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세종=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한미 정상이 제3국 원전 수출에 협력하기로 합의하면서 '탈(脫)원전' 정책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선 탈원전 기조를 고수하고, 해외에선 원전 수출을 추진하는 현 정권의 자가당착이 또 한 번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2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공동성명을 통해 "원전사업 공동참여를 포함해 해외원전시장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최고 수준의 원자력 안전·안보·비확산 기준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은 원전 공급망을 구성해 해외원전시장에 공동참여하고, 원전공급시 해당국가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추가의정서 가입을 조건으로 내세우는 등 비확산 공동정책을 채택하기로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통적인 원전 강국인 미국의 기업들, 우수한 기자재 공급망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라카 원전 1호기 상업운전을 성공시킨 우리 기업들 간 최적의 해외 원전 공급망을 갖추게 될 경우 수주 경쟁력 제고와 양국 원전 생태계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양국이 해외 원전 시장 진출에 힘을 모으기로 하면서 그간 탈원전으로 인한 기술력 약화, 인력 유출로 무너진 원전 생태계 복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 러시아 등 주요 원전 강국이 신규 원전 사업을 속속 수주하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원전 수출 협력이 한국의 해외 시장 진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한미 원전 동맹을 계기로 탈원전 정책의 유턴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문 대통령은 2017년 탈원전을 선언하며 주요 배경 중 하나로 '안전'을 거론했다. "원전 안전성 확보를 나라의 존망이 걸린 국가 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대처하겠다", "(그동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후순위였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확고한 사회적 합의로 자리잡았다"고 했다. 대통령이 임기 초반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직접 탈원전을 선언해 놓고, 4년만에 한미 정상회담에서 원전 수출 협력을 발표한 건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국내는 원전 밀도와 지진 위험이 높아 추가로 건설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해외 수출과는 다른 사안이라는 설명이지만 '궁색하다'는 지적이다. 산업부 내부에서도 탈원전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당초 법을 통해 원전 의존도를 줄이려고 했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다 보니 정책적 결정이 이뤄졌고, 탈원전 정책의 부메랑 또한 고스란히 맞게 됐다"며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원전 감축은 불가피한데 탈원전 레토릭으로 원전 감축을 과속 추진한 게 사태를 키웠다"고 했다.
주민 반대 등 수용성 문제로 신규 원전 추가 건설이 어려운 상황인데도 현 정권이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정치적으로 탈원전을 급속히 밀어붙이다 보니 원전을 둘러싼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정부 인허가까지 받고 착공에 들어간 신한울 3·4호기 공사 중단은 현 정권 들어 일방적으로 추진된 탈원전 정책의 단적인 예다. 원전업계에선 이제라도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선회해 현실성 있는 에너지 전환 및 탄소중립 이행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편 이번 정상회담에서 제3국 원전 수출에 협력키로 한 미국은 최근 일부 원전의 수명을 최대 80년으로 연장했다. 이달초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1972~197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버지니아주 서리 원전 1·2호기의 2차 계속운전을 승인했다. NRC의 이번 결정으로 미국에서 80년 운전을 승인받은 원전은 총 6기로 늘어났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