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8.04.08 09:12최종 업데이트 18.04.08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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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좌절 "아기를 살리지 못한 적은 있지만 죽인 적은 없습니다"

레지던트 2년차 어느날 신생아중환자실(NICU) 근무의 긴박했던 순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사망사건과 관련, 의료진 3명에 대한 구속 수사로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신생아중환자실(NICU)을 지키는 의사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몰리는 현실이 싫어서 현장을 떠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들은 전공의 시절부터 미숙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밤낮으로 신생아 중환자실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공의 때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근무했던 숨 가빴던 기억을 담은 글을 전달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6년 출생아 40만 6243명 중 2.5kg미만 저체중아는 5.9%인 2만 3829명, 37주 미만의 조산아는 7.2%인 2만 9414명에 달했다. 

"저는 레지던트 때 NICU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레지던트 2년차 시절, 어느 날 아래 연차가 없는 밤 12시 당직 시간이었습니다. 신생아중환자실(NICU)에서 아기의 섭취량과 배출량(I&O), 동맥혈가스분석검사(ABGA, 산소와 이산화탄소 공급이 원활한지 알아보는 검사)를 확인하고 벤틸레이터(폐가 미성숙한 미숙아의 호흡을 도와주는 기기) 모드를 조정해두고 잠깐 눈을 붙였습니다. 

낮에 분만을 예고했던 임신 20몇 주(정상 임신은 40주) 산모가 수술방에 들어가서 제왕절개술을 시작했다는 전달을 받았습니다. 나이트(밤 근무) 순번 간호사들에게 NICU에서 준비하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혼자 터덜터덜 밥차가 올라오는 병원 복도 구석의 화물칸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술방으로 직행했습니다. 정맥주사(IV), 기관내삽관(intubation, 기도 확보를 위해 기관 내 관을 삽입), 아기의 살이 벗겨질까봐 끝에 듀오덤(상처치료 밴드)을 붙여서 만들어 놓은 T밴드 등을 챙겼습니다. 워머(온도조절장치), 엠부백(수동 인공호흡기), 산소통 등도 확인했습니다. 

아기는 태어나면 피범벅으로 빨갛게 보이기도 하고, 아직 호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파랗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정말 조그만 아기에게 눈 깜짝할 사이에 기관내 삽관을 하고 간호사 앰부배깅(호흡을 유지하기 위해 기도 마스크백을 짜주는 행위) 시키면서 폐에서 나는 소리(lung sound, 폐음)을 확인하고 심장이 뛰는 소리까지 들리면 일단 한숨을 한 번 내쉬었습니다. 다리에 정맥주사 라인 하나를 순식간에 잡아 수액백을 달았습니다. 

수술방 간호사에게 ‘엘리베이터를 잡아주세요’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아기를 인큐베이터에 넣었습니다. 호흡을 유지하도록 간호사에게 기도 마스크백을 계속 짜게 하면서(앰부배깅) 실시간 생체신호 모니터를 보면서 NICU로 올라갔습니다.

NICU에서 아기의 호흡을 도와주기 위해 인공 폐 표면활성제(surfactant)를 주고 인공호흡기를 달았습니다  혈압 등 생체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장치를 부착했습니다. 새벽 2시 NICU의 다른 아기들에게도 다시 섭취량과 배출량, 동맥혈가스검사 등을 했습니다. 검사가 이뤄진 것을 확인하거나 검사 오더(order)를 냈습니다. 보호자에게 아기 상태를 설명하고 10장 정도의 동의서와 설명서에 사인을 받았습니다. 

큰 알람 없이 일정한 소리가 나는 벤틸레이터 소리를 음악처럼 들었습니다. 입원 노트와 환자 차트를 정리하고 새벽 4시쯤 잠깐 눈을 붙이러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새벽 5시 50분쯤 일어나서 6시에 다시 같은 방법을 소화하면서 '어제 당직은 별 일 없이 무난했다'며 또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전공의 때 이렇게 함께 일했거나 지금도 일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 동료들이 살인자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신생아 사망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수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의사들은 아기를 살리지 못한 적은 있지만 죽인 적은 없습니다. 의사들의 세심한 손길 하나하나에 과거에 살리지 못했던 수많은 생명이 살았습니다. 

꽃이 피는 아름다운 봄날, 의사들이 차가운 감옥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고 마음이 아픕니다. 슬픈 마음이 들어서 한 번 끄적거려 봅니다.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정신이 몽롱합니다.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왜 파렴치한 집단에 속한 사람이 돼있는 것일까요.  

임솔 기자 (sim@medigatenews.com)의료계 주요 이슈 제보/문의는 카톡 solplus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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