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연내 제정을 추진하는 디지털헬스케어법을 두고 시민사회와 노동계, 환자단체가 의료정보의 산업적 활용에 비해 환자의 권리와 보호장치가 부족하다며 보완을 요구했다. 환자 정보가 기업의 수익 창출이나 고용·보험 차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보건복지부는 이미 이뤄지는 의료정보 활용을 더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법이라며, 기업의 연구개발도 공익성을 따져 엄격한 조건 아래 허용해야 한다고 맞섰다.
2일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린 '디지털헬스케어법, 정부대안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는 정보 활용 거부권과 공익성의 범위, 민간기업에 대한 통제 방안을 놓고 이견이 이어졌다.
디지털헬스케어법은 21대 국회에서 임기만료로 폐기된 뒤 22대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의 발의로 재추진되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9월 안상훈·서영석·권칠승·전진숙 의원안 4건을 통합한 정부대안을 법안소위에 제시했다. 법안은 계속심사로 넘어갔으며, 복지부와 민주당은 해당 법을 연내 처리하겠다는 목표다.
"유전정보는 동의받아 활용…환자가 거부할 권리 보장해야"
이날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이상윤 책임연구위원(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은 "시민사회와 노동조합이 가명정보 활용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공익적 목적과 안전한 환경, 국민의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가족과 혈연관계자의 정보까지 포함하는 유전정보를 동의 없는 가명정보 활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의를 받고 쓰는 체계가 있는데 굳이 동의 안 받고 가명정보로 하는 체계로 유전정보를 넣는다는 건 조금 무리스럽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료정보의 민감성과 재식별 위험을 고려해 2차 활용을 거부하는 '옵트아웃'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관리전문기관의 자격·금지행위를 법률에 명시하고, 의료기관과 공공기관 등 정보 보유기관에도 제공 여부에 대한 자체 판단권과 거부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 최호웅 위원장도 정보주체가 활용 과정에 개입할 수단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정보 처리자의 선의에 맡길 수밖에 없고,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 국가의 선의만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자신의 정보가 어떤 식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개개인 환자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정보 집중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오병일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대표는 "정부대안 제10조가 원보유기관의 정보를 모아 데이터셋을 구축하고 2차 활용기관에 제공하는 구조로 해석된다"며, "특정 연구가 끝난 뒤에도 정부가 정보를 계속 보유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가명정보도 개인정보인데 개인정보를 중앙에서 다 모아서 가지고 있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의료·금융정보의 결합을 막기 위해 보건의료 마이데이터 사업자의 다른 분야 사업 겸영을 제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이상윤 책임연구위
"환자 정보는 기업의 산업 자원 아니다…고용차별·진료 위축 우려"
공익적 활용의 기준과 성과 배분도 쟁점이었다. 이상윤 위원은 "기업의 신약·의료기기 개발을 곧바로 공익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주체나 절차나 과정이나 결과나 이 모든 부분에서 공익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익적 목적의 의미를 시행령에 맡기지 말고 법률에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 김성주 대표는 "우리 환자의 의료정보는 기업의 산업 자원이 될 수가 없다"며 "환자 정보를 활용한 연구 성과가 고가의 의약품·치료기술로 돌아온다면 비용은 다시 환자와 국민이 부담한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법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의료정보 활용이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민간기업의 새로운 수익사업 모델로 발전할 것인지" 따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환자의 동의·거부권과 공공기관 중심 관리체계를 보장하고, 성과가 치료 접근성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민주노총 홍석환 정책국장은 "고용관계에서 개인의 동의가 실질적인 보호장치가 되기 어렵다"며 "사용자가 채용이나 부서 배치 과정에서 전송요구권으로 확보한 건강정보를 제출하라고 하면 노동자나 구직자가 거부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홍 국장은 "형식은 자발적 동의지만 실질적으로는 완벽한 강요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건강정보와 가공·분석물의 채용·인사·보험심사 목적 이용을 막고, 정보 제출 강요에 실효성 있는 처벌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전진한 정책국장은 "정보 유출이나 진료 외 활용에 대한 불안이 환자와 의료진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진료실에서의 정보만큼 내밀하고 민감한 정보가 세상에 또 없을 것"이라며 "환자가 정보를 숨기거나 치료를 기피하면 보건의료체계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무상의료운동본부 김재헌 사무국장은 복지부를 향해 "기업이 영업비밀을 내세울 경우 정부가 정보 활용을 제대로 감독할 수 있나"라고 물으며, "유출·오남용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답변하라"고 질타했다.
보건복지부 김민정 의료정보정책과장
복지부 "동의 의무 유지…기업 활용 일률적 배제는 곤란"
이 같은 비판에 복지부 김민정 의료정보정책과장은 "정부대안이 정보 활용을 무조건 확대하려는 법이 아니다"라며 "이미 활용되는 정보를 의료 분야의 특성에 맞게 보호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유전정보에 대해서는 "기존 법률에 따른 동의나 보호 의무가 완화되지 않는다"며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른 보호체계가 유지된다"고 밝혔다.
김 과장은 "옵트아웃은 자기결정권 강화 차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이 일정한 목적의 동의 없는 가명정보 활용을 허용하고 있으며, 정신질환·유전질환·성매개감염병 등 차별·인권침해 위험이 큰 정보는 동의를 받도록 정부대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위원회 승인에 따른 동의 예외 지적에는 별도의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정보 보유기관의 독자적인 제공 결정권에 대한 지적에는 기관별 기준이 달라져 심의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신 정보주체와 보유기관 대표가 참여하는 정책위원회에서 수집 목적과 범위 등을 심의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김 과장은 "연구개발 목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정보의 활용을 공익적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도 "기업의 정보 활용을 일률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약·의료AI 등의 개발 기여를 고려해 공익성이 인정되는 활용을 엄격한 조건과 절차에 따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처벌이 부족하다는 비판에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서 목적 외에 사용하면 제재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는 "내밀한 진료상담 내용은 전송 대상이 아니며 수치화·표준화된 데이터만 전송된다"고 설명했다.
데이터셋 보유에 대해서도 "일반 연구자는 안전한 환경에서 연구하고 종료 후 정보를 폐기하며, 별도 법적 근거가 있는 경우 공익적 목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고 밝히며 "의료정보 활용 성과의 공익적 환류 방안은 제도 반영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