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환자는 몇 년 대기하고 재정 악화에 병원 폐쇄되기도…누적 공공병원 부채 5조원 넘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익명을 요청하고 공공의료의 실상을 알려온 A씨는 브라질 의사다. 브라질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브라질 의료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무료로 부담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그 이면엔 어두운 면 역시 존재한다.
최근 대한민국 정부가 전방위적인 공공의료 확대 정책을 추진 중인 가운데, 브라질 공공의료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브라질 국민 80% 공공의료 보험에만 의존…대부분 공공병원, 시설·장비 열악
90% 민간의료기관에 의해 진료가 이뤄지는 한국과 달리 브라질은 영국, 캐나다와 비슷한 공공 무상의료 시스템 국가다. 국민 의료 서비스인 SUS(국민 의료 통합 서비스, sistema Unico de saude)가 1988년 헌법에 제정돼 유지되고 있다.
SUS는 국민 통합과 평등을 기본 목표로 사용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이념을 기초로 한다. 브라질에 거주하는 국민은 물론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외국인도 SUS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재 브라질 전 국민 수에 가까운 약 1억 9000만 명이 SUS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 중 80%는 추가 민간 의료보험 없이 SUS 공공의료 보험에만 의존해 살고 있다.
이렇듯 브라질 정부는 전 국민 의료 혜택을 법으로 규정하고 '무상의료 낙원'을 꿈꿨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간한 '브라질 보건의료체계' 분석에 따르면 브라질 대부분의 공공 의료기관들은 시설이 열악한 데다 진료 과목도 다양하지 않으며, 환자 수는 많고 의사는 적어 불만이 크다.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은 대부분 개인이 설립한 병원이다. 민간 병원은 진료비가 비싸 민간 의료보험 환자가 주로 이용하지만 브라질 국민소득 수준에 비해 보험료가 지나치게 비싸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국민은 10~20%에 불과하다.
A씨는 메디게이트뉴스와 인터뷰에서 "SUS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부분의 공공병원은 열악한 시설 및 장비 외에도, 환자 수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료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적 공공병원 부채 5조원 넘어…수술 대기 시간은 상상초월
브라질 공공의료의 실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다. 특히 재정 상황이 악화되다 보니 의료의 질 자체가 나빠지고 환자 대기시간 역시 길어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브라질의 사회보장제도' 보고서를 살펴보면, 산타카자(Santa Casa) 병원 및 브라질 자선병원연합 총재인 조제 루이스 스필골룽(Jose Luis Spigolon)은 '의료 부분의 재원이 부족하고 브라질이 겪은 다양한 국가적 위기가 영향을 미쳐 공공의료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2016년 4분기 동안 브라질의 대학병원들은 직원 파업과 의료물자 및 의약품 부족, 열약한 물리적·기술적 상황으로 인해 의료서비스 공급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브라질 공공의료기관들은 지속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급기야 은행으로부터 고금리로 대출을 받기까지 했고 이들 공공병원의 전체 부채 규모는 210억 헤알(한화 5조7000억 원)을 넘었다. 그 결과 병원 218곳, 1만1000개 병상이 폐쇄되고 3만9000명의 인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환자 수술 대기도 매우 긴 편이다. 브라질 연방의료협의회(CFM) 조사 결과에 따르면 SUS를 통해 수술을 받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는 90만4000명에 달한다.
이는 전국 27개 주 가운데 16개 주의 현황만 파악한 것이어서 실제 수술 대기 환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협의회는 전체 환자 중 최소 750명은 수술을 받으려면 10~12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A씨는 "공공병원을 가기 위해 매번 환자들은 줄을 선다. 생명이 위급한 중증환자가 아니라면 응급실 이용을 위해 8시간 이상 대기하기도 한다"며 "일반적인 일차의료 진료도 길게는 반년 이상 대기한다"고 말했다.
암 60%는 상당히 진전된 상태로 발견…"국민들은 선택지 조차 없어"
빠른 진단과 진료가 시행되기 힘들다 보니 브라질에선 사망률이 높은 암 치료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브라질 현지 한인 언론인 'Bomdia News'에 따르면 SUS에서 확인되는 암의 60%는 이미 상당히 진전된 상태로 발견된다. 이는 SUS 1차의료기관인 UBS(Unidade Básica Saúde)에서 시작되는 진단에서부터 검사와 수술까지 진행되는 시간이 너무 오래 소요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암의 진단 후 5년 순생존율은 한국이 68.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지만 브라질은 20.5%로 최하위권이다. 사진='OECD 국가의 의료의 질 지표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 국회입법조사처.
실제로 브라질의 암 생존율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OECD 국가의 의료의 질 지표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 통계를 살펴보면, 암 사망 원인 5위인 위암의 진단 후 5년 순생존율은 한국이 68.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인 반면, 브라질은 20.5%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폐암 진단 후 5년 순생존율 역시 한국은 25.1%를 기록해 일본, 이스라엘에 이어 3위였지만 브라질은 8.1%로 인도, 칠레에 이어 최하위였다.
여러 국제 학술지들 역시 브라질 의료의 현실을 우려하고 있다.
2023년 국제 의학 학술지 랜싯(The Lancet)에 발표된 '브라질의 통합 의료 시스템: 35년과 미래의 과제(Brazil’s unified health system: 35 years and future challenges)' 연구에 따르면 SUS는 도입 초기 건강 형평성 개선과 포괄적 의료 서비스 접근성 제공에 성공하는 듯 보였으나 최근엔 오히려 지리적 불평등 확대, 자금 부족, 비효율성 증가 등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어린이 예방접종률은 2019년 93.1%에서 2021년 71.5%로 감소했고 모성 사망률은 같은 기간 10만 명당 58명에서 107명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영국의학저널(BMJ)에 발표된 '갈림길에 선 브라질 보건 시스템(The Brazilian health system at crossroads: progress, crisis and resilience)' 보고서를 보면 브라질 SUS는 재정 부담과 내부 정치·경제적 위기가 더해지면서 2003년부터 2016년 사이 연방정부의 보건 재정 분담률이 전체 공공 보건 지출의 50.0%에서 40.8%로 감소했다.
이에 따라 사회적 소외 계층, 북부 의료취약지 거주 인구에 대한 미충족 의료 수요가 커졌고 농촌 지역과 1차의료에 있어 의사 부족 문제가 증가했다. 반면 전문의들은 민간 부분에 주로 집중돼 국가 전역에 의료 격차 문제가 확산됐다.
A씨는 "브라질 의료는 선택의 여지가 적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민간보험을 통해 즉시 질 좋은 의료를 사용할 수 있는 10~20% 정도의 상류층을 제외하면 의사 인력도, 의료 자원도 부족해 질 낮은 의료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낙후된 지역이나 작은 도시에선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공공의료 무조건 확대하기엔 한국 의료 강점 명확…섣부른 의사 증원 보단 분배 신경써야
브라질 의료를 경험한 A씨는 최근 대한민국 정부의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정책 방향성을 이해하기 힘들다. 적자 상태인 공공병원들에 지원을 무작정 확대하기엔 공공의료의 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브라질은 이미 국민들이 대기가 긴 공공의료에 적응한 상태이지만 민간이 주도하는 한국의료에서 갑자기 공공의료 공급이 대폭 늘어나게 되면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이라며 "실제로 한국에서 공공병원에 대한 선호도도 높지 않다. 이 때문에 이런 정책 대신 환자를 진료할수록 적자인 필수과를 살리고 의사들이 기피하는 과를 지원하는 방향이 구조적으로 더 효율적인 대책"이라고 제언했다.
실제로 한국 35개 지역의료원 평균 병상 이용률은 62.7%에 불과하다.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에 따르면 성남시의료원 병상 이용률은 39.1%로 가장 낮았고, 진안의료원(43.9%), 부산의료원(45.1%) 순이었다.
의사 수 증원에 대해서도 그는 "브라질도 '더 많은 의사(Mais Medicos)' 정책을 통해 내국인 의사 1만명을 추가로 양성하고 쿠바 등 외국인 의사도 들여왔지만 정부가 원했던 지역의료 불균형 등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브라질에선 의료 소송도 한국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지만 쿠바 의사들도 다시 대부분 돌아갔다. 쿠바는 의사 월급이 수 년째 동결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의사도 사람이다. 인프라가 좋고 돈을 조금이라도 벌 수 있는 환경에 몰리게 된다. 한국에서 수도권에 의사가 몰리는 것처럼 브라질도 상파울루에 집중돼 있다. 무턱대고 공공의대를 짓고 공공병원만 늘리기 보단 기존 의사들이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할 수 있도록 여건과 인프라를 만들어주는 먼저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