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지희 대전협 의료봉사단 1기 단장 "4개월간 쪽방촌 주민들 마음에 꽃 하나 심겠단 마음으로 봉사"
대전협 의료봉사단 1기 박지희 단장(고대안암병원 재활의학과).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병원에서 밤샘 당직을 마친 전공의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서울역 쪽방촌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낯선 젊은 의사들에게 문조차 열어주지 않던 주민들은 5개월간 꾸준히 찾아온 전공의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전공의들 역시 병원 밖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환자들을 만나며 의료의 또 다른 모습을 배웠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의료봉사단은 지난해 11월 자선의료기관으로 쪽방촌 주민 대상 방문진료를 지속해온 요셉의원과 인연을 맺으며 출범했다. 대전협과 보건복지부가 젊은 의사들의 사회 봉사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던 중 복지부 이형훈 차관이 요셉의원을 추천했다고 한다.
봉사단 1기는 지난달 8일 결산보고회를 가지며 활동을 마무리했다. 3월부터 7월까지 25명의 전공의가 총 180시간 의료봉사 활동을 펼쳤고 참석률 100%, 무단결석은 전무했다.
대전협 집행부에 합류하기 전부터 봉사단 운영을 꿈꿨던 박지희 단장(대전협 기획이사, 고대안암병원 재활의학과)은 최근 메디게이트뉴스와 만나 “내가 가진 시간과 전문성을 조금 나누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서부터 봉사는 시작될 수 있다”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러 갔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현장에서 배우고 돌아온 것이 더 많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봉사단 활동이 1기가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계속 봉사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아래는 박지희 단장과 일문일답.
- 대전협이 의료봉사단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전공의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동시에, 전공의와 사회를 연결하는 통로가 될 수 있는 단체라고 생각한다. 전공의들도 의사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가진 전문성과 책임감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수련 과정에서 수많은 환자를 만나고 있음에도, 의료체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분들을 직접 만날 기회는 많지 않다.
그래서 대전협이 전공의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넘어, 전공의들이 가진 의료 전문성을 이용해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의료봉사단을 시작하게 됐다. 특히 의료봉사가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공의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됐으면 했다. 그런 의미에서 요셉의원과 뜻을 모아 쪽방촌 주민들을 직접 찾아가 진료하는 의료봉사단 1기를 시작하게 됐다.
- 1기 봉사단 단장을 맡았다.
대전협 기획이사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한성존 회장에게 가장 먼저 한 제안이 봉사단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도 봉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사실 전공의 신분으로 외부 봉사를 하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서 대전협을 통한다면 전공의들도 더 안정적으로 쉽게 봉사를 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봉사단 운영을 제안했던 당사자인 만큼, 자연스레 단장까지 맡게 됐다.
- 실제 봉사를 위해 찾은 쪽방촌의 환경과 환자들의 상태는 어땠나.
서울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서울역에서 불과 5분 정도 걸어가면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처음에는 그저 서울의 오래된 언덕길에 있는 동네처럼 보이지만, 문턱 하나를 넘어 쪽방촌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매체를 통해 접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이 펼쳐진다. 어둡고 축축한 복도에는 곰팡이 냄새와 담배 냄새가 배어 있고,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복도를 따라 수십 개의 작은 방이 이어져 있다.
방 안에는 널브러진 소주병과 컵라면 용기, 오래 방치된 음식물 쓰레기, 수많은 약병 사이에서 생활하고 있 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환경의 열악함보다 더 마음이 아팠던 것은, 그분들이 사회와 단절된 채 스스로를 돌볼 여력조차 잃어버린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약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분도 있었고, 술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티는 분, 각자의 사연을 안고 좁은 방 안에 홀로 누워 있는 분들도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두 다리를 절단한 화가다. 그분 역시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방에 들어갔을 때 벽을 가득 채운 그림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의자나 제대로 된 책상 하나 없는 작은 방에서 벽을 가득 채운 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더 인상 깊었던 건 그분이 자신의 그림을 통해 얻은 수익을 쪽방촌의 다른 주민들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가진 재능을 통해 이웃에게 무언가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의료 전문성을 통해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가치는 의료라는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처음에는 방문 진료를 위해 방을 찾아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 분들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이분들이 마음을 열고 진료를 받아주실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런데 이 화가분을 보면서 꼭 ‘진료’만이 우리가 전달할 수 있는 가치의 전부는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쪽방촌 주민들을 단순히 ‘환자’로 바라보며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 문을 열어준 한 분의 마음에 작은 꽃 하나를 심으러 왔다는 생각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그분의 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그림과, 자신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진 것을 다시 이웃에게 나누던 모습은 이번 봉사를 통해 제가 배운 가장 큰 것 중 하나였다.
- 최근 1기 봉사단 활동이 종료됐다. 소회를 말해달라.
1기 봉사단장으로서 이 활동을 잘 시작하고 정착시켜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대전협 기획이사로 활동하면서 전공의와 사회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해왔다. 그래서 의료봉사단은 개인적으로도 꼭 해보고 싶었고, 그만큼 애정이 많이 담긴 사업이기도 했다. 다행히 25명의 전공의들과 요셉의원의 고영초 원장님, 김경미 간호팀장님, 박상욱 팀장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함께해준 덕분에 잘 운영할 수 있었다.
이번 활동을 하면서 의료봉사가 꼭 거창한 희생에서 시작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가진 시간과 전문성을 조금 나누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서부터 봉사는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러 갔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현장에서 배우고 돌아온 것이 더 많았던 것 같다.
- 바쁜 전공의 수련 기간에 따로 시간을 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번 봉사단에는 총 25명의 전공의 선생님들이 참여했는데, 대부분 24시간 당직을 마치고 하루 동안 받은 오프를 사용해 봉사에 참여했다. 약 4개월 동안 단 한 명의 무단 결석도 없이 100%의 출석률을 기록했고, 총 180시간의 봉사활동을 함께했다.
당직 후 오프는 누군가에게는 쉬어야 할 시간이었고, 어쩌면 누구보다 쉬고 싶었을 시간일 텐데, 우리 봉사단원 전공의들은 지치고 힘든 몸을 이끌고 봉사 현장까지 와줬다. 전공의들의 이런 따뜻한 마음을 많은 분들에게 자랑하고 싶을 만큼 뿌듯했다. 함께해준 모든 전공의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
- 그 외에 봉사단 활동을 하며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들이 좀 더 와주셨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서 말했듯이 쪽방촌 주민들은 고립돼 있고, 우울증이나 알코올 중독도 많다. 1기 봉사단에도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2명이 활동했는데, 수요에 비해서는 공급이 부족해 조금 아쉬웠다. 실제 쪽방촌 주민들이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들에게 상담 등을 받으며 만족도가 높았다. 2기 때는 더 많은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들이 본인의 경험과 전문성을 나눴으면 하는 바람이다.
- 앞으로도 봉사를 이어갈 생각이 있나.
1기로서의 활동은 끝났지만, 의료봉사가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도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계속 봉사에 참여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번 1기에서 만들어진 활동이 다음 기수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대전협 의료봉사단이라는 이름이 전공의들에게 꾸준히 이어지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전공의들이 자신이 가진 전문성을 사회와 나눌 수 있는 지속적인 창구가 됐으면 한다. 이번 1기의 활동이 그 시작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