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지역의료 붕괴는 의료계 문제라기 보단 '인구 감소'와 '규모의 경제' 붕괴가 핵심 원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인구 자체가 줄고 지역 공동화 현상이 심화됨과 동시에, 지역 환자들까지 서울 대형병원을 선호하면서 지역의료계가 파탄나고 있다는 취지다. 이에 정부는 지역 환자가 서울로 이동하지 않고 해당 지역에서 진료할 수 있도록 의료정책 방향성을 조율할 예정이다.
지역의료 공백, 구조적 문제라 의료만의 문제 아니야
보건복지부 손영래 지역필수공공의료실장은 23일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된 '코메드(KOMED)2026 지역의료분권포럼'에서 이 같이 밝혔다.
이날 손영래 실장은 지역의료 위기의 배경으로 총인구 감소 속 젊은 층의 수도권 이동과 지방의 고령화를 꼽았다. 환자 수가 줄면 의료기관 입장에서 규모의 경제가 무너지고, 그 피해는 필수의료와 중증응급 분야, 농어촌 지역부터 먼저 나타난다는 진단이다.
그는 분만 의료를 예로 들었다. 분만병원이 유지되려면 최소 4명의 산부인과 의사가 필요하고 연간 최소 500건 분만이 이뤄져야 유지가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연간 150건 정도 농어촌 분만 수요를 가지곤 병원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실제로 경남 거창·합천·함양 등을 포함한 거창 진료권은 인구 13만 명에 종합병원이 없고, 경북 영주·영천 등 진료권은 인구 18만 명에 종합병원 1개뿐이다.
이들 지역은 응급, 분만, 심혈관질환 치료를 지역 내에서 완결적으로 제공하기 어렵다는 게 손 실장의 견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에선 비용을 더 지불해도 의사 채용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 손 실장은 "의료인력 채용비용도 지방이 수도권보다 더 빠르게 오르는 ‘비용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전에는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문제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건강과 사망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며 "지역의료 등 문제는 상당히 구조적인 문제라 의료만의 문제라고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문제가 사회 구조적 문제와 함께 결합돼 진행되고 있어 향후 계속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의료 정책만으로 과연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역 환자 규모의 경제 회복…국립대병원 ‘빅5급’ 육성
규모의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우선 지역 환자들을 해당 지역에 잡아둘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향하는 환자 이동을 줄이기 위해 지방 국립대병원을 거점화할 예정이다. 전국 '5극 3특' 중심으로 9개 국립대병원의 의료진을 확충하고, 중환자실·응급실 등 시설과 장비를 현대화하며 연구·교육 기능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또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에 연간 3조1000억원 규모의 지원을 유지하면서, 지역 내 중증 진료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할 계획이다. 김 실장은 “고난도 질환 치료를 위해 서울로 가야 하는 일을 최소화하고, 지역에서 중증 진료 역량을 보존·키우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지역 거점 공공병원 41곳에는 응급수술과 중환자 진료 역량 강화, 적자 우려 없는 운영 지원, 보상 개선 등을 추진한다. 농어촌 공공병원은 간병 수요가 많은 점을 감안해 병원 전체에서 간병을 제공하는 체계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공공·민간병원 지원, 우선순위 특별히 없다…"지역 상황에 맞게"
정부는 공공병원이 없는 약 10개 지역에는 지자체와 협의해 신규 공공병원 설치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다. 반면 우수한 민간병원이 있는 190여 개 지역에는 건강보험 재원을 통해 연 9000억원 규모로 중증 수술·입원 역량 강화를 지원한다.
김 실장은 “공공병원과 민간병원 중 무엇을 우선할지에 대한 특별한 답은 없다”며 “지역 실정에 맞게 공공병원을 육성하거나 민간병원을 활용하는 계획을 지자체가 짤 수 있도록 권한과 재원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료분쟁이 필수의료 인력 확보를 가로막는 요인이라는 진단도 제시됐다. 일반 민사소송은 평균 7개월 정도 걸리지만 의료분쟁 소송은 2년을 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환자 기본법 제정에 이어 내년 5월부터 개정 의료분쟁조정법을 시행한다. 의료인의 설명의무가 강화되는 한편, 책임보험 가입이 의무화되고 사건당 최대 18억원 규모의 고액 보험에 대해 정부 지원 체계가 가동된다.
그는 “보험 체계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면 환자는 신속하게 보상받고, 의료인은 불필요한 수사와 법정 분쟁 리스크가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실장은 "이번 과제는 단기간에 끝낼 사업이 아니라 5년, 10년에 걸쳐 추진해야 하는 중장기 과제"라며 "지방정부의 권한도 대폭 확대하고, 인공지능(AI) 활용도 적극 받아들여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의료체계를 만들겠다. 사는 지역과 관계없이 모두가 공평하게 의료보장을 받는 체제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