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드텍 인사이트] 루바 사와야 MediStrat360 대표 “미국 시장 성패, 기술 아닌 이해관계자 간 정렬에 달려”
MediStrat360 LLC 루바 사리스 사와야(Ruba Sarris Sawaya) CEO 겸 매니징 파트너가 16일 열린 ‘Medtech Insight 2026’에서 발표했다.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한국 의료기기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복잡한 구매·보상체계에 대한 준비 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와 의사의 지지만 확보하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병원과 가치분석위원회, 보험자, 구매부서 등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진 이해관계자를 모두 설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메디스트랫360(MediStrat360) LLC 루바 사리스 사와야(Ruba Sarris Sawaya) CEO 겸 매니징 파트너는 16일 보건복지부 주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주관으로 열린 ‘메드텍 인사이트(Medtech Insight) 2026’에서 ‘혁신에서 사업화 성공까지: 미국 헬스케어 시장 채택을 위한 통합 전략’을 주제로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사와야 대표는 지난 25년간 의료기기의 미국 시장 진출과 글로벌 사업화를 지원해왔다.
그는 “한국 기업들은 의료기기 산업에서 가장 어려운 엔지니어링 과제를 이미 해결하고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을 만들고 있다”며 “이제 이해해야 할 것은 기술 개발 이후 미국 시스템이 무엇을 요구하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기술이 아니라 이해관계자 간 정렬(alignment)의 문제”라며 “FDA 허가만을 중심으로 시장 진입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장 흔한 실수”라고 지적했다.
FDA·의사만 설득해선 안 돼…시장 좌우하는 6개 이해관계자
사와야 대표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하나의 체계 안에서 처리되는 의료기기 도입 결정이 미국에서는 여러 이해관계자에게 분산돼 있다.
의사와 병원, 가치분석위원회, 보험자, 구매부서, 환자 등 6개 핵심 이해관계자가 각자 의사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어 어느 한 곳만 반대해도 시장 진입이 막힐 수 있다.
평가 기준도 제각각이다. FDA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보지만 보험자는 의료기기가 전체 의료비를 줄일 수 있는지 확인한다. 병원은 제품 도입이 자체 수익과 인력, 업무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한다.
사와야 대표는 “규제당국을 설득하는 근거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임상의와 가치분석위원회, 보험자의 행동을 바꾸는 근거는 서로 다르다”고 말했다.
의료시스템 전체의 비용이 줄어든다고 해서 제품을 구매하는 병원까지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니다. 의료기기 사용으로 절감된 비용은 보험사가 가져가지만 제품 구매비는 병원이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보험사는 비용을 절감하지만 병원이 의료기기 가격을 지불하는 구조라면 병원이 제품을 구매할 이유가 없다”며 “기업은 의료시스템 전체의 편익이 아니라 병원의 예산과 인센티브에 직접 연결되는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임상시험 역시 FDA 허가에 필요한 안전성과 유효성 지표만으로 설계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보험자가 요구하는 비용효과성과 병원이 확인하려는 입원기간, 간호인력 투입시간, 업무효율 등을 함께 측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가 이후 이러한 근거를 별도로 마련하려면 추가 예산과 12~24개월의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실제 한 기업은 임상시험에 미국 의료기관 한 곳을 포함하고 입원기간과 간호시간을 평가변수로 추가해 별도 연구에 필요했던 약 260만~270만달러와 24개월을 절감했다.
사와야 대표는 “임상시험을 시작하기 전에 보험자의 급여기준과 병원이 중요하게 보는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며 “이들이 요구하는 지표를 같은 임상시험에 반영하는 것이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20개 병원 중 18곳 의사 찬성에도 도입 실패…EMR 수동 입력이 발목
FDA 허가와 병원 계약을 확보하는 것과 의료현장에서 제품이 실제로 사용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사와야 대표는 “시장 접근은 허가(permission)이지만 시장 채택은 행동 변화(behavior change)”라며 “규제 허가와 보험 코드, 급여정책, 판매계약은 시장에 진입할 권한을 얻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 의료기기 기업은 20개 병원 가운데 18곳에서 의사의 지지를 확보했지만 실제 판매에는 실패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에서는 간호사도 시범사용에 동의했지만, 의료기기 데이터를 전자의무기록(EMR)에 수동으로 입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사용을 중단했다.
병원에 제출한 경제성 자료도 제품 한 개당 절감액만 보여줬을 뿐 환자 한 명당 연간 예산에 미치는 영향을 제시하지 못했다.
회사는 채택이 늦어지자 영업조직을 두 배로 확대하려 했지만, 분석 결과 문제는 영업력이 아니라 전자의무기록 연계와 병원을 설득할 경제성 근거에 있었다.
이에 전자의무기록 자동 연계 기능을 개발하고 병원 자체 자료를 활용해 환자당 연간 비용 절감 효과를 다시 산출했다. 이후 지역사회 병원 두 곳의 승인을 확보한 뒤 영업조직을 확대했다.
사와야 대표는 “의사가 제품을 좋아한다고 해서 병원이 구매를 승인하는 것은 아니다”며 “한국에서는 진료과장의 지지가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미국에서는 위원회 심의를 시작하게 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보험 보상은 코딩·급여·지불…“서류업무로 봐선 안 돼”
미국 보험 보상체계는 코딩(coding)과 급여(coverage), 지불(payment)이라는 세 가지 결정으로 나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딩은 의료기기를 사용한 의료행위를 설명할 코드가 있는지, 급여는 보험자가 해당 환자의 치료비를 지급할지, 지불은 얼마를 누구에게 지급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별도 코드가 없는 입원 의료기기는 병원이 환자 한 명을 치료하고 받는 고정 지불액에 포함될 수 있다. 이 경우 의료기기 가격만큼 병원의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기업은 제품 도입으로 병원이 줄일 수 있는 비용과 얻을 수 있는 성과를 병원 자체 수치로 제시해야 한다.
사와야 대표는 “급여는 회의에서 협상해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근거를 통해 획득하는 것”이라며 “의료진의 전문가 의견만으로는 부족하고 각 이해관계자가 요구하는 검증된 자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시장 진입 전략을 ▲이해관계자와 기존 진료경로를 파악하는 발견(Discover) ▲규제 경로와 적응증, 진입방식을 결정하는 설계(Design) ▲임상·경제성 근거를 마련하는 입증(Prove) ▲코딩·급여·지불체계를 확보하는 접근(Access) ▲병원 승인과 실제 사용을 끌어내는 채택(Adopt) 등 5단계로 제시했다.
이들 단계를 별도로 준비하지 말고 제품 개발 초기부터 하나의 통합된 사업화 전략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사와야 대표는 “성공한 기업의 기술이 실패한 기업보다 반드시 뛰어났던 것은 아니다”며 “성공한 기업은 누가 결정권을 갖고 무엇을 요구하며, 자사가 성공했을 때 누가 손해를 보는지를 더 일찍 질문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이미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제 필요한 것은 미국 의료시스템이 이 기술의 가치를 이해하고 쉽게 ‘예스’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