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9.13 15:21최종 업데이트 22.09.1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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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교수 "저성장∙저출산 시대, 의대 증원∙수가 인상 근본적 대책 아냐"

고령화 속 보건의료체계 지속가능성 '빨간불'...실손보험 전면 개혁 등 '인기 없는 문제' 관심 촉구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정재훈 교수.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저성장저출산이란 ‘큰 파도’가 닥쳐오는 가운데 의대 정원 확대, 수가 인상 등의 개별 정책은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며 보건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거시적 고민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왔다.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정재훈 교수는 13일 자신의 SNS에 올린 ‘저성장, 저출산 시대와 보건의료의 미래’라는 글을 통해 “최근 제기되는 ‘필수의료의 위기’는 개별 단위 정책의 문제처럼 여겨지지만 오히려 우리나라의 거시 사회경제구조와 성장의 한계 문제와 더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저성장 추세 속 어두운 보건의료 미래...고령화로 의료수요 늘고 재원 구조는 악화

정 교수는 “지속적 성장이 보장되는 환경에선 미래의 개선이 보장될 수 있지만 지금처럼 저성장, 저출산이 예상되는 상황에선 문제가 드러난다”며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그 비관적 전망은 벌써 일부 필수의료 영역에서 드러나고 있다. 국민 생명과 직결된 뇌혈관 수술, 심뇌혈관 중재, 소아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은 붕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더 이상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특히 향후 인구 구조 변화가 초래할 재정 문제가 현행 보건의료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인구 구조는 보건의료 재정에서 황금기에 가깝다. 전체 인구에서 의료 수요가 큰 노인층과 영유아의 비율이 가장 적고 건강보험 재정을 충당하는 근로가능 인구의 비율은 가장 높은 시기가 2010~2020년대”라며 “모두가 알고 있듯 이제는 노인 인구 비율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건강보험료를 지불하는 생산인구는 급락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령화로 인해 의료 수요자체가 급증하기 때문에 현재 제공하는 서비스 접근성과 질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비용 증가가 일어난다. 하지만 그 비용을 지불할 재원 구조는 악화한다.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했다.

의대 정원 확대∙수가 인상 근본적 해결책 못 돼

정 교수는 이러한 거시적 흐름 속에 의대 정원 확대, 수가 인상 등의 개별 대안은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고도 했다.

그는 “2003년 이후 의대 정원은 3000명 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수능 응시생은 2003년 65만5000명에서 2021년 42만1000명으로 35% 이상 감소했다”며 “지난 18년 간 동년대 대입 준비생 중 의대 정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1000명 당 4.58명에서 7.12명으로 늘었다. 2021년에 태어난 26만명의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는 18년 후에는 11.5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수치는) 의대 정원 논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보여주는 수치”라며 “10~20% 증원으로 사회적 논란이 일어나는 사이 저출산이란 거시 요인은 이미 의대 정원을 2배 이상 늘린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지속적 인구 감소를 고려할 때 지금 의대생들이 현장에서 진료할 10년 후는 의사 공급량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일부 사람들은 항상 정원 등의 표면적 숫자에 집착하지만 실질적 의미를 가진 정책 목표는 대부분 분수이며 분자보다 분모가 더 중요하다”며 “차라리 의대 통폐합을 통한 교육 내실화, 전문의 정원 조정 등이 보다 현실적 정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필수의료 붕괴와 관련해서도 “거시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으면 본질적 해결이 어렵다. 많은 이들이 대안으로 수가 인상을 얘기하지만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며 “만약 소아과의 수가를 2배로 인상한다면 잠시 소아과의 지원이나 상황이 좋아질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론 수요층인 소아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상황이다. 2배 인상은 결국 절반으로 감소한 소아를 볼 때 현상유지 밖에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행위별 수가제는 의료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고성장과 인구 증가 시기엔 저렴하고 질 좋은 의료를 공급하는 중요한 기전이 됐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제 필수의료는 행위별 수가제의 수명이 다 해가고 있다고 봐야한다”며 “필수의료는 국가가 책임지고 운영하는 사회 안전망의 하나로 운영돼야 한다. 민간의 공급과 시장경제 체제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했다.

'실손보험 제도' 전면 개혁 필요...정치인들 보건의료 지속가능성 관심 가져야

정 교수는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해선 재원 마련과 비용 절감이 필수라며 실손보험제도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는 지난 20년간 도덕적 해이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그 대표적 제도가 의료비 실손보험”이라며 “거의 모든 국가는 의료 제공시 보험이나 조세와 같은 위험 균등화 제도의 무분별한 수혜를 막기위해 본인부담 제도를 갖고 있지만 우리나란 실손보험을 도입함으로써 사실상 일부 실손보험 가입자에겐 무상의료에 가까운 의료 접근성을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손보험으로 인한 무제한의 접근성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제도의 지속가능성을 급격히 감소시키고 있다. 실손보험으로 증가된 의료이용은 건보 재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의료와 의료인력 공급 구조를 심각하게 왜곡시킨다”며 “실손 보험제도에 대한 전면적 개혁이 필요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10여년 전만 해도 중증질환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부담은 컸지만 지금은 4대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율은 80% 이상이며, 본인부담금 상한제,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통해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성은 중복적으로 강화되고 있다”며 “과다한 중복 정책은 실손보험이 제공하는 의료접근성을 중증질환이 아닌 경증 질환에 집중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끝으로 의학과 기술 발전이 비용 절감을 가능케 할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도 고성장 사회를 상정하고 마련된 현행 보건의료체계가 초래할 파국을 막기 위해선 정치인들이 ‘인기없는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이 지나치게 어렵고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려 없이는 더 큰 파국은 당연한 결말이다. 이제 저출산, 저성장 시대에는 보건의료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선출직 공무원들이 이런 인기 없는 일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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