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가업상속공제 대상에서 병원업을 제외하기로 하면서 개인병원을 중심으로 지역 필수의료와 고용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국 일반병원 4곳 중 3곳이 개인 개설기관이고 개인병원 종사자도 19만명을 넘는 만큼, 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병원 승계가 중단되면 지역의 입원·수술과 필수의료 제공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병원협회는 지난 25일 재정경제부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병원업의 특수성과 지역의료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고려해 가업상속공제 적용 여부를 재검토해 달라고 촉구했다.
병원·약국 가업상속공제 대상서 제외…경영기간 요건 10년→30년
가업상속공제는 피상속인이 장기간 경영한 중소·중견기업을 상속인이 승계하면 일정 금액을 상속재산에서 공제하는 제도다. 상속세 부담으로 기업이 매각되거나 폐업하는 것을 막고 전문기술과 경영 노하우, 고용을 유지한다는 취지다.
정부가 지난 4일 입법예고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은 가업을 ‘전문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보유한 기업’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공제 대상 727개 업종을 법률에 명시했다.
피상속인의 경영기간 요건은 현행 10년에서 30년으로 강화하는 대신 공제 한도는 최대 6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높였다. 다만 병원과 약국을 비롯해 마트, 버스·택시 운송업, 주차장업, 창고업 등은 공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재정경제부는 병원이 변호사·회계사·변리사 등과 마찬가지로 면허나 자격이 필요한 업종이라는 점에서 기존에 제외된 전문직과의 형평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기술과 노하우 승계라는 제도 취지는 유지하되 상속세 회피 등 제도 악용을 막고 과도한 지원을 조정하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이에 병원협회는 ‘전문직 배제’가 당초 개정안에 명시된 기준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개정안에 명문화된 제외 기준은 프랜차이즈처럼 타인의 기술로 사업하거나 부동산·이자·배당 등이 주된 소득인 경우다. 입법예고 과정에서 제시되지 않았던 전문직이라는 기준을 들어 특정 업종을 제외하면 조세제도의 예측 가능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병원협회는 “전문직 간 형평성을 이유로 병원업을 일률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제도의 취지와 경제적 실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밝혔다.
“배제된 것은 의사 아닌 병원업”…시설·인력·자본 결합한 조직
병원계는 이번 개편에서 제외된 대상이 의사 개인이 아니라 시설과 인력, 자본을 갖춘 ‘병원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의료법상 의원과 병원은 구분된다. 병원은 30병상 이상을 갖춰야 하며 종합병원은 100병상 이상이면서 진료과별 전속전문의를 배치해야 한다. 병원급 의료기관에는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와 약사, 의료기사, 간호조무사, 행정·지원 인력 등이 함께 근무한다.
병원은 토지와 건물, 의료장비 등 상당한 규모의 유형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상속 과정에서 최고 50%의 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자산 대부분이 의료시설과 장비 등 비유동자산이어서 상속세 납부에 필요한 현금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변호사·회계사 사무소는 승계할 유형자산이 상대적으로 적고 고객 관계도 대표자 개인에게 귀속되는 반면, 병원은 시설과 인력, 자본을 바탕으로 입원과 수술, 응급·중증환자 진료를 제공한다. 병원계는 이를 다른 전문직과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일반병원 75.9% 개인 개설…“승계 중단되면 지역의료 공백”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전국 병원급 의료기관 3361곳 가운데 개인 개설기관은 1928곳으로 57.4%를 차지했다.
특히 일반병원은 1429곳 가운데 1084곳이 개인 개설기관으로 75.9%에 달했다. 요양병원도 전체 1287곳 중 657곳을 개인이 개설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병원에서 근무하는 종사자는 19만1963명으로 전체 병원급 의료기관 종사자의 30.5%를 차지했다. 직종별로는 간호사 6만8705명, 간호조무사 3만6511명, 의료기사 3만953명 등이 개인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병원협회는 개인병원이 지역 주민의 입원과 수술은 물론 응급·중증·분만·소아 등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주요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상속세 부담으로 승계가 중단돼 병원이 매각되거나 폐업하면 의료서비스 공급뿐 아니라 지역 고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방 중소병원은 응급실과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등 시설과 의료장비로 인해 상속재산 평가액은 높지만 실제 현금 창출력은 낮아 상속세 부담에 더욱 취약하다는 설명이다.
병원협회는 “병원을 단순한 면허·자격 기반 업종으로 판단하지 말고 고용과 투자, 지역 의료서비스 제공이라는 경제적·사회적 기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가업상속공제 대상에서 병원업을 일률적으로 제외하는 방안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