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2.06 08:40최종 업데이트 24.02.0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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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원수로 갚는가!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의쟁투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칼럼]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전 대한의사협회장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집회. 사진=대한의사협회 

[메디게이트뉴스] "은혜를 원수로 갚는가!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의쟁투(의료개혁쟁취투쟁위원회)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라는 것이 발표됐다. 눈에 띄는 것은 개원가를 겨냥한 정책이다. 우선 비중증 질환의 ‘급여+비급여’ 혼합진료를 금지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피부미용 시술의 자격을 비의사에게 까지 허용하고 임상 수련후에 개원 면허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비중증 질환, 즉 주로 개원가에서 보는 환자들에 대해서 급여와 비급여를 혼합해서 진료하는 것을 금지시킨다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금지할지는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정부가 노리는 바는 명백하다. 개원가의 밥줄을 끊겠다는 의지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피부미용 시술 자격을 완화한다는 말은 피부미용시장이 의사들의 피난처가 되고 있으니 그 시장을 의사뿐만이 아니라 의사 아닌 직종에도 개방해서 의사가 더 이상 피부미용 시술로 먹고 사는 꼴은 못 보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개원가는 ‘악의 축’이라는 말이다. 개원가 씨를 말려야 대형병원에서 싼 값에 의사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개원하기 전에 수련을 의무화해서 값싼 노동력을 더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우파 정부가 ‘의사 월급 300만원이면 족하다’는 좌파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의료보험이 시작될 때 원가의 50~60%선에서 보험수가를 정하고 출발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내용이다. 거의 반세기가 지났지만 수가는 여전히 원가에 턱없이 못 미치는 70%대에 머물고 있다. 턱없는 수가에도 우리 의사들은 정말 열심히 환자 진료에 매진해 대한민국을 저렴한 비용에 세계 최고의 의료접근성을 가진 나라로 만들었다. 돈을 쳐 발라서 세계 최고를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의사들이 그야말로 몸빵해서 세계 최고의 접근성을 만든 것이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한국을 의료천국이라고 부르는 데는 오로지 우리 의사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이제 그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하고 있다. 

의사 수 5만명일 때 전공의 1만명이면 전체의 20%를 전공의로 채우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해마다 의사가 늘어나서 의사수가 10만영이 되었을 때 전공의 숫자가 여전히 1만명이면 전공의 비율은 10%로 줄어든다. 전공의 20%일 때와 전공의 10%일 때는 똑같은 시스템으로 운용할 수가 없다. 이것은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오래 전에 복지부 관료들에게 미리 대비하면서 시스템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귓등으로도 듣는 사람이 없었다. 

자, 이제 의사 14만명이 넘었다. 그런데 아직도 시스템은 과거 의사 5만명일 때의 그 구조를 고집한다. 당연히 사단이 날 수밖에 없다. 일반 기업 같으면 이런 인사관리부서는 모조리 문책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관료는 철밥통이다. 복지부의 직무유기는 아무도 알지 못할 거니까 그저 의사에게 다 뒤집어 씌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정치인도 국민도 언론도 박수 치며 좋아한다. 

이제 답은 나왔다. 의사 20만명이 되면 전공의 4만명, 의사 40만명이 되면 전공의 8만명으로 늘리면 된다. 그러면 똑같은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다. 정부가 하는 것을 보면 정말로 그럴 작정이다. 그 와중에 의사들이 죽어 나가도 개의치 않겠다는 것이다. 어차피 개원의는 ‘악의 축’이니 죽어 나가든지 말든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고 싼 값에 대형병원만 돌릴 수 있다면 모두가 행복하다는 것이다. 

개원가는 모든 의사들의 마지막 종착지다. 그 마지막 종착지가 든든해야 조금 험난한 과정도 계속해서 도전하기 마련이다. 봉직의 자리는 무한정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힘든 수련 과정을 거쳐서 전문의가 되었는데 봉직의만이 유일한 출구라면 많은 사람들이 전문의 과정에 들어가는 것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한정된 봉직의 자리가 유일한 출구인데 취직에 실패하면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과 선배의사들이 환자가 없어서 전문과 간판을 떼고 일반과로 개원하는 것이 일상화되면 후배의사들은 그냥 바로 일반과로 직행하는 것이 좀더 현실적인 선택이 된다. 그런데 이제 그것조차도 정부가 막겠다고 발표했다. 수련을 의무화하고 개원 면허를 도입하고 피부미용 시장을 의사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개방해서 모조리 막아 버리겠다는 것이다. 피난처, 퇴로를 완전히 막아놓고 평생 노예로 부려 먹겠다는 것이다. 

아직도 의사들이 정치적 역량을 키우면 이 나라가 의사들을 위한 정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믿으면 순진한 것이다. 아무도 의사당 환자수가 20년째 줄어드는 것에 관심이 없고 자기 전공과 포기하고 간판 뗀 전문의가 9천명이라고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 외쳐도 눈길 하나 주는 사람이 없다. 자기 전문과로 먹고 살 수가 없으니까 간판을 떼는데 그저 돈만 밝히니까 미용성형으로 몰려든다고 말한다. 의사를 때려잡아야 모두가 행복하다고 믿는 사회에서 정치적 역량이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의료를 멈춰 세워야만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다면 멈춰 세워야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투쟁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투쟁은 입으로만 외쳐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의사협회 회관에도 정부의 정보통들이 드나든다. 이들이 의사들의 동향을 살피고 윗선에 보고한다. 이들을 붙잡고 의사들이 투쟁할 것이라고 백날 말해봐야 의사들이 불만이 많다고 보고는 해도 의사들이 투쟁할 것이라고 보고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마도 의사협회가 투쟁기금을 수백억을 모금했다고 하면 바로 의사들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고 보고서를 올릴 것이다. 투쟁을 하려면 실제적으로 투쟁에 돌입할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누가 봐도 투쟁할 조직으로 보이도록 실질적인 준비에 돌입해야 상대가 반응을 할 것이라는 말이다. 말만 앞세우고 실제적으로 투쟁에 돌입할 준비를 전혀 하지 않으면 눈도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2000년 의쟁투와 같은 범의료계 투쟁조직을 시급히 발족하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투쟁기금부터 모으기 시작하라. 내게 앞장서라고 하면 망설이지 않고 앞장서겠다. 

지난 2020년 투쟁 때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앞장섰는데 이들에 대한 조직적 차원의 지원이 없었다고 들었다. 의대생들이 동맹 휴업에 들어가면 개원가에서는 의사회 조직이나 각 학교 동문 조직을 활용해서 동문 선배 의원에서 후배 의대생들이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전공의들이 사직하고 나오면 개원가도 동조 파업을 하거나 동조 파업이 여의치 않을 때는 개원가에서 전공의들을 임시로 채용해도 된다. 그게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내부적으로 그런 과정들을 만들면서 외부에 투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누가 봐도 투쟁을 준비하는 조직으로 보여야 한다. 시급히 의료계 전체를 아우르는 투쟁조직을 발족시키고 투쟁에 돌입하는 준비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 

강성 노조도 수백억씩 투쟁기금을 쌓아놓고 투쟁에 돌입한다. 앞장서는 사람만 피해보는 투쟁은 두 번 다시 실행할 수도 없다. 조직적 차원에서 그런 것부터 정비하며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준비 없는 투쟁은 백전백퇴한다. 누가 봐도 전쟁을 준비하는 조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목소리만 높여서는 이기는 싸움을 할 수가 없다. 

이왕 싸움을 하려면 반드시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지난 2000년 우리는 그 어느 직종도 하지 못했던 정부와의 투쟁을 1년씩이나 가열차게 단행한 경험이 있다. 패배의식을 버리고 한마음 한 뜻으로 뭉쳐야 한다. 그러면 이번에도 충분히 가능하다.

전체 의사들에게 개인의 선택권을 배제하고 강제로 헌신하고 봉사하라고 강요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의사를 때려잡아서 모두가 행복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나라 또한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의사와 환자,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앞으로 가열차게 다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이미 2000년에 한번 해보지 않았던가!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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