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13일 서울 중구 회현지하쇼핑센터 한 화장품 가게가 코로나19 여파로 폐업하고 문을 닫은 모습. /문호남 기자 munonam@
[세종=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하기 위해 진행된 올해 협상은 노사 양측의 전선 형성, 협상 목표, 명분 등이 크게 차이 나는 양상으로 흘러갔다. 경영계의 목표와 명분은 '8000원대 사수(인상률 3.1% 방어)·소상공인 자영업자 보호', 노동계는 '9270원 이상(인상률 6.3% 확보)·2년간의 부진 만회'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협상은 노동계의 압승으로 끝났고 경영계는 목적과 명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게 됐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 시국에 '9000원 시대'를 늦추지 못한 것이다.
정부 노동규제와 겹쳐…韓경제 전방위 직격탄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첫날인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홍대 거리가 평소보다 한산한 모습. 4단계 조치로 오후 6시 이전에는 4명까지, 이후엔 2명까지만 모일 수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올해는 최저임금 인상에다 고용노동부가 밀어붙인 규제 정책까지 겹치면서 경영 리스크가 매우 커졌다. 지난 7월 1~13일 2주간 사업주들이 받은 소식은 ▲최저임금 9000원 시대 도래 ▲50인 미만 계도기간 없이 주52시간제 적용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입법예고 ▲개정 노동조합법 의결로 해직자 사업장 내 노조활동 리스크 확대 ▲대리기사·퀵서비스(라이더 포함) 제외 12개 특수고용직(특고) 업종 고용보험 적용 등이다. 하나 같이 비용 증가, 경영 리스크 요인이다.
이런 까닭에 경영계가 내놓은 '소상공인·자영업자 보호' 논리를 마냥 식상한 주장이라고 치부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사장 입장에서 '남는 게 없는' 경영 환경에 부딪히게 된 이유가 코로나19 같은 재해 때문만이 아니라 정부 안팎의 정책 영향도 컸다는 저항이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경영계가 '코로나19 극복' 같은 추상적인 주장만 한 것은 아니다. 음식·숙박업을 구체적으로 지목하며 34년 만에 업종별 차등 적용을 하자고 밀어붙였다. 지역별 코로나19 확진자 추이와 방역 수준을 고려한 지역별 차등 적용 카드도 내놨다. '협상 초기 압박용' 아니냐는 의심보단 시의적절한 협상 카드란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표결에서 막혔고 이런 논리를 마지막 협상 무대인 9차 전원회의에서 제대로 관철하지 못했다.
끊이지 않는 산정기준 논란…업종·지역별 차등적용 주장은 묵살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왼쪽)이 지난 12일 밤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9160원으로 의결한 뒤 회의장을 바라보는 모습.(이미지 출처=연합뉴스)
경영계의 협상력만 나무라긴 어렵다. 최저임금위원회 중 의사결정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공익위원들이 노동계 의견을 받아들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1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최저생계비 수준의 최저임금 개혁, 적어도 문재인 정부 재임기에 박근혜 정부 연평균보다는 높은 7.5% 관철(내년도 인상률 6.3% 적용) 등을 요구했지만 공익위원들은 전혀 다른 산식을 내밀었다.
바로 '경제성장률(4.0%)+소비자물가상승률(1.8%)-취업자증가율(0.7%)' 공식이다. 공식이 최저임금 노동자보다 중위소득 노동자까지 포함한다는 점 때문에 거센 비판이 나왔다. 노동계가 제시하는 최저임금법 1조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 명분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 내내 공식보다 높은 인상률을 보여온 점도 문제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이 산식을 문재인 정부(2018~2022년도 최저임금) 재임기에 적용해보면 5년간(심의 시점인 2017~2021년 기준) 누적 경제성장률 11.9%, 소비자물가상승률 6.3%, 취업자증가율 2.6%를 고려해 15.6% 인상됐어야 했다. 실제로는 41.6% 올랐다.
노동계 달래기도 낙제점…민주노총 110만 총파업 결의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3가에서 주노총 조합원들이 노동법 전면 개정 등을 요구하며 도로를 점거한 채 전국노동자대회를 연 모습.(이미지 출처=연합뉴스)
올해 협상이 크게 비판받는 또 다른 이유는 노동계의 공감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9차 전원회의 종료 직전인 지난 12일 오후 11시19분 박희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부위원장이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면서 예고했듯 민주노총은 오는 10월20일 110만 총파업에서 최저임금 인상 폭을 문제 삼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10월 총파업은 지난해 말 당선된 양경수 위원장의 공약이기도 하지만 이 자리에서 최저임금 인상률이 너무 낮았다고 최임위를 규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를 내년 대선 국면의 주요 협상 카드로 내밀어 여권 후보자 측을 직접적으로 압박할 것이란 추측마저 나온다. 민주노총 측은 총파업에서 최저임금으로 인한 노동자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 소득 양극화 등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벼르고 있다.
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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