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업데이트 21.03.25 15:27

"1시간반 기다렸는데 실패"…연금가입도 하늘의 별따기(종합)



[아시아경제 성기호 기자, 송승섭 기자]“고객님, 죄송합니다. 녹음기가 오류나서 상품 설명을 다시 읽어주시겠어요?”(서울 서대문구 A은행 창구 직원)
“상품 설명 녹취 인증을 받아야는데 계속 실패가 뜨네요. 그룹에 확인해볼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서울 중구 B은행 담당 직원)
금소법 시행 첫 날인 25일. 우려했던 것 보다 금융소비자가 은행 상품을 가입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고 오래 걸렸다. 코로나19로 비대면이 활성화되면서 창구를 찾는 고객들은 평소처럼 많지 않았지만 일부 지점에서는 시스템과 사전 정보가 미흡해 직원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속속 노출됐다. 또 상품 가입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면서 진땀을 흘리는 직원들과 불만을 표출하는 고객의 모습도 발견됐다.
이날 기자가 직접 연금펀드상품 가입을 위해 서울 명동 지역의 B은행을 방문했다. 창구 의자에 앉자 판매직원은 금소법 6대 판매규제 중 하나인 '적정성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 창구에 마련된 태블릿PC를 통해 기자의 투자성향 분석을 시작했다. 기존에는 자체적으로 마련한 질문지에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지만, 금소법 시행으로 주요 설문 내용을 육성으로 고객에게 전달하며 30분 가량 소요됐다. 행원이 가장 강조했던 점은 "원금보장형 상품도 원금이 100%까지 손실을 볼 수 있고, 예금처럼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부분이다.
기자의 투자성향을 안내받은 후 곧바로 설명의무 이행 확인이 시작됐다. 이를 위해 판매직원은 스크립트와 녹음기를 내놓았다. 스크립트는 A4 4장 분량. 상품 설명이 꼼꼼하게 담긴 스크립트는 직원과 고객이 번갈아 읽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었다. 직원이 "녹취자료는 10년간 보관되고 고객께서 요청하는 경우 제공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린 뒤 투자하는 상품의 특성과 위험 유무, 최대손실가능금액, 조기상환과 환매조건 등을 모두 읊는다. 직원의 설명이 끝나면 고객이 직접 녹음기에 상품 특성을 이해했다고 알리면 완료된다.
담당 직원은 어제까지는 이런 과정이 없었지만, 이날부터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되면서 녹음이 필수적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은행 직원도 처음 해보는 녹취라 녹음기 작동 오류로 스크립트의 같은 부분을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시간이 5분 이상 더 소요됐다. 20여분의 녹음 과정이 끝나자 이번에는 20여분의 녹음 과정이 끝나자 이번에는 녹음이 제대로 저장됐고, 고객과 직원의 음성이 명확하게 담겼는지 확인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시스템 오류 탓인 지 녹취 확인이 되지 않았고 현장 직원은 그룹에 검증작업을 마쳐야 한다고 설명하며 다시 대기를 요청했다. 그룹에서는 녹취를 확인할 수 없으니 예외 사유를 적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고 통보했다. 또 다시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고 결국 그룹 IT팀에서 녹취가 안된 것 같으니 다시 녹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상품 가입을 위해 소요된 시간만 총 1시간30분. 기자는 다시 녹음을 해야 한다는 설명에 결국 상품 가입을 포기했다.
해당 직원에 따르면 전일 일부 고객을 대상으로 한 시범 실시 과정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녹취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파일이 시스템에 저장되지 않은 것이다. 은행 측은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하고 난 다음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녹취 파일이 누락된 고객을 다시 불러 녹음과정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품 설명에 추가적 시간 많이 들어…업무 과부하로 영업실적 하락 우려"



이처럼 각 은행 지점마다 준비 미흡으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속속 발견됐다. 서울 종로구의 C은행 관계자는 “비교적 간단한 상품을 가입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면서 고객들이 불만을 제기할 수 밖에 없게 됐다”면서 “고객과 실랑이를 할 수도 없는데 아무래도 잦은 마찰이 생길 것 같아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이 은행을 찾은 직장인 이성인(32세·가명)는 "회사에 사정을 설명하고 잠깐 상품 가입을 위해 나온 길이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면서 “앞으로 은행 업무를 볼 때 반차를 써야 하는지 고민될 정도"라고 읍소했다.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서울 광화문 지역에 위치한 D은행 지점 관계자는 "상품 철회 등 설명이 추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늘어나면서 업무 과부하로 고객 응대하는 데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본다"며 "전체적으로 영업실적 하락으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걱정했다.
금소법이 시행 됐지만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가이드라인이 문제다. 대표적으로 고객이 위법계약해지 보상을 요구했을 때 은행이 보상해야 하는 범위가 모호하다. C은행 지점 관계자는 "판매규칙 재정립과 전산 시스템 구축에 여전히 시간이 촉박하다"며 "당국이 명확한 시행세칙을 제시하지 않아 현장에서도 100% 모든 문제에 대응 가능한 방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한편 금소법은 6대 판매규제를 모든 금융상품으로 확대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판매규제는 ▲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 과장광고 금지를 의미한다.
이를 위반한 금융사에는 관련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고, 판매한 직원에게도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물린다. 금융사 판매 직원의 적극적 권유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은행들이 가장 신경 쓰는 규정은 '손해배상 입증책임'이다. 소비자가 고난도상품(원금 손실 가능성 20% 넘는 상품)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투자한 뒤 손실을 본 뒤, 소비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는 것을 금융사가 증명해야 한다.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전체 뉴스 순위

칼럼/MG툰

English News

전체보기

유튜브

전체보기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