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신의료기술 평가유예 2년을 채운 기업들이 추가 연장을 2년이 아닌 1년만 받는 사례가 나오며 업계에 충격이 지속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3월 제도를 개정해 “2년+2년(최대 4년)”을 허용했지만, 실제로는 ‘2+1’에 그친 기업들이 등장한 것이다.
카카오헬스케어 김치원 부대표는 1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KHF 2025 디지털헬스케어 서밋 ‘한국 의료 현장에서 AI 활용 현황 및 과제’ 세션에서 “(2년 연장을 받으면) 앞으로 2년 동안은 잔치일 줄 알았는데 1년 뒤에 비급여는 당연히 없어지고 그나마 싸게라도 급여를 받으면 다행인 상황이 돼버린 것”이라고 했다.
김 부대표는 “업계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2년 동안 연구를 마무리해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다수의 회사가 사실상 전혀 준비조차 안 돼 있는 상태에서 2년째를 맞이했다고 한다”며 “감독하는 (규제당국) 입장에서는 이럴 거면 2년을 연장해 주는 게 의미 없다고 보고 1년만 주는 걸로 결론 내린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대학에 입학한 뒤 해방감에 취해 2년 동안 신나게 놀다가 3학년이 돼서 취업 준비를 하려니 아무 준비도 안 돼 있다는 걸 깨달은 상황”이라며 “놀 땐 놀더라도 취업 준비도 같이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졸업할 때 급여도 비급여도 아닌, 회사로선 최악의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대학 신입생처럼 해방감에 2년 허송세월 보낸 것…허가 때부터 철저히 준비해야
에버트라이 고준혁 선임은 “허가 단계부터 2년 연장을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며 “허가받고 숨통이 트였다고 비급여로 팔아버리는 접근이 아니라, 어떤 환자 아웃컴 지표를 가져갈지를 미리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 지표를 축적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고 2년으로는 부족하니 추가 2년이 필요하다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피 김중희 대표(분당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유예 기간 동안 급여 전환만 바라볼 게 아니라 해외진출도 병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대표는 “급여 전환이 되면 가격이 확 줄어든다. 비급여 매출이 생겼다고 직원을 대거 채용했다가, 급여 전환 후 어려워질 수 있다”며 “AI 업체들은 동시에 해외 인허가도 열심히 준비해 시장을 넓혀야, 늘린 인력을 유지하며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세션에서는 평가유예 신의료기술이나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된 의료기기들이 ‘동의서 지옥’ 탓에 정작 병원 현장에서 사용되기 어렵다는 불만도 나왔다. 비급여로 쓰면서 유예기간 동안 임상적 근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특히 응급실 특화 심전도 분석 솔루션 ‘ECG 버디’를 개발한 알피의 김 대표는 촌각을 다투는 응급 영역에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 대표는 “응급의학과 의사 입장에서 응급 상황에서 동의서를 받는 건 정말 부담되는 일”이라며 “동의서 받는 게 조금이라도 더 편한 쪽을 택하려고 동의서를 한 장만 받아도 되는 평가유예 신의료기술 트랙을 탄 건데 지금은 평가유예 신의료기술도 혁신의료기술처럼 3장의 동의서를 받는 걸로 바뀌었다”고 했다.
이어 “어느 트랙이든 동의서 조건은 완화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최소한 응급 영역에서 쓰는 솔루션 만큼이라도 동의서 문제는 해결해 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새 솔루션 도입 '동의서 3장'이 걸림돌…전자시스템 활용 등 부담 완화 방안 필요
은성의료재단 구자성 이사장도 동의서 문제가 병원들이 새로운 솔루션 도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되고 있다며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구 이사장은 “새 솔루션 도입 시 병원이 하는 첫 번째 고민이 환자에게 도움이 될지고, 두 번째가 병원 경영에 도움이 될까라는 부분”이라며 “병원들은 동의서를 받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직원들이 싫어하진 않을까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일반적인 비급여 동의서는 서류 한 장으로 해결이 된다”며 “하지만 혁신의료기술, 평가유예 신의료기술의 경우 동의해야 할 항목도 많고 동일한 환자라도 솔루션을 사용할 때마다 매번 다시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구 이사장은 “사실 제도의 취지는 일정 기간 기술의 안정성과 효과성을 최대한 많은 환자를 통해 검증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며 “그런데 동의서 문제로 쓰기가 어려워 (규제당국에) 항의도 많이 하고 개선도 수차례 요청했지만 (동의서 규정이 엄격한) 이유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에버트라이 고준혁 선임은 동의서를 받는 절차만이라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고 선임은 “의료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정부가 지금과 같이 동의서 받는 방식을 유지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며 “전자시스템을 통해 동의서를 받는다면 실시간으로 동의서를 잘 받고 있는지 등도 확인할 수 있고, 적시에 동의서를 받는 효율성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