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11.21 09:07최종 업데이트 25.11.2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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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외과 세부 전공이 아닌 외과의사가 수술했다고 10억 판결, 누가 응급수술에 나설 수 있나

[칼럼]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전 대한의사협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외과 모든 복부 수술의 수술전 수술명은 Explo-Lapa.(진단적 개복술)였다. 응급수술은 말할 것도 없고 수술을 위해 입원한 계획수술 환자의 마취과 수술방 배정을 위해 마취요청서에 기재하는 수술전 수술명도 진단적 개복술이었다. 물론 지금처럼 영상진단을 위한 기계가 정밀하지 못했고, 따라서 수술 전 진단을 영상진단의학과에 의존하기 보다는 외과의사의 진찰에 더욱 의존하던 때이기는 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건 환자나 보호자가 주치의 특히 자기 배를 열 외과의사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이었다는 데 있다.

예를 들면 식도 가까운 위의 상부에 발생한 위암환자의 경우 환자나 보호자에게 “Total gastrectomy and R-Y Esophagojejunostomy 그리고 extended lymph node dissection을 예상하지만 자세한 건 배를 열고 들어가 봐야 압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환자나 보호자들은 “어련히 알아서 잘 해 주시겠지요. 저희는 선생님만 믿습니다.”

응급실로 들어 온 고열과 심한 복통에 배가 돌덩이처럼 단단한 환자는 환자 보호자에게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으나, 응급 개복수술을 요하는 ‘복막염‘입니다 마취에 필요한 기본 검사만 마치면 바로 수술실로 들어 갈겁니다” 이렇게 설명드리고 분초를 다퉈 수술실로 밀고 들어갔었다. 지금처럼 검사를 위한 설명에 동의서에 이러이러한 진단하에 이러저러한 수술에 대한 설명에 동의서에 그런 요식행위에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물론 수술을 위해 입원한 환자의 경우 수술 전날 회진때 환자 보호자분들에게 수술방법에 대한 설명과 수술 중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해서 설명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술시간보다 환자진료하는 시간보다 설명 동의서 받는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환자의 예후에 가장 중요한 것 중에 으뜸은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 patient-doctor relationship이다. 의사도 환자를 믿고 환자도 의사를 믿어야 의사는 소신을 갖고 최선의 치료를 할 수 있다. 합병증과 후유증의 빈도가 높은 고난이도 수술도 혹시 합병증 후유증이 발생하더라도 환자, 보호자들이 이해해 주리라 믿고 환자를 위해 과감하게 수술을 결정한다.

수술 중 후 혹시 합병증 후유증이 발생하면 환자 보호자들에게 매일 시달리고, 법정에 끌려가는 일이 발생할 게 두려우면 이런 고난이도 수술은 회피할 수 밖에 없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얼마 전에 소아 응급수술이 필요한 야간에 소아외과 세부 전공한 의사가 없어서 외과의사가 수술한 환아가 원치않던 악결과가 발생해 법정에 간 일이 있었다.

소아외과 전문의가 아닌 외과 전문의가 수술했기 때문에 병원은 원고측이 요구한 배상액의 70%인 10억원을 물어내고, 수술한 외과 전문의도 1000만원을 물어내라는 판결이 나왔다.

외과에서 흉부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성형외과가 분리된 게 이제 겨우 반 백년이다. 외과 수련과정에는 식도, 위, 대장, 소장을 다루는 위장관 파트, 간, 담낭, 췌장을 다루는 간담췌 파트, 유방과 갑상선을 다루는 파트, 소아환아를 다루는 소아외과 파트, 간, 신장 이식등을 다루는 이식파트의 수련과정이 포함된다. 물론 외과 전문의라고 모든 파트의 모든 수술을 할 수 있을만큼 외과가 그렇게 허술하고 만만한 학문은 아니다.

그러나 소아외과 세부전문의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허비하느니, 외과 전문의가 소아 응급 수술을 하는 게 백배는 환자에게 유리할 정도의 의학적 식견은 갖고 있다.

앞으로는 갑상선 수술 후 예기치 않은 지연출혈로 기도를 압박해 호흡곤란으로 환자가 생사를 다퉈도 갑상선 세부전문의가 아닌 외과 전문의는 방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복부 수술 후 배액관으로 다량의 출혈이 발견돼 실혈 쇼크 임박한 걸 알면서도 유방 세부전문의는 개복해 출혈부위 지혈을 시도할 생각조차 않을 것이다.

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밑도 끝도 없는 수많은 설명과 동의서, 의학에 무지한 환자를 위한다는 온정주의적 사법부 판결 등 '환자 권익 우선이라는 지상낙원을 만들겠다'는 사회는 결국 '의사 환자간의 불가역적인 불신 지옥’을 만들었다. 이는 환자만이 아니라 의사를 포함한 국민 모두가 피해자라는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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