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김유리 기자] 정부가 개인 유사법인의 탈세를 막기 위해 '초과 유보소득 과세'를 신설했으나 산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다수 건설기업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제도 철회, 건설업종 제외 혹은 산업 특성을 반영한 합리적 개선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11일 발간된 '개인 유사법인 초과 유보소득 과세의 문제점과 건설업 영향 분석'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지난 7월 발표된 2020년 세법 개정안에는 개인 유사법인의 초과 유보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조세특별제한법' 신설 법안이 포함됐다. 기획재정부는 '개인사업자와 유사한 법인의 유보를 통한 소득 회피 등을 방지'하고자 신설 법안을 도입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2021년부터 개시하는 사업 연도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개인 유사법인이란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자가 법인 지분의 80% 이상을 보유한 법인이다. 초과 유보소득은 유보소득 중 적정 유보소득에 지분 비율을 곱한 것으로 기획재정부는 이를 주주에게 배당한 것으로 간주하고 배당소득세를 과세하겠다는 것이다. 유보소득이란 법인이 경상·비경상적 활동으로 창출하는 소득 중 기업 내에 잔류해 사외로 유출되지 않고 남아 있는 소득을 말한다. 적정 유보소득이란 각 사업연도의 소득금액 중 이월결손금, 세금 등을 공제한 소득, 즉 총배당 가능 금액의 50% 혹은 자본금의 10%에 해당하는 소득 중 큰 금액을 말한다. 따라서 초과 유보소득이란 유보소득에서 적정 유보소득보다 큰 금액을 사내 유보금으로 쌓은 금액으로, 기획재정부는 이에 대해 과세하겠다는 것이다. 과세 대상이 되는 유보소득은 2021년도 귀속분이기 때문에 이를 결산하는 2022년 3월에야 실질적인 과세 납부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건산연은 정부가 개인사업자와 유사한 법인의 유보를 통한 소득세 회피를 막고자 하고 있으나 개인 유사법인의 경우 대부분 중소기업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경우 오너 일가가 보유한 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이번 초과 유보소득의 배당소득 간주로 인한 피해가 집중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9%가 과세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며 실제로 비상장 중소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자의 지분율이 80% 이상인 기업이 49.3%를 차지했다. 김영덕 건산연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목표로 삼은 유보소득 과세 대상은 탈세를 목적으로 돈을 법인에 보관하는 방식으로 조세 회피를 해 온 법인일 것"이라며 "탈세와는 무관하게 법인의 사업 성격상 정상적인 영업 활동이나 경영 활동을 위해 보유하고 있는 사내 유보금도 많다는 점에서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가 이같은 점을 고려해 연말에 발표할 시행령을 통해 구체적인 과세 대상을 정하고 정상적인 사업을 하는 회사는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정상적인 활동의 사내 유보금과 탈세 목적의 사내 유보금을 구분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그 기준이 마련된다 해도 법인의 유보금 처리 문제로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산업 분야 가운데선 건설산업이 공공을 상대로 한 영업 및 주택사업 추진을 위해 사내 유보금을 일정 수준 확보하는 경우가 많아 건설기업 다수가 과세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됐다. 100억원 미만 중소형 공사에 주로 참여하는 중소 건설기업의 경우 공공공사의 경영상태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사내 유보금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건산연은 "건설공사 및 주택사업은 예측하지 못하는 위험이 많고 자기자본이 많이 투입되는 사업 특성상 많은 건설기업 대표자가 최대주주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지방자치단체 및 국가기관이 발주하는 추정가격 100억원 미만 공사는 행정안전부 및 조달청 시설공사 세부기준에 따라 낙찰자를 시공 경험과 경영상태 등이 포함된 공사수행능력 평가와 입찰가격 등을 기준으로 결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경영상태는 회사채 혹은 기업어음에 대한 신용평가등급이나 재무비율(부채비율, 유동비율 등)에 의해 평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중소 건설기업은 기업 규모로 인해 신용평가등급을 책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재무비율로 점수를 매기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더 좋은 경영상태 평가 점수를 얻기 위해 유보금을 쌓아두는 사례가 많아 유보 소득세가 시행되면 대다수의 중소 건설기업들이 과세 대상에 포함돼 과중한 세금을 부과받게 될 것이라는 게 건산연 분석이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사내 유보금 과세에 대한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다"며 "그럼에도 지금까지 과세가 되지 않았던 것은 무엇보다도 사내 유보금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 지속돼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내 유보금이 기업의 투자 회피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높은 유보금과 유보율은 기업 수익성이 높고 투자 여력이 크다는 건전한 기업경영의 지표로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기업 성장을 염두에 두고 법인사업자를 선택한 것인데, 사내 유보금 과세제도가 규제로 작용해 법인 전환을 꺼리게 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며 "개인사업자와 법인사업자의 과세 형평성을 어지럽히고 경제 주체의 행위를 왜곡하는 법인 유보금에 대한 간주배당금 과세 도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건산연은 초과 유보소득에 대한 배당수익 간주의 신설은 철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기획재정부는 이미 과세 신설로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이나 건설업과 같이 다수의 대형 및 중견, 중소기업이 과세 대상에 포함되는 것은 법 취지에 맞지 않고 사업 프로세스와 사업 기간 등 건설업의 특성상 사내 유보금의 확보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과세 대상에서 건설업은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건설기업의 경우 수주 산업이라는 건설공사 특성과 사업 기간이 길고 예측하지 못하는 대규모 투자금액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사내 유보금을 지속가능한 영업과 사업 확충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해야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산업 특성을 고려해 초과 유보소득 과세 대상에서 건설업종을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적정 유보소득의 범위를 산업 특성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적용하거나 적정 유보소득을 상향하는 방향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초과 유보소득의 산정 기준이 되는 적정 유보소득을 현실에 맞게 상향하는 방안, 일률적으로 적정 유보소득을 정하기보다 건설업 등 산업적 특성을 반영해 산업별로 적정 유보소득의 범위를 달리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그는 "보다 근본적으로 향후 기업에 대한 조세정책은 기업 자율성과 창의성을 인정해 정상적인 경영 활동에 대한 해석을 더욱 폭넓게 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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