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안 그래도 물가가 오르고 있는데, 러시아 때문에 더 오르네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곡물을 비롯한 세계 식량 가격의 상승세가 한층 더 가팔라지고 있다. 두 나라는 '세계의 곡창지대'로 불릴 만큼 밀, 옥수수 등의 주요 생산국이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농사를 짓지 못해 각종 곡물이 급등하고 있다. 특히 피자와 빵은 물론 외식업계도 밀가루 가격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고 제품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상황이 이렇자 서민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는 모습이다. 소득은 늘지 않는데 물가가 치솟으면서 서민들의 생활은 더욱 각박해지고 있다. 전문가는 물가가 상승하면 홀로 의식주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1인 가구의 타격이 특히 클 것으로 예상했다.
16일 관세청과 식품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달 곡물 수입량은 196만4000톤, 수입금액은 7억5831만 달러로 집계됐다. 톤당 가격은 386달러로, 지난해 동월(306달러)보다 26.0% 올랐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되기 전인 2020년 2월의 262달러보다는 47.4%나 높은 것이다. 이로써 올해 2월 톤당 수입 곡물의 가격은 2013년 5월(388달러) 이후 8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다만 수입 곡물의 가격 상승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당분간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으로 꼽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과 보리 수출량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곡물 생산 및 유통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밀 자급률은 2020년 기준 0.8% 수준에 불과해 우려는 더욱 커진다. 결국 국제 밀 가격 상승은 국내 제분업계에서 생산하는 밀가루 가격을 끌어올려 라면·과자·빵·피자·햄버거 등의 가격 인상도 불가피하게 만든다.

이렇다 보니 서민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물가 상승은 실질소득을 감소 시켜 서민 경제에 직격탄이다.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 가계 지출에서 생활필수품 소비 비중이 크기 때문에 물가 상승은 더욱 가혹하게 다가온다.
서울 마포구에서 자취하는 대학원생 최모씨(25)는 "배달 음식이 비싸서 요리를 직접 해 먹으려고 하는데, 장을 볼 때마다 식재료 가격이 너무 비싸서 놀란다"며 "물가가 오른 게 확 체감된다. 요즘은 몇 가지 재료만 넣어도 3만원은 훌쩍 넘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보다 더 물가가 오르면 정말 힘들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직장인 정모씨(26) 또한 "물가가 더 높아진다고 하니 두렵다. 라면이나 빵은 우리 같은 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제품 아니냐"며 "걱정이다. 안 그래도 코로나19 때문에 국민들이 힘든 상황인데, 물가까지 더 오르면 안 될 것 같다. 살기가 너무 팍팍하다"고 털어놨다.
이 가운데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유가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지난달 우리나라 수입물가가 2개월 연속 상승했다. 수입 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준다.
한국은행이 지난 15일 발표한 '2022년 2월 수출입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물가지수는 137.34로 전월보다 3.5% 올랐다. 1년 전과 비교하면 29.4% 뛰었다.
상황이 이렇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적으로 세계 경제 질서를 바꿀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 세계 지역에 어떤 반향을 일으키고 있나'라는 제목의 블로그 글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고통과 인도적 위기를 넘어 세계 경제 전체가 성장 둔화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가속화 영향을 느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식품·에너지 관련 상품의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더욱 심화해 소득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수요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는 물가가 상승하면 1인 가구의 타격이 특히나 클 것으로 예상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물가가 오르면 서민들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된다. 특히 홀로 의식주 비용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1인 가구의 경우 타격은 더욱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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