고 필요에 따라 받는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에서 아픈 사람으로, 고소득자에서 저소득자로 자원이 이전된다”며 “냉정히 말해 남성형 탈모는 생명이나 신체 기능을 위협하는 질병은 아니다. 현행 제도가 미용 목적을 비급여로 두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했다.
이어 “한번 문을 열면 어디까지 확장해야 하는지 답하기도 어렵다. 탈모를 급여화한다면 노안 교정, 주름과 검버섯, 키작은 청소년의 성장호르몬은 왜 안 되나. 전부 삶의 질과 심리적 고통을 호소할 수 있는 문제들”이라며 “의학적 필요라는 기준을 한 번 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목소리 큰 집단, 지지율에 도움이 되는 집단의 요구가 우선순위를 정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첩약 시범사업, 콜린알포세레이트 등을 예시로 들며 일단 급여화가 될 경우 비용효과에 의문이 있더라도 퇴출이 쉽지 않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약제와 처치들이 관성적으로 급여 목록에 남아있다. 새로 뭔가를 넣는 논의는 늘 나오지만 효과가 불분명한 것을 덜어내는 재평가는 늘 어렵다”며 “탈모약을 넣자는 논의에 앞서 지금 있는 것부터 근거에 따라 제대로 평가하는 게 순서”라고 했다.
비용효과나 청년층 혜택이라는 측면에서 정책적 효과가 더 큰 대안이 있다고도 제안했다.
정 교수는 “비용효과의 관점에서 보면 차라리 위고비, 마운자로 같은 비만약이 할 말이 더 많다. 현재 이들 약은 우리나라에서 당뇨 치료 목적엔 급여가 되지만 비만 치료 목적이면 비급여로 월 30~40만원을 전액 본인 부담해야 한다”며 “타국가들은 이미 비만 치료 목적의 단계적 급여화를 시작했다”고 했다.
이어 “만약 정책 목표가 정말 청년에 대한 혜택이라면 더 의미있는 방법들도 있다”며 “특히 정신건강, 대사질환 조기 발견처럼 젊을 때 개입하면 장기 편익이 큰 영역이 분명히 있다. 정책 목표가 청년이라면 청년의 더 의미있는 미래 건강에 투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끝으로 “무엇보다 지금 건강보험 재정은 새 지출을 늘릴 형편이 아니다”라는 점을 지적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건강보험은 의료개혁 재정이 투입되면 내년 약 5조 2000억원 적자로 전환되고, 약 30조원의 누적준비금 소진 시점도 2029년으로 2년 앞당겨질 전망이다.
그는 “이런 국면에서 평생 복용해야 하고 중단하면 효과가 사라지는 약을 미용 성격의 항목으로 새로 급여화하는 건 지출을 영구히 고착시키는 결정”이라며 “급여 항목은 한 번 넣으면 되돌리기 정말 어렵다”고 했다.
이어 “물론 탈모로 인한 고통과 심리적 위축은 진지하게 다뤄야 할 문제”라면서도 “공보험은 모두의 돈으로 운영되는 유한한 제도다. 그 돈을 어디에 쓸지 정하는 일은 반드시 원칙과 근거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