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장세희 기자]정부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600조원을 넘길 가능성이 커진 것은 코로나19 위기 대응이 계기가 됐다.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 지원 대상과 규모가 늘어나면서 재정지출 역시 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씀씀이가 커질수록 재정건전성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복지 분야, 뉴딜 슬로건 사업 대폭 늘릴 듯= 예산 가운데 3분의 1은 복지 분야에 편성될 전망이다. 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내년 복지예산은 200조원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근로장려금(EITC), 전 국민 고용보험 추진, 취약계층 일자리 지원 등 복지혜택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특히 복지·일자리 예산 증가율은 2017년 4.9%에서 올해 10.7%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반면 올해 교육 예산은 전년 대비 2.2% 감소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복지예산이 전체 예산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데, 과도하게 지출이 늘어난 부분이 있다"며 "일자리 사업과 연계해 불필요한 유사사업은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또 연구개발(R&D) 분야에 한국판 뉴딜 2.0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사업을 포함할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데이터댐, 그린리모델링, 그린스마트스쿨 등은 ‘뉴딜 사업의’ 일환으로 예산이 대거 투입됐다. 김 교수는 "한국판 뉴딜 등의 슬로건식 사업에 예산을 대거 투입하고 있는 건 문제"라며 "차기 정부가 들어설 경우 문재인 정부의 슬로건 사업부터 구조조정이 들어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文 대통령 "확장 재정 필요"… 재정준칙은 공회전= 과도한 복지예산은 재정건전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미 현 정부 들어 ‘한국판 뉴딜’ 등의 슬로건 사업을 추진했지만 경제 성장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부는 앞서 한국판 뉴딜 2.0 사업을 수행하고자 2025년까지 총 220조원을 투입해 일자리 250만개를 만든다는 계획을 마련한 바 있다.
생산성 없는 재정 투입은 국가채무 부담으로 이어진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7년 660조2000억원이던 국가채무는 올해 2차 추경 기준으로 963조9000억원으로 커졌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7.2%를 나타냈다. 주요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낮은 편이지만 채무비율이 빠르게 증가한다는 점은 재정 당국인 기재부도 우려하고 있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예산 편성 당시에도 코로나19 상황을 강조하며 경제 전시상황 예산의 역할을 주문했고, 올해 역시 확장 재정 기조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이 직접 확장 재정을 주문하는 가운데 내년 예산 총지출 증가율은 최소 8~9%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재정 지출을 통제할 수 있는 재정준칙은 여전히 국회에서 공회전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60%,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 적자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논의는 사실상 진척이 없는 상태다. 현재까지 국회는 전문가 등 여론 수렴을 위한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았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재정준칙을 논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야당 역시 보다 엄격한 원칙과 기준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정부가 제출한 재정준칙을 반대하고 있다. 정부는 9월 정기국회에서 논의를 적극 이어갈 전망이지만, 이번 정부 임기 내에서 통과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예산-총세입의 예측 불균형= 예산과 총세입의 불균형 문제도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예산 편성 당시 예측한 전망치와 실제 세수실적이 차이가 나면서 매년 초과 세수가 발생하고 있다. 2017년 14조7556억원, 2018년 26조545억원을 기록한 후 지난해 6조2933억원의 초과 세수가 발생했다. 코로나19로 경제 상황이 급변함에 따라 올해 세수 추계 역시 빗나갈 가능성이 크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 연간 세수입은 추후 코로나19 상황에 달려 있다"며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될 경우 부가가치세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체 세수입 중 2위를 기록하는 부가세가 감소하면 전체 세수 흐름도 영향을 받게 된다. 국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부가세는 64조9000억원 걷혀 소득세(98조2000억원) 다음으로 규모가 컸으며 법인세는 55조5000억원 걷혔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세수추계 모델을 공개해야 국회에서 경제 상황 변화에 따른 변수 업데이트와 심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장세희 기자 jangsa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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