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김진호 기자] 직장인 김근호씨(28·가명)는 대학교 시절 친구들과 최근 우리은행의 ‘우리 LCK 적금’을 함께 가입했다. 코로나19 4단계로 마땅한 놀이가 없어 유튜브를 통해 리그오브레던즈 리그(LCK)를 관람하며 단톡방에서 수다를 떠는 것이 퇴근 후의 낙인데, 본인이 응원하는 팀의 성적에 따라 ‘우대금리’가 달라진다는 말에 흥미를 느껴 다 같이 가입한 것이다. 친구들 모두 응원하는 팀이 달라 매일 바뀌는 순위가 이들의 유일한 관심사가 됐다.
유례없는 초저금리 상황에 매력이 반감됐던 시중은행의 수신상품이 ‘재미와 스토리’를 담아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나섰다. 신용카드 사용액 등 그간 까다롭고 거부감 높던 조건이 아닌 단순 ‘참여형 상품’은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은 최근 잇따라 이색적인 예·적금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가상화폐와 주식 등 유동성시장이 최근 불안 요인을 보이고 있어 안전자산인 은행 예·적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이르면 이달 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어 예·적금 수요는 더 몰릴 가능성이 높다.
BNK부산은행의 ‘담뱃값 적금’ 상품이 대표적이다. 만 19세 이상 성인으로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 가입이 가능한 금연 특화 상품이다. 우대금리를 모두 충족하면 최고 연 3.0%의 고금리를 제공한다. 비흡연자도 가입이 가능한 구조라 재테크에 관심이 높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실제 가입고객 현황을 보면 10명 중 8명(78%)이 여성 고객이다.
NH농협은행은 독도를 주제로 적금 상품을 선뵀다. 기본금리는 0.5%에 불과하지만 미션을 성공하면 최대 1.8% 금리가 적용된다. ‘디지털 독도 걷기 대회’를 주제로 서울부터 독도까지 거리인 420㎞(약 60만보)를 걸으면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를 달성한 참가자 1인당 6000원씩 기금을 조성해 독도 환경보전사업도 지원한다.
DGB대구은행의 ‘대프리카 예·적금’ 상품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역 기후 특성을 감안해 기온이 섭씨 38도 이상을 넘거나 열대야 날짜 수를 우대금리를 제공하는데 소비자들 사이에서 ‘콘셉트를 제대로 잡았다‘는 호평을 얻었다.
우리은행의 ‘우리 LCK 적금’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가 높다. LCK 10개 구단 중 자신이 응원하는 구단을 직접 선택해 가입할 수 있다. 고객이 선택한 응원구단 성적에 따라 최대 0.7%포인트, 가입고객 수에 따라 최대 0.3%포인트 우대금리를 적용 받는다. 최고 금리는 연 2.0%다.
신한은행은 ‘2021 신한 프로야구 예·적금’ 상품을 출시한 바 있다. 지난 3월 말 출시한 ‘2021 신한 프로야구 적금’은 우대금리 1.4%를 포함해 최고 연 2.4% 금리를 제공한다. 고객이 선택하는 구단의 성적에 따라 우대금리가 결정되는 구조다.
시중은행들이 이같이 참여형 구조로 만든 ‘예·적금 특판’을 선보이는 데는 지난 몇 년간 은행의 특판이 신용카드 연계형 등 이른바 실적형 구조로 만들어져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컸던 것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특판 조건에 대한 피로감이 있을 수 있다"며 "고금리를 제공한다고 해서 서둘러 알아보면 신용카드를 월 몇 백만원씩 사용해야 한다고 하니 누가 가입하고 싶겠냐"고 지적했다.
한편 시중은행의 예·적금 특판 상품은 올 하반기에 더 출시될 가능성이 높다. 한은이 이르면 이달 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는 등 본격적 금리상승기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금리상승기에 접어들면 저금리 상황에서 외면 받던 예·적금 특판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도 다시 살아날 것으로 보인다.
김진호 기자 rpl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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