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프랑스에서 사회당 정부를 이끌었던 조스팽 전 총리가 지난 3월 22일 향년 88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총리로 재임하면서 프랑스 국민 모두를 위한 보편적 의료보험(CMU) 도입과 병원의 주 35시간 근무제, 쿠슈네르 법 제정, 일반의학과 전공의 프로그램 개혁 등 의료 시스템과 사회복지에 지대한 변화를 이끌었으며 그 혜택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 2000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프랑스의 의료 보장성 확립을 위한 제도는 당시 15만~20만 명의 국민이 건강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고, 약 650만 명은 추가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조스팽 총리는 1999년 법률제정을 통해 기본 의료보험 정착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추가 보험 모두 도입해 운영했다. 현재는 개편된 제도를 사용하고 있으나, 그 근간은 동일하다. 2002년에는 보편적 연대 정신에 따라 개인 맞춤형 자율 지원 수당도 도입했다. 60세 이상 부양 대상자에게 가정 간호 또는 요양 시설 입소 비용을 지원하는 개인별 정부 지원 수당이다.
조스팽의 괄목할 만한 업적 중 하나는 지난 2002년 3월 4일에 제정된 환자 권리 및 의료 시스템의 질에 관한 법률, 일명 ‘쿠슈네르 법(Kouchner Law)’으로 환자 정보 제공, 치료에 대한 사전 동의, 그리고 오늘날의 무과실 보상을 법제화하여 진정한 의료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프랑스 조스팽 내각 의료 사각지대 해소 정책 선도 지역 보건 기관 설립 법제화 싹터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는 병원의 주 35시간 근무제도는 병원 내 인력증원과 급여 인상의 조건으로 출발했으나 병원 근무의 특성상 잘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현재도 프랑스 병원의 법정 주당 근무시간 기준은 35시간인데, 조스팽이 인정했듯이 충분한 검토와 준비 없이 너무 급하게 추진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조스팽의 업적은 의학교육에도 영향을 미쳐 오늘의 프랑스 주치의제도의 핵심인 일반의학 전문의를 다른 전문의자격과 동일하게 전문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오랫동안 추진했던 의사 보수 교육도 의무화했다. 조스팽은 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정책의 선구자로서, 의료 서비스가 부족한 지역에 의사들이 개업하도록 장려하는 최초의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지난 2009년에 지역 보건의 거버넌스를 위해 지역 보건 기관(Health Authority)의 설립을 법제화했다.
그는 의료 시스템의 점진적인 지역화를 추진하고 지역 전용 재정을 확보하여 진정한 지역 보건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병원, 지역사회, 그리고 사회복지 간의 더 나은 협력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조스팽의 의료비 지출 통제를 위한 정책은 개인 개원의들과 상당한 갈등을 초래하여 집권 5년 동안 의사들은 총리 관저에 한 번도 초대받지 못했다고 한다. 비록 의사단체와 사이는 좋지 않았으나 그래도 그의 의료에 대한 업적은 인정받고 있다. 특히 무과실 보상에 대한 제도는 우리나라에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만하다.
지난 2002년 조스팽의 법 제정으로 설립된 ONIAM(Office National d’Indemnisation des Accidents Médicaux)은 의료사고 피해자를 위해 설계된 무과실 배상제도의 핵심 기관이다. 의료인의 과실이 없어도 발생한 의료사고의 피해는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국가가 보상한다는 제도인데, 조정과 중재 절차를 사실상 의무적으로 거치도록 하는 구조가 특징이다.
의료분야 조스팽 총리의 최대 업적 중 하나 무과실 배상제도 도입 ‘ONIAM’ 법 제정
무과실 배상제도((no-fault compensation system)가 도입된 배경은 기존 민사소송 중심의 배상은 입증 부담, 시간과 비용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 의료의 특징인 불확실성은 적절하고 과실이 없는 의료행위도 예기치 못한 중대한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매우 드문 부작용, 불가항력적 합병증, 그리고 병원 감염, 의약품 부작용과 예방접종 피해 등 공공적 피해를 의사 개인에게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하지도, 합당하지도 않기에 공공이 책임지고 해결하는 것이다.
무과실 배상의 인정 요건은 영구 장애율이 약 24% 이상 또는 이에 준하는 중대한 손해 발생과 정상적 위험을 초과한 예외적 손해로써 인과관계가 명확히 존재해야 한다. 제도의 핵심은 예상 가능한 범위를 벗어난 중대한 부정적 결과에 대한 배상이다. 재원 구조는 국가 재정(공공기금)이 원칙이고, 일부는 보험 체계와 연계되도록 설계했다고 알려졌다. ONIAM은 설립 이래 배상액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최근 연례 보고에 의하면 한화로 연간 약 3000억 원 정도 지출이 소요됐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무과실 배상의 기본 정신은 의료행위로 인한 예기지 않은 손해는 개인 책임이 아닌 사회적 연대(solidarité)를 기반으로 공공의 영역에서 사회적 해결을 꾀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우리나라식 표현을 빌리자면 예기치 못한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는 ‘공공’이 해결하는 방식이다. 진정한 공공의료가 의사나 환자 모두를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쾌히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