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 연구진, 실손보험 중심 6단계 악순환 제시…“의사 윤리교육보다 보험·수가 구조 개편 필요”
급여 적자 비급여로 보전하고 실손보험이 비용 지급…건강보험 재정 최대 10조9200억원 전가 추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최근 과잉진료를 막겠다며 도수치료를 관리급여로 전환하고 비급여 관리 강화에 나선 가운데, 실손보험과 비급여 중심의 의료기관 수익구조가 의사의 진료행태까지 왜곡하는 악순환을 만든다는 분석이 나왔다.
우리나라의 낮은 급여 수가와 행위별 수가제, 가격과 이용량을 통제받지 않는 비급여, 높은 실손보험 보장률이 맞물리면서 평범한 의사도 비급여 진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지적이다. 개별 비급여 항목의 가격만 규제할 것이 아니라 실손보험과 급여 수가, 의료기관 수익구조를 함께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단국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안상현 교수와 단국대 의대 가정의학교실 정유석 교수는 최근 한국의료윤리학회지에 게재한 ‘실손보험은 의사의 진료행태를 어떻게 왜곡하는가?: 실손보험의 과잉진료 유도 기전과 구조적 해법’ 논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연구진은 실손보험을 중심으로 ▲비급여 진료 팽창 ▲의사·환자의 도덕적 해이 ▲의사와 환자의 암묵적 공모 ▲건강보험 재정 잠식 ▲의료전문직업성 훼손 ▲공급자 유인수요 증가로 이어지는 6단계 악순환이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과잉진료를 촉진하는 제도적 유인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의사에게 ‘윤리적으로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급여 진료 적자 비급여로 보전…실손보험이 ‘지불 파이프라인’ 역할
연구진은 우리나라 의료환경이 건강보험 급여 수가만으로 의료기관의 비용을 충분히 보전하기 어렵도록 하는 정책 하에서 급여 진료의 손실을 비급여 수익으로 메우는 구조로 굳어지게됐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료기관은 가격 통제를 받지 않는 도수치료, 비급여 주사, 초음파, MRI, 재활치료 패키지 등을 통해 수익을 확보하고, 환자는 실손보험으로 비용 대부분을 보전받기 때문에 가격에 대한 저항을 덜 느끼는 방식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2024년 실손보험 전체 지급보험금 15조2000억원 가운데 비급여 주사제는 2조8000억원, 도수치료 등 근골격계 치료는 2조6000억원으로 전체의 35.8%를 차지했다. 암 치료에 지급된 1조6000억원보다 많은 규모다.
연구진은 “급여 진료의 적자를 비급여로 보전하고, 그 비급여를 실손보험이 지불하는 교차보전의 전형적인 양상”이라며 “교과서적 진료, 적정 진료, 비용효과적 진료는 한국의 현실 의료에서 이상에 그칠 뿐”이라고 지적했다.
실손보험 시장도 빠르게 팽창했다. 2024년 기준 실손보험 가입자는 약 39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70%를 웃돌았고, 지급보험금은 2015년 5조8000억원에서 2024년 15조2000억원으로 2.6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건강보험 보장률은 63.4%에서 64.9%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지만, 비급여 진료비는 2017년 14조3000억원에서 2024년 21조8000억원으로 늘었다. 특히 2024년 비급여 진료비와 실손보험 지급보험금 증가율은 모두 8.1%로 일치했다.
연구진은 이를 비급여 시장의 팽창이 환자의 의학적 필요나 지불 능력보다 실손보험이라는 지불 수단과 밀접하게 연동된 ‘동조화’ 현상으로 평가했다.
실손 가입자 의료이용 증가…건보재정 최대 10조9200억원 전가
실손보험이 유발한 의료 과다이용은 민간보험사의 손해율 문제를 넘어 국민건강보험 재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 분석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는 비가입자보다 외래진료를 연간 2.33~7.70일, 입원진료를 1.54~7.05일 더 이용했다. 이에 따라 2022년 발생한 추가 진료비는 12조9400억~23조2800억원으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건강보험이 부담한 비용은 3조8300억~10조9200억원으로 분석됐다.
도수치료나 비급여 주사를 받더라도 진찰료와 X-ray 검사, 혈액검사, 물리치료 등 건강보험 급여 항목이 함께 시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손보험이 유발한 비급여 의료이용이 결국 공적 건강보험 재정 지출로 이어지는 구조다.
연구진은 실손보험료를 돌려받으려는 환자와 비급여 수익을 확보하려는 의료기관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과도한 의료이용을 부추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는 개별 의료진의 도덕성 문제라기보다 높은 실손보험 보장률과 비급여 수익구조가 만들어낸 제도적 유인이라는 설명이다.
실손보험 4세대까지 개편했지만 풍선효과…신세대 손해율 더 높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실손보험 상품 구조도 여러 차례 개편됐지만 과도한 의료이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9년 이후 본인부담률을 높이고 도수치료와 비급여 주사, 비급여 MRI를 특약으로 분리했지만, 의료기관이 체외충격파나 줄기세포 주사 등 새로운 비급여 항목을 발굴하면서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2024년 말 기준 실손보험 손해율은 3세대 128.5%, 4세대 111.9%로, 1세대 97.7%, 2세대 92.5%보다 오히려 높았다.
연구진은 본인부담률이 높아졌더라도 의료기관이 비급여 단가를 인상하거나 급여와 비급여를 혼합 처방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전체 진료 횟수와 청구액 증가를 막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의 분석에 비춰보면 도수치료 관리급여와 같은 개별 항목 규제만으로는 의료이용이 다른 비급여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를 완전히 차단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
정부의 비급여 관리정책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가격과 이용량 관리뿐 아니라 실손보험 보장구조와 급여 수가, 의료기관 수익구조를 함께 개편해야 한다는 시사점이 나온다.
“윤리교육만으로 해결 어려워…의사가 애쓰지 않아도 되는 제도 만들어야”
따라서 연구진은 과잉진료에 대응하기 위해 의사를 악마화하고, 의사에게만 책임을 물어 윤리교육을 강제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과잉진료를 유도하는 경제적 인센티브가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개별 의사에게 비급여 진료를 줄이라고 요구하면, 해당 의사는 경쟁 과정에서 환자와 수입을 잃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가치 의료를 줄이기 위한 국제적 자율규제 운동인 ‘현명한 선택’ 권고를 단순히 배포한 경우 저가치 의료서비스 이용 감소에 성공한 연구는 13%에 불과했다. 반면 교육과 피드백, 구조변화를 결합한 복합개입은 77%에서 감소 효과가 나타났다.
이에 연구진은 ▲비급여 가격과 이용량의 투명성 확보 ▲비필수 비급여 가격 상한제 또는 관리급여 도입 ▲진료량보다 질과 성과를 보상하는 지불제도 전환 ▲저가치 의료에 대한 실손보험 보장 축소 ▲필수의료 수가 정상화 ▲중증·응급 중심 건강보험 보장체계 개편 ▲과잉진료 의료기관에 대한 의료계 중심 감시체계 구축 등을 제안했다.
다만 실손보험의 긍정적인 기능은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65% 수준에 머무는 상황에서 실손보험은 중증질환 환자의 고액 비급여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안전망 역할도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실손보험 자체보다 혼합진료 허용과 비급여 가격 무규제, 행위별 수가제, 민간 의료기관 중심의 공급구조가 실손보험과 결합하면서 과잉진료를 유발하는 것이 핵심 문제라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영웅적 도덕심으로 제도에 맞서는 소수의 의사가 아니라, 평범한 의사들이 자연스럽게 윤리적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이라며 “그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 이제 한국 의료계와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법이 도덕적 의사를 훈련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윤리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도덕적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