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12.30 10:59최종 업데이트 22.12.30 10:59

제보

고질적 저수가에 필수의료 기피...대한민국 의료 지속 가능성을 위해

[칼럼] 노동훈 카네이션요양병원 원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대한민국 의료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시스템과 제도가 잘 정비돼 있다. 전 국민 건강보험 적용, 도보 10분 거리에 즐비한 병의원, 조기 암 검진 등 세계가 부러워하는 건강검진 제도, 대학 병원도 당일 진료 가능한 의료 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5 병원에는 해외에서 의료를 배우러 유학생들도 올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 

하지만 대한민국 의료는 속으로 곪아 들어간다. 고질적 저수가에 의사에 불리한 환경이 많다. 분만 중 사고가 생기면 의사의 과실이 없어도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이대목동병원에서는 신생아 사망사고로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구속됐다. 최근 인천의 대학병원은 소아과 전공의가 없어 소아 환자 입원이 불가능하다고 했고, 2023년 전국 소아과 전공의는 16%(33명/207명)밖에 충원되지 않았다. 

필자는 2005년 대구에서 인턴을 했다. 외과 인턴 때 정규 수술을 마치고 저녁 8시에 첫 끼니를 먹으러 왔는데, 맹장염 환자 2명과 복막염 환자 1명이 왔다. 식사 중 수술방으로 들어가 수술을 마치니 다음날 새벽 5시. 다시 루틴 업무를 했다. 신경외과 인턴 때도 같았다. 30대 초반이었지만, 내 평생을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했고 신경외과 의사의 꿈도 접었다. 

저출산의 직격탄을 맞은 산부인과 소아과는 전공의 지원자가 감소 추세였다. 하지만 소아과를 선호하는 의대생이 있었고, 지원율을 유지했지만, 이대 목동병원 사건이 계기가 되어 위축됐다. 소아과 의사 구속을 본 인턴은 소아과 지원을 꺼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불가항력적인 사건이라도 치료 결과에 따라 구속된다면, 누가 환자를 볼 것인가.

대한민국 의료가 무너지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지만, 원인을 찾아보면 결국 저수가 문제로 귀결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가 돈만 밝힌다고 하겠지만, 의사도 가정을 꾸리고 직원의 급여를 주고 병원 월세와 약값을 지불해야 한다.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도 건강보험수가로 병원을 운영하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저수가는 모두가 아는 문제다.

대한민국 의료보험은 단일 보험체계로 모든 병, 의원은 당연 지정제로 정해져 건강보험의 통제를 받는다. 건강보험공단의 수가 협상은 밴드 규모를 정한 뒤 각 직역(의원, 병원 등)의 수가 인상을 분할 해 나눠 가진다.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는 깎이는 구조다. 운영위원에 공급자 단체(병, 의원)는 배제된 형태이며, 수가 협상이 결렬되면 공급자는 패널티를 받는다. 

현재의 수가 협상은 협상을 가장한 일방통보다. 물건을 사고팔 때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 시장 가격이 결정된다. 그런데 수가 협상은 공급자에게 권한이 없고 소비자가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다. 의료의 공공성을 감안해 인상 폭을 조절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수십 년째 반복되니 대한민국 의료가 기형적으로 가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건도 같은 원인이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만 힘든 것은 아니다. 정형외과, 성형외과 전공의도 극한 직업이다. 하지만 인기과인 것은 힘들어도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는 안정적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에 꾸준히 지원한다. 소아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은 미래가 보장되지도 않고, 안정적 삶을 영위하기 어려워 지원하지 않는다. 결국 저수가가 문제다. 

의사 숫자가 부족하니 공공의대를 만들고 의사 정원을 늘리면 문제가 해결될까. 의대 6년, 인턴, 레지던트 4~5년을 포함하면 지금 정원이 늘어난 의사는 빨라야 10년 뒤 현장에 공급된다. 10년 뒤 미래 세대에 영향을 미칠 의료 정책을 쉽게 결정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공공보건의료 인력이 부족한 이유를 파악하는 실태 조사, 연구는 한 번도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민간의 영역에 맡겨두고 없어져도 괜찮다면 필수의료가 아닐 것이다. 소아과는 비급여가 거의 없다. 보험진료만으로 의료기관 운영이 어렵다. 고령화를 맞이한 요양병원도 같은 처지다. 인두제에 따라 정해진 수가를 받는 요양병원은 물가 상승률 대비 낮은 수가 상승에 비급여가 없어 수년 내 많은 병원이 문을 닫을 것이다. 지속가능성이 없다. 

대한민국 저수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하위에 속하고 중국, 캄보디아와 비교하는 것이 더 빠르다. 소아 필수 접종 백신(일본뇌염, DTP 등)은 수시로 품절이다. 백신 가격을 합리적으로 정해야 수입되는데, 의료 수가가 낮으니 안정적 수급이 어렵다. 비뇨의학과에서도 필요한 약이 제때 공급되지 못하는 문제가 많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가 보게 된다. 

건강보험 재정이 7~8년 남았다고 한다. 건강보험 체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고민하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지난 8일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효율화로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제시했다. 14일에는 건강보험 수가 협상 제도 개선방안 토론회를 진행했다. 수가 협상 제도는 한 번에 해결하기 어렵고 갈등 요소가 있는 부분은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로드맵이 필요하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댓글보기(0)

전체 뉴스 순위

칼럼/MG툰

English News

전체보기

유튜브

전체보기

사람들

이 게시글의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