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본과 졸업시기에 연연 보단 교육 역량 끌어올릴 수 있는 '시스템 개선' 이뤄내야
서울의대 오주환 교수(대한예방의학회 의학과교육위원장).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서울의대 오주환 교수(대한예방의학회 의학과교육위원장)가 현재 의학 교육의 위기 상황을 오히려 개혁 기회로 삼아 기존의 의대 교육을 획일화된 '고정 학년제'에서 '자율 학점제' 교육으로 전환하자는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내놨다.
이를 통해 암묵적으로 유지해 오던 도제식 의학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의 자유로운 공부 스타일을 되찾을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 시스템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이는 '학사 유연화'가 아닌 '학사 시스템 개선'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특혜 시비도 벗어날 수 있다.
이때 각 의대가 자율적으로 처한 교육 환경에 맞게 학사 일정을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며, 대학은 본과 3·4학년 졸업시기에 연연하기 보단 교육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게 오 교수의 견해다. 오 교수는 "그동안 의대만 갖고 있던 의학 교육 커리큘럼의 신비화를 벗어 던지는 새로운 자연 실험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오 교수는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이선우 비상대책위원장의 '의대생 전원 복귀' 선언에 대해선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더 이상 지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요구 조건을 밝히지 않고 복귀 방향을 정하면서 특혜 논란도 일부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향후 정부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거버넌스 협의에 이선우 위원장이 자진해서 물러나야(Step down) 한다고 봤다. 그동안 이 위원장이 정부와 각을 세우며 의대협을 이끌어 왔던 만큼 상징적으로라도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오주환 교수와의 전화 인터뷰 일문일답.
Q. 최근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이선우 비상대책위원장이 의대생 전원 복귀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어떻게 지켜봤나.
그동안 이선우 위원장이 의대협 비상대책위원회를 전술적으로 매우 잘못 이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기자회견에서 보였던 이 위원장의 입장은 전반적으로 지금 의대생들이 가야 할 길을 잘 표현했다고 본다. 당시 그는 기자회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보여줬다.
Q.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인지.
올해 봄 가량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의대 모집인원을 원래 인원인 3058명으로 돌려놓은 시점에 (의대생들은) 승리의 기쁨을 누리며 돌아가고, 남은 기대 사항들은 정부와 이후에 협상해도 충분했다고 평가한다.
(이때 돌아가지 않는) 실기를 범했고 수업 거부로 인해 다시 정상 수업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사실상 불가능해 가까운 상태였다. 개인적으로 돌아가더라도 수업을 듣지 않아 유급 등이 확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들이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아무 조건을 내세우지 않고 의대생들이 복귀 의사를 밝히는 방법이었다. 이것이 유일한 합리적 대안이었고 이선우 위원장은 이를 선택했다.
Q. 학생들이 복귀하더라도 향후 의학 교육 정상화를 위한 정부와의 거버넌스 구축과 협의 과정들이 남아 있다. 의료계는 어떤 식으로 참여해야 할까.
상징적으로라도 그동안 (정부와 각을 세우며) 의대협을 이끌어왔던 이선우 위원장이 자진해서 물러나는 것이 이후 거버넌스 협의 과정을 민주적으로 잘 풀어갈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특히 이제 학업의 강도가 올라가게 되면 미팅을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처럼 지도부가 바뀌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
Q. 최근 의대생 복귀에 대한 형평성과 특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이선우 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특혜 요구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마치 특혜 요구를 하고 학사 변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가 인식하면서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기자회견 직후엔 오히려 혼란이 적었는데 최근 더 혼란이 크다. 그 배경엔 전공의들이 복귀하며 요구안을 밝힌 것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으론 의대생과 전공의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묶어서 바라보기 때문에 국민들에겐 이들이 모두 복귀 요구안을 제시한 것처럼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다고 풀이된다.
Q. 특혜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다만 한두가지 방법은 있다. 우선 의대협은 기자회견을 통해 다시 한번 분명히 전공의들의 요구와 의대생은 별개라는 점을 밝혀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제 의대생들이 학교 밖에서 요구하는 것을 중단하고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는) 선배 의사들에게 맡기고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점을 재차 강조해야 한다.
또 다른 방안은 대전협이 움직여야 하는 사안이다. 설문조사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 복귀 선결 조건 격인 요구안이 아닌 내부 희망사안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즉 현재 알려진 전공의 요구안들은 요구가 아니라 그냥 바람일 뿐이고 어떤 요구 조건도 내걸지 않고 복귀하는 것이 우리 공식 입장이라고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Q. 의학 교육의 질 하락을 막으며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학년 별로 대략 6개월 정도씩 시간을 날렸다. 교육 시스템을 아무것도 변경하지 않고 수업의 질도 떨어뜨리지 않는 방법은 학생들이 내년에 복학하는 것이다.
다만 바로 복학하면서도 수업의 질이 떨어지지 않게 교육을 하는 방법은 지금까지 의대에서 학년별로 정해 놓은 시퀀셜(Sequential, 순차적인)한 커리큘럼을 깨고 일반 학과처럼 변경하는 것이다.
일반 학과는 4년을 공부하며 개별 과목 등 교육 순서가 크게 정해져 있지 않다. 역량이 되고 소화할 수 있다면 4학년 수업을 2학년 때 들을 수도 있고 2학년 수업을 4학년에 들을 수도 있다. 사실상 의대를 일반 학과처럼 개별 수강 신청 제도로 통일하면 좋을 듯싶다.
이런 수업 방식은 요즘 MZ 세대들의 높은 창의성과 접목돼 수업 효과를 더 높일 것이다. 고학년 수업을 들으며 회진도 따라 돌고 잘 모르는 것은 스스로 찾아 가며 자연스러운 '자기주도적 학습'이 이뤄진다. 이런 것이 진짜 교육이고 이번 기회를 계기로 의학 교육이 발전하는 새로운 자연 실험이 될 수 있다.
의학 교육 혁신을 통해 자유로운 자기주도 학습 체계가 이뤄질 수 있다면 굳이 지금의 학년제를 고수할 필요가 없다. 졸업 학점만 다 채우면 먼저 졸업할 수도 있고, 학점이 부족하면 늦게 졸업할 수도 있다. 이건 특혜성 학사 유연화가 아닌 학생 개개인의 자유로운 공부 스타일을 돌려주는 의학 교육 시스템 개선이다.
Q. 본과 3학년 등 졸업시기와 관련한 논란이 있었다. 이에 대한 견해는.
기본적으로 졸업시기에 연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학 마다 학칙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없다. 만약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졸업시기를 정한다면 대학에 대한 과도한 간섭이 되는 것이고 이는 의료계가 그동안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대학이 자율성을 갖고 소신껏 교육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교육부의 역할이다.
구체적으로 본과 3학년 졸업시기를 2월, 8월, 5월 중 언제로 할 것인가 등 서너 개 관점에서 고르기 보단 한 발짝 떨어져서 더 질 좋은 의학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과 3, 4학년이 졸업 학점을 이수하는데 각자의 역량에 따라 1년 만에 마치는 학생도 있고 2년이 걸린 학생, 1.5년이 걸리는 학생이 나올 수도 있다. 핵심은 학생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Q. 중단된 의학 교육으로 인해 특히 지방의대 등은 교육 여건이 많이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현재 의대 교육 역량은 어느 정도 된다고 보나.
대학별로 교육 역량 훼손 정도에 대한 디테일한 맵은 갖고 있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많이 손상됐을 것으로 본다. 또한 이것이 지방의대 학생들이 미리 복귀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돌아가도 학교가 교육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문제 역시 기존 학년제 수업 방식을 고수할 땐 교수 부족 등으로 공백이 있지만, 자유로운 학점 이수를 하게 되면 당장 교육이 가능한 과목은 먼저 수강하고 그렇지 않은 과목은 시간을 갖고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른 대학 교수에 의한 원격 줌 수업이나 초빙 연자 등을 통해 수업을 할 수도 있다.
본과 3, 4학년의 경우는 다른 대학 병원으로 파견 실습을 할 수도 있다. 즉 여력이 되는 쪽으로 서로 메꿔주고 전국 의대가 서로 교육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Q. 마지막으로 이번 의료사태 이후 의료계는 어떤 방향으로 다시 나아가야 할까.
시스템의 개선은 0 아니면 1의 이분법적인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수정 프로세스'다. 당장 싸워서 모두 바로잡고 돌아간다고 완벽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의료계는 이를 인정하고 각자 현업에서 계속 (제도 개선에 대한) 수정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민감하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정부도 이를 잘 할 수 있도록 이전 윤석열 정부처럼 일방향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참여적인 대화 방식의 거버넌스를 만들어서 꾸준히 협의해야 한다. 정기적인 논의가 가능한 체계 속에서 시스템 개선을 모두가 만족스러워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또한 향후 의료계의 투쟁 방식은 합리적이었으면 한다. 누가 봐도 '의사들이 오죽하면 저러겠느냐'고 사회가 지지할 수 있는 지지 받는 투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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