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문화체육센터에 마련된 예방접종센터에서 백신 접종이 진행 중이다. 사진=김현민 기자
서울 시내 은행에서 근무하는 권연서(33·가명)씨는 최근 지점장으로부터 백신 휴가를 하루만 쓸 수 없겠냐는 얘기를 들었다. 접종 당일을 포함해 이틀을 쉴 수 있지만 휴가자가 많아 지점 근무 인력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권씨는 "첫 백신휴가를 쓴 직원도 하루만 쉬고 근무해 지점 관행처럼 됐다"면서 "눈치가 보여 백신 접종 다음 날도 일해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민방위 종사자로 일찌감치 얀센 백신을 맞은 행원 권준렬(32·가명)씨는 최근 백신 휴가자가 많아 업무부담이 크게 늘었다. 얀센과 달리 2회에 걸쳐 접종하는 모더나와 화이자 백신 접종자가 늘면서 4일간 휴가를 쓰는 사람도 많아졌다. 권씨는 "백신을 맞아야 해 어쩔 수 없다"면서도 "은행은 통상 연차를 여름에 1~2주씩 몰아서 쓰는데 백신 휴가자까지 있어 죽을 맛"이라고 불평했다.
우선 백신접종 대상자에 포함된 서울 시내 은행원들 사이에서 잡음이 이는 모양새다. 지점별로 백신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해 내부 불만도 나오는 상황이다. 여름휴가 기간과 겹쳐 업무부담이 가중됐다는 목소리도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A은행 사내 인트라넷에는 최근 백신 휴가를 접종 당일밖에 쓰지 못했다고 호소하는 글이 올라왔다. 대다수 지점에서는 지침에 따라 이틀을 보장받는데, 본인이 속한 지점에서만 하루밖에 쉬지 못해 부당하다는 취지다.
앞서 서울시는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큰 종사자 31만9000명을 대상으로 3차 자율 백신 접종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정부로부터는 백신 물량 60만2000회분을 배정받았다. 대상자에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을 비롯해 은행업 종사자가 포함됐다. 1972년~2003년생이면서 은행에서 일하면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맞을 수 있다. 계약직 직원과 청원경찰 등 파견직도 우선 접종 대상자다.
현장지점 인력들 "업무 부담에 휴가 제대로 쓰기 어려워"B은행의 한 지점에서는 서울시 공고가 내려온 후 지점장을 포함한 전 직원이 달력을 펼쳐놓고 근무 일정을 조정했다. 여름휴가 기간과 백신 접종에 따른 휴가자가 같은 날 겹치면 정상적인 은행 업무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접종 일정은 당사자가 원하는 날 마음대로 조정하기 어려운 데다, 일정을 조정하며 휴가기간에 백신을 맞게 된 직원도 생겼다.
주요 금융그룹은 지난 5월부터 백신휴가 지침을 마련하고 발표해왔다. 대다수 은행 본사와 금융노조 지침은 이틀간의 백신휴가 사용을 보장하고 있다. 부작용이 이어지면 추가로 하루를 더 쉴 수 있다.
이에 은행원 대다수가 이틀을 쉬지만 일부 지점의 경우 사정상 제대로 휴가를 쓰기 어려운 곳이 있다는 설명이다. 지점 통폐합으로 두 개 지점이 합쳐진 경우가 대표적이다. 채권과 업무는 두 배로 늘어났지만 인력은 3~4명만 늘어나는 것에 그쳐 휴가자가 많을수록 근무 인력의 업무부담이 커진다.
서울에 있는 은행지점에서 일하는 한 관계자는 "지점별로 재량권이 너무 큰 게 문제"라면서 "직원들 사이에서 가급적이면 백신 접종일을 금요일이나 주말로 맞춰달라고 요구하는 지점도 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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