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시스템 붕괴에 지도전문의 없는 지방 수련병원 많아…정원 줄어든 과 전공의 업무 늘어, 비인기과 기피 확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하반기 전공의 모집 지원율에 큰 차이가 발생하면서 근본적인 전공의 정원 배정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교수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전공의 수련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수도권과 비수도권 5:5 일률적인 전공의 배정으로 인해 지방·비인기과 기피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하반기 전공의 모집 지원이 마감된 수도권 빅5병원들은 70~80% 가량의 지원율을 보였다.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가톨릭중앙의료원은 70~80% 전공의들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고 서울대병원 역시 이 정도 복귀 수준으로 전망된다. 특히 필수의료 분야 과목은 빅5병원에서도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 수련병원들 지원율은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았다. 경북대병원은 인턴 추가 모집을 합쳐 58% 지원율을 보여 선방했지만 영남대병원은 204명 모집에 95명이 지원해 46.5%, 대구가톨릭대병원도 이틀 모집 기간을 연장했지만 172명 모집에 84명이 지원해 48.8% 지원율로 마감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조윤정 회장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고 지역의료 소멸이 더 가속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같은 비수도권·기피과 수련병원들의 지원율 저조 현상이 '수련 현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정부 정책' 때문이라는 비판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현재 정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전공의 정원 배정 비율을 5:5로 조정키로 한 상태다. 비수도권 의대 정원 비중이 66%에 달하지만 전공의 배정 비율이 45%에 그친다는 이유에서 전공의 정원 지역 불균형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각 전문학회와 의대 교수들 사이에선 수련 현장을 고려하지 못한 전공의 정원 조정 정책으로 인해 지방·기피과 전공의 지원율이 더 낮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수 수련병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환자가 부족한 지방에 전공의 정원을 과도하게 늘렸지만 의정갈등 사태를 겪으며 수련체계가 붕괴된 지역 수련병원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공의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에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는 주장마저 제기되고 있다.
한 수련병원 교수는 "이번 의정갈등 사태를 겪으며 교수들이 많이 사직한 상태로 지도전문의 시스템도 유지가 어려운 곳이 많다"며 "지도전문의가 부족하다 보니 숫자만 빌려서 보여지는 숫자만 채우는 수련병원들도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역 수련병원 교수는 "실제로 수련 교육에 참여하지 않는 촉탁의들까지 전공의 정원 유지를 위해 지도전문의 숫자에 산입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환자는 적고 수련체계가 엉망이다 보니 일부 지역 수련병원들은 전공의들이 잡업무만 하고 수련은 혼자 책을 보거나 유튜브로 대신하는 일도 봤다. 정원만 늘린다고 전공의들이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정부의 일률적 전공의 정원 배정으로 인해 비인기과 기피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는 반응도 있다. 수도권은 지원자가 많아도 무조건 감원되다 보니 정원이 줄어든 과의 전공의 업무가 대폭 늘어나고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필수과 기피가 더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의학회 관계자는 "전문과목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정책으로 비수도권, 비인기과는 지원율이 더 낮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 의대 교수는 "훌륭한 전문의를 양성하려면 빅5중심의 전공의 수련이 이뤄져야 하고 지역 균형을 위해서라면 대형 수련병원 수련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전공의 교육의 현실이자 정부가 처한 딜레마"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