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국내 탄소중립 정책의 민관합동 컨트롤타워인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가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를 탄소감축 수단으로 인정할 지를 놓고 격론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환경부의 탄소중립 이행계획에 따라 오는 2050년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내연기관차를 전부 퇴출해야 한다는 강경파와 자동차 부품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현실론자가 대결하는 양상이다. 강경파 주장대로라면 자동차 내구 연한이 대략 15년 정도라는 점을 감안할 때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생산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위원회 뿐 아니라 산업통상자원부·자동차업계와 환경부간 갈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큰 만큼 탄소중립 정책 수립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탄소중립위는 최근 분과회의를 열고 '이퓨얼' 등 친환경 연료를 쓰는 내연기관차를 2050년 탄소감축 수단으로 인정할 지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일부 위원은 토론 과정에서 "이퓨얼은 사기"라며 감정 섞인 발언까지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퓨얼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얻은 뒤 이를 이산화탄소와 혼합해 만든 합성메탄올이다. 석유류보다 탄소 배출량이 적다.
탄소중립위의 결정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자동차업계의 명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현재 환경부는 2050년 전기차·수소차 100% 전환을 주장하고 있고, 산업부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를 탄소감축 수단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탄소중립위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과 함께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로드맵을 수립해 10월말 발표할 예정인데, 환경부 측에 무게를 싣는 의견이 적지 않다.
차 업계와 산업부는 '탈탄소 속도'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2050년 내연기관차를 전기차·수소차로 완전 대체할 경우, 국내 완성차 업체는 적어도 2035년부터 내수용 내연기관차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
현대자동차, SK에너지 등은 현재 이퓨얼 기술개발에 협력하고 있고, 산업부 역시 9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했다. 이퓨얼이 탄소중립 수단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지금까지 투입한 자금과 시간은 물거품이 된다.
정부 관계자는 "2050년 내연기관차를 완전 퇴출시킬 경우 완성차 업체는 당장 14년 후부터 국내 시장을 포기해야 한다"며 "약 3000개에 이르는 내연기관차 부품사는 생존의 위기에 내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계 관계자는 "탄소중립 필요성과 기업의 역할엔 공감하지만 과속 페달을 밟을 경우 국내 자동차 업계 특히 부품 생태계의 급격한 붕괴가 예상된다"며 "내연기관차를 미래차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이퓨얼 등 친환경 연료가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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