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근 업무보고에서 ‘한방 난임치료에 대한 국가지원이 있는지’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질문에 대해 “한의학은 과학적 입증이 어렵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 대한한의사협회가 ‘망언’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의협은 반박의 근거로 ‘여성 난임의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을 제시했다. 이 지침이 보건복지부에서 발표된 공식 지침이고, 이에 따르면 난소예비력 저하 여성에 대한 한약 치료의 근거수준은 B(Moderate), 보조생식술을 받은 여성에 대한 침 치료는 A(High) 등급으로 한의학이 난임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여러 측면에서 사실과 다르다.
첫째, 해당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지침이 아니다.
한의협은 제목부터 틀리며 시작했다. 한의협은 성명서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마저 부정'했다는 제목으로 정은경 장관을 비난했다. 하지만 해당 지침은 한국한의약진흥원 한의약혁신기술개발사업단이 제작·발표한 자료로, 복지부가 발표한 지침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능 단체인 한의협이 이를 ‘복지부 발표 지침’인 것처럼 왜곡해 대중에게 전달한 것은 명백한 허위 주장이다. 이는 현재 한의사에게 해부학적 진단 목적의 엑스레이 촬영이 허용된 바 없음에도, 골밀도 측정에 사용된 엑스레이 사례를 들어 “한의사 엑스레이 사용이 합법”이라고 왜곡 주장하는 방식과 맥락이 같다.
둘째, 해당 지침의 제작 과정 자체가 심각하게 폐쇄적이다.
지침 개발에 참여한 인원은 전원 한국의 한의대 교수 및 한의사들로만 구성돼 있다. 현대의학에서는 여러 질환들에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며, 이를 토대로 각국이 자국의 의료 환경에 맞게 수정·보완해 지침을 만든다. 반면 한의학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지침이 존재하지 않으며, 해당 문서는 국내 한의계 내부 합의에 기반해 작성된 자료에 불과하다.
셋째, 근거수준 A(High)로 제시된 ‘난임여성 침 치료 효과’에 대한 분석은 통계해석상 문제가 있다.
이 항목에서는 임신율과 관련해 일반침(acupuncture) 2편, 뇌졸중에 사용되는 调任通督침(tiao ren tong du needling) 1편 등 총 3편의 중국 논문이 인용됐다. 인용된 세 논문 모두 임신율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는 결론(p>0.05)을 명확히 제시했다. 그런데 사용된 침 치료 방법이 서로 동일하지 않음에도, 지침에서는 调任通督침을 일반침으로 간주해 세 논문을 합산 분석하고, 원저자들의 결론과는 반대로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넷째, 한약 치료의 근거 역시 현실과 괴리돼 있다.
지침은 한약이 난임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 임상 현장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중국 한약과 중국 논문들을 주된 근거로 인용한다. 지침에 등장하는 조잉탕, 보신소간양혈방, 보신활혈촉란방 등의 처방을 사용한다고 밝힌 국내 한의원은 찾기 어렵다. 결국 국내에서 처방되는 한약과 난임 지침에서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한약은 서로 다른 것으로 보이며, 그렇다면 이는 ‘한약이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내놓기 위해 현실과 괴리된 엉뚱한 논문을 이용한 것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환단고기' 발언이 논란을 부른 바 있다. 환단고기는 분량도 많고 나름대로의 논리도 있지만, 역사학계에서는 사료 비판과 교차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위서라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유튜브에는 이를 믿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전문가 사회의 평가는 이미 끝난 문제다.
한의 난임치료를 둘러싼 주장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얼핏 보면 근거가 충분해 보일 수 있으나, 디테일한 부분을 확인해보면 틀린 부분이 굉장히 많다. 그럼에도 국가 지원을 요구하고, 이를 지적한 발언을 ‘망언’으로 몰아붙이는 모습은 과학적 논쟁이라기보다 신념 방어에 가깝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의학 관련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정은경 장관은 오히려 이 사안에서 가장 전문가다운 발언을 했다. 맞는 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