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 국내 은행장들이 내년 여신 전략으로 중금리 시장을 겨냥한 것은 강력한 가계대출 옥죄기 속 중·저신용자는 규제 예외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역대 최대인 가계부채의 위험성이 내년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으로 더욱 커졌지만 부실 리스크를 대비해 건전성 강화 방안을 충분히 마련해놨다는 자신감도 내포해있다는 해석이다. 내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금융당국의 권고(4~5%) 수준에 맞춰도 높은 실적 달성을 예상하는 이유다. 주요 은행장들이 중금리 대출 문을 넓히겠다고 밝히면서 중·저신용자의 대출 기회는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대출 폭증 속 12명 중 11명, 내년 기준금리 2차례 인상=14일 아시아경제가 국내 시중·지방·인터넷전문·외국계은행 최고경영자(CEO) 12명을 대상으로 내년도 금융시장 전망을 설문조사한 결과 11명의 은행장들이 내년 기준금리가 2차례 추가 인상될 것으로 예측했다. 3차례 인상 의견도 1명 있었다.
코로나19로 가계부채가 위험 수준에 오른 상황에서 기준금리의 추가 인상과 내년 하반기 원금 상환 및 이자 유예 등 금융지원이 종료될 경우 대출 건전성이 크게 악화될 수 밖에 없다. 실제 지난달 현재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1060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늘어난 순증액만 72조1000억원에 달한다.
권광석 우리은행장은 "내년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 정상화 이후 하반기부터 개인사업자 대출을 중심으로 건전성이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은행장들이 하반기 건전성 리스크가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리스크를 낮추는 작업에 돌입한 배경이다. 박성호 하나은행장은 "금리 인상 및 부동산 가치 하락 등 건전성 악화 요인에 큰 영향을 받는 다중채무자, 채무상환능력 한계 차주 등의 원리금 상환능력 점검을 통해 고위험군을 선별하고 관리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은행장들은 건전성 관리를 잘 하면 기준금리 인상기에 이자이익 증가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고 봤다. 내년 은행권이 목표로 하고 있는 가계대출 증가율이 올해보다 낮은 4~5% 수준에 그치더라도 실적이 더 나빠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금융을 확대하고 가계대출 총량관리 한도에서 빠질 가능성이 있는 중저신용자 대출을 늘리는 쪽으로 대응한다면 이자이익을 늘리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 공통된 생각이다.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내년 대출 증가율 목표를 4.5%로 정하면 (대출)성장 여력이 약 6조원에 그치겠지만 서민 실수요자 중심의 전세·집단대출, 생활안정자금 지원과 새로운 신용평가모형 구축을 활용한 ‘라이더 대출’ 같은 중·저신용자 지원을 강화하면 된다"고 말했다.
특히 지방·인터넷은행들이 소상공인과 중저신용자 대상 중금리 대출을 집중하는 쪽으로 전략을 세우고 있어 새롭게 영역을 확대하려는 시중은행과의 격전이 예상된다. 최홍영 BNK경남은행장은 "지역금융의 역할 강화를 위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소매금융 강화와 중소기업에 대한 균형있는 금융지원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디지털 경쟁은 최우선 과제이자 생존 열쇠=내년 호실적 예상 속에서도 디지털과 마이데이터 경쟁은 은행권이 공통적으로 꼽은 은행 경영의 최우선 과제 및 위협 요소다.
권준학 NH농협은행장은 "다양한 양질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빅테크와의 경쟁만이 아닌, 우수한 기술을 가진 빅테크와 협력을 늘려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도 "국내 금융산업에서는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마이데이터 본격화로 금융플랫폼을 향한 금융사들간의 주도권 경쟁도 치열할 것"이라며 "디지털 혁신으로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어 속한 업종에 얽매이지 말고 디지털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통 은행들이 디지털인재 육성·채용에 유독 목을 매는 것도 은행업계가 내년도 생존키워드로 디지털 전환을 꼽고 있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박성호 하나은행장은 "현장과 ICT 역량을 갖춘 양손잡이형 인재 육성을 통해 디지털 시대의 혁신 인재를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처음부터 디지털·혁신 인재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했던 인터넷은행들은 전체적인 인력 규모 확대에 초점을 두고 있다. 홍민택 토스뱅크 대표는 "기술에 대한 이해와 고객 중심 사용자 경험이 내년도 경영의 주요 생존키워드"라며 "곧바로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경력직 개발 인력 채용에 중점을 두고 그 수는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윤호영 대표도 "가파른 성장기에 있는 만큼 내년에도 세자릿수 이상의 신규 채용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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