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업데이트 22.03.29 14:08

[글로벌포커스] "러 제재냐 지지냐" 中의 침묵 언제까지 갈까

내부에서도 친러 비판 목소리 제기
전쟁 장기화 리스크 피하기 어려워
자칫하단 세컨더리 보이콧 위험까지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전쟁이 두 달째에 접어든 가운데 중국이 ‘대외정책 원칙’과 ‘외교노선’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러시아와의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외교 방향이 그간 중국이 대만을 상대로 국제사회에 주장해 온 ‘국가 주권 존중’ 원칙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대러 관계는 중국이 쉽게 놓을 수 없는 외교 자산이지만 국제사회의 제재 흐름을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국은 다음 달 1일 유럽연합(EU)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이 자리에서 중국은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 묻는 서방의 질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답을 내놔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까지 러시아에 다소 기울었던 중국의 표면적·기계적 중립이 재차 국제 사회의 압박을 받게 되는 셈이다.
이와 관련, 2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다음 달 개최될 중·EU 정상회담의 의제에 정통한 한 유럽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번 회담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는 점을 중국에 분명히 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유럽 정부 인사는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는 정도를 기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친서방 목소리에는 불편한 심기= 중국은 분명 러시아의 손을 잡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충돌’ 또는 러시아의 ‘특별군사행동’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확장에 대한 러시아의 불만을 이해하는 듯한 자세를 취해왔다.
친러 행보에 대한 내부 비판에 대해서도 중국은 불편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지난달 26일 쑨장 난징대 교수 등 중국 역사학자 5명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전쟁 중단을 촉구하는 입장문을 올렸으나 이 글은 2시간 만에 자취를 감췄다.
이달 12일에는 중국 국무원 산하의 공공정책연구센터의 후웨이 부이사장이 "푸틴과의 단절과 중립 포기는 중국의 국제적 이미지를 구축하고 미국 및 서방과의 관계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미국 카터센터가 발간하는 웹진 중국어 판에 실었다. 그러나 이 글 역시 온라인상에서 회자된 이후 접근이 차단돼 볼 수 없게 됐다.
이와 관련해 중국 내부에서도 조심스럽게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장귀훙 푸단대학교 국제관계 교수는 중국이 가치와 이익의 균형을 더 잘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러시아 쪽으로 기울고 있으나 우리가 주장해야 하는 결론도 생각해야 한다"면서 중국이 외교 정책의 원칙처럼 내세워 온 ‘주권’과 ‘영토보전’을 고려해야 함을 내비쳤다.
장 교수는 "국제 관계에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법적 옵션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명령과 자위대 둘뿐"이라며 "NATO의 확장에 러시아가 위협을 느꼈다지만, 그것은 미래의 위협일 뿐 자위를 정당화할 만한 직접적 위협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전쟁은 중국에 기회? 갈리는 의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전쟁 자체가 중국에 미칠 경제적 영향은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중국의 대(對)러시아 투자는 2020년 약 120억달러로 전체 해외 투자액의 0.5%에 그치며 양국 간 교역은 2015년 이후 증가 추세에 있지만 2020년 중국의 전체 교역액 대비 2.2%(약 1029억달러)로 미미한 수준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투자액과 교역액은 각각 1억9000만달러(0.01%), 154억달러(0.2%)에 불과하다.
베이징의 학자들이 후원하는 웹사이트인 중국 전략싱크탱크는 이번 분쟁이 오히려 중국에 전략적 기회를 제공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관련 저자들은 "전투의 장기화는 유럽, 미국, 러시아를 더욱 지치게 할 것이며 이는 전반적으로 중국에 이익이 된다"면서 "전쟁 뒤 나타날 새로운 질서에서 중국은 중재자, 더 나아가 새로운 규칙의 제정자로 부상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원자재 확보 측면에서의 긍정적 영향을 언급하고 있다. 러시아가 국제 제재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수록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칼륨이나 석탄, 육류와 같은 원자재를 저렴하게 공급 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중국은 러시아에서 원유(16%)·석탄(11%)·알루미늄(17.3%)·천연가스(18.9%)·비료(27.9%)·옥수수(27.1%)·보리(25.8%)를 다소 높은 비중으로 수입하고 있다.
반면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리스크가 커진다는 주장도 있다. 국방비를 증액할 수밖에 없는 유럽이 미국으로부터 더욱 독립적이고 새로운 지정학적 세력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베이징 카네기칭화센터의 자오퉁 선임연구원은 "이 같은 상황에서 유럽이 중국을 더 필요로 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지만, 이는 오판일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마지막 남은 친구… 中은 한층 중립 행보= 최근 중국은 더욱 중립적 입장에 무게를 두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가 지난 23일(현지시간) 352개 중국산 제품에 대해 관세 부과 예외 조치를 부활시키는 등 갈등 완화 제스처를 취한 뒤 중국 최대 석유화학 국유기업인 중국석유화공그룹(시노펙)이 러시아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를 중단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시노펙이 중단한 러시아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에는 러시아 최대 석유화학 기업인 시부르와 합작으로 새로운 천연가스 화학 공장을 건설하는 계획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 외신은 이 같은 행보를 두고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를 염두에 둔 중국 정부의 판단이 반영됐을 것이라 풀이했다.
앨런 칼슨 코넬대학교 부교수는 "중국과 러시아의 우정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실수"라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러시아에 직접 군사지원을 하는 등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허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중국의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기대하는 것도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전쟁을 끝내거나 우호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쟁과 대러 제재가 장기화될 경우 중국이 국제사회로부터 경제 제재 위반으로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 대상국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중국 금융기관의 달러 결제 시스템에서 퇴출되거나 반도체 수급이 어려워지는 등 부정적 영향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이승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경제실장은 "반도체가 포함될 수 있는 원자로·보일러·기계 및 부품과 전기·영상기기 및 부품이 중국의 대러 수출 주력 품목이라는 점에서 중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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