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금융공기업들의 사내대출 규모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정부의 시중은행 대출 옥죄기와 배치되는 이율배반적 행태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대출 사태처럼 공적 영역에 속한 기업들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특권을 누리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대출의 명목이 생활안정자금ㆍ주택자금이었다는 점도 비판의 소지를 더욱 키우는 요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서민들의 금융애로와 주택시장 안정화를 명분으로 하는 대출 규제가 극대화되면서 실수요자들의 돈 줄은 막혔기 때문이다. ‘등잔 밑’은 방치한 채로 은행들에 대한 규제책만 쏟아내는 정부 또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대출 규제 터널 속 금융공기업은 ‘딴 세상’ = 29일 아시아경제가 입수해 분석한 자료를 종합하면 예금보험공사ㆍ신용보증기금ㆍ주택금융공사ㆍKDB산업은행ㆍ한국예탁결제원ㆍ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ㆍ서민금융진흥원 등 금융공기업 사내대출 증가폭은 주택 관련 대출규제 및 코로나19가 금융시장과 경제 전반을 강타하기 시작한 2019년 이후 눈에 띄게 커졌다.
생활안정자금과 주택자금을 합한 총대출이 2018년에는 385억8482만원으로 전년 대비 43억6622만원 증가하는 데 그쳤으나 2019년에는 459억4206만원으로 73억5724만원, 지난해에도 517억688만원으로 57억6481만원 뛰어오른 것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2019년 초고가 주택담보대출 금지를 시작으로 매매와 전세를 아우르는 내용의 강도 높은 주택 관련 규제를 줄줄이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코로나19의 여파가 본격화한 2월부터 금융권이 총동원되는 형태의 금융지원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는데, 대부분은 금융여력이 취약한 자영업자 등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은 지난해 9월 주요 시중은행들로부터 신용대출 증가율 관리목표를 제출받는 것을 시작으로 대출 억제를 계속해서 압박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치솟는 집값 때문에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내집마련’에 나서고 자영업자 등 서민층은 생계 때문에 단돈 몇 백만원이라도 대출받으려 은행과 보증기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면서 "보통사람들의 금융애로가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에서 금융공기업들의 사내대출이 ‘특권대출’로 보일 여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규제 무풍지대 금융공기업 ‘특혜복지’ 도마에 = 금융공기업의 ‘특혜성 사내복지’ 논란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특히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대출한도 규제가 금융공기업의 사내대출에는 적용되지 않는 등 허점 투성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사내복지라는 명목으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를 피해가는 것이 대표적이다.
가령 캠코의 경우 2년 이상 근속한 무주택 직원들을 대상으로 LTV 규제와는 별개인 보증부 대출을 지원하고 있다. 신보는 부동산 규제지역 여부와 상관 없이 LTV 한도의 70%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금융공기업들이 은행권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사내대출 금리를 잇따라 낮추는 상황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용보증기금의 경우 대출금리가 2.41~3.41%였을 때만 해도 생활안정자금 대출이용자는 부양가족이 있는 직원 9명에 불과했다. 규모도 2억500만원을 빌려 간 것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 상반기 2.24~3.24%로 금리가 내려가고 하반기에는 최저금리가 1.87%까지 떨어지자 14배가 넘는 129명이 대출에 몰렸다. 금액도 28억8000만원으로 훌쩍 뛰었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국감에서 이 같은 사실을 지적하고 "은행 대출 외에 사내 대출을 중복해 받을 수 있어 ‘규제 무풍지대’가 생기는 만큼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공기관 사내대출이 국민 정서와 정부 정책에 반하는 특혜로 비친다면 사회 통념상 타당한 수준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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