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김봉주 기자] 서울 강남구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A씨는 고급 아파트에 사는 등 호화 생활을 하면서도 소득세를 비롯한 27억 원의 세금을 내지 않아 국세청의 체납자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국세청은 징수할 수 있는 A씨의 자산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A씨가 자신의 수입을 국세청의 손이 닿지 않는 가상자산으로 바꿔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국세청이 가상자산을 강제로 징수할 수 있게 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국세청이 약 39억 원의 A씨가 은닉한 가상자산을 압류하자 그는 곧바로 세금을 전부 납부했다.
지난 1월 압류 당시 가상자산 가치는 비트코인 1개당 약 4,000만 원이었는데, A씨는 가상자산 가격이 이보다 더 오를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15일 국세청은 국세 체납자 중 가상자산을 보유한 2,416명을 찾아내 총 366억 원을 현금으로 징수하거나 채권으로 확보했다고 밝혔다.
다수의 체납자들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현금이나 부동산, 주식 등의 실물자산 대신 가상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국세청은 체납자들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보유한 자산을 출금할 수 없도록 막아 세금을 환수했다.

경기도에 있는 부동산을 48억원에 매각한 또 다른 체납자는 양도소득세 12억원을 납부하지 않고 버티다가 가상자산 12억원어치를 보유한 사실이 이번에 적발됐다. 그는 결국 가상화폐를 팔아 체납한 양도세를 전액 납부했다.
이같은 환수가 가능했던 건 그간의 판례와 법 개정 덕분이었다. 지난해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과, 2018년 대법원 판결 등으로 재산으로서의 가상자산 지위가 분명해졌다.
이를 근거로 국세청은 올해 초 빗썸, 업비트 등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로부터 체납액 1,000만 원이 넘는 체납자의 가상자산 보유 현황을 받아 압류하기 시작했다.
강제 처분 예고에 가상화폐 가치가 더 올라갈 것으로 판단한 체납자들은 알아서 세금을 내기 시작했다.
가상자산은 앞으로 수익을 숨겨 놓는 창구로 활용되지 못할 전망이다. 25일 특정금융정보법 시행 등에 따라 가상자산을 통한 세금 회피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 관계자는 "특정금융정보법에 가상자산이 포함되는 25일부터는 가상자산거래소에도 불법재산 의심 거래, 고액 현금거래 등을 보고할 의무가 생겼다"고 전했다.
한편 고액 상습체납자의 은닉 재산에 대해 신고하면 징수금액에 따라 5~20% 지급률이라 최대 20억 원까지 포상금이 지급된다. 신고는 국번 없이 126번이나 각 지방 국세청에 신고센터가 마련돼 있다.
김봉주 기자 patriotb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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