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응급의학회 노현 정책이사 “전원 걱정부터 하게 되는 현실…응급실 초기 안정화·공적 전원조정 결합 필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소아응급의료체계 개선을 위해 지역 응급실의 초기 안정화 역량을 강화하고, 중증 소아 환자의 최종 치료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공적 전원조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순천향대부천병원 응급의학과 노현 교수(대한소아응급의학회 정책이사)는 최근 열린 대한소아응급의학회 학술대회에서 ‘소아응급 연결체계 개선을 위한 정책 제언’을 주제로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노 교수는 현재 소아응급의료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배경으로 ▲배후진료 붕괴 ▲전원조정 책임기관 부재 ▲응급처치 지연 ▲사법 리스크를 꼽았다.
그는 소아 경련 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찾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로 “의사들이 최종 진료까지 생각해야 하는 현실 때문”이라며 “열성 경련 아이 중 PICU(소아중환자실)에서 진료를 봐야 할 정도로 악화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연결이 끊어져 있는 상황에서 만에 하나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때문에 폭탄 돌리기를 하게 된다”고 했다.
일선 응급실에서 초기 처치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후 PICU 입원이나 소아신경 진료 등 배후진료 연결이 보장되지 않는 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전원조정 체계의 한계도 지적했다. 현재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이 운영되고 있지만, 조정 권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사법 리스크도 소아응급 환자 수용을 꺼리는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노 교수는 “최근 당직을 서던 일반 외과 전문의가 소아 응급환자를 수술했다가 장애가 남은 사건에 대해 10억 배상 판결이 나왔다”며 “선의를 갖고 수술이나 처치를 했더라도 거액 배상 판결이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 의사들은 안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노 교수는 소아응급체계 개선의 핵심 딜레마를 “중증 소아를 모아 집중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지역에서 초기 안정화하고 연결할 것인가”라며 “해법은 결국 두 전략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체계”라고 설명했다. 119와 응급센터의 소아응급 환자 대응 역량 강화 필요성도 제언했다.
대한소아응급의학회 노현 정책이사.
실제 영국과 호주 등은 지역병원의 초기 안정화 이후 전문 이송팀이 환자를 거점 PICU로 언결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미국은 응급실과 응급의료서비스(EMS)에 소아응급 전담자 역할을 하는 코디네이터(PECC)를 두고, 소아 장비·교육·사례관리 등을 지속적으로 챙기도록 하고 있다.
노 교수는 구체적 정책 과제로 119 의 소아응급 환자 대응 역량 강화, 응급실별 핵심 소아응급 안정화 역량 명시 및 공적 전원체계 구축을 꼽았다.
그는 “119 단계에서 작동성을 강화해야 한다. 중증 소아 환자는 적정 진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바로 이송하는 게 원칙이지만,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서는 119에서 적절한 처치를 하면서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고 거기서 최종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119 이용률을 높이고 소아전용 장비 등에 대한 구급대원 대상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번에 소아 3대 응급질환인 심정지, 아나필락시스, 간질 지속 상태의 경우 초기 안정화가 모든 권역센터의 의무가 됐다”며 “지금은 사후 평가로 점수를 매기는 시스템인데, 실제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그는 또 “광역상황실의 전원 명령권을 강화하고, 전원은 공적 시스템이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며 “이와 함께 전원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형사 특례 등 의료진에 대한 법적 안전망을 마련하고 보상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응급센터의 소아응급에 대한 준비도 평가와 배후진료 확충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노 교수는 “응급센터가 소아를 보기 위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인증 제도와 보상 체계를 만들고, PECC 제도를 도입해 응급실과 구급대에서 소아응급 분야를 전담 관리하는 담당자를 둬야 한다”고 했다.
이어 배후진료와 관련해선 “권역별로 일정 수준의 PICU 병상을 비워놓도록 하고, 비워놓은 병상에 대해서도 정부가 충분히 보상해야 한다”며 “현재 시행 중인 중증질환 순환당직제도 참여 의료기관에 대한 인센티브도 강화해 참여 기관을 더 늘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노 교수는 끝으로 “현장에서 먼저 드는 생각은 ‘이 아이를 어떻게 치료해야 하지’가 아니다. 치료 방법은 다 안다. 솔직히 ‘이 아이를 누구에게 받으라고 하지’라는 생각부터 하게 되는 게 현실”이라며 “의료진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아이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