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충족 수요·임상 PoC·엑시트 전략 강조…"한국, 기술력 있지만 스토리텔링·사업개발은 보완 과제"
(왼쪽부터) AusBiotech 투자 케리 리 싱클레어 디렉터, Vertical 제이슨 힐 CSO, Vesalius Biocapital 장-크리스토프 르농댕 매니징 파트너, Anomaly 바수데브 베일리 CEO, Blue Ocean Capital 프랭크 양 CEO,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 허경화 대표
[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글로벌 바이오 투자 시장이 단순 침체가 아닌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섰다는 진단이 나왔다. 자본은 여전히 시장에 존재하지만 투자자의 판단 기준이 까다로워지면서 기술 자체보다 임상적 가치와 글로벌 확장성, 후속 자금 조달 전략, 파트너십 가능성에 대한 입증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에 대해서는 글로벌 투자자와 파트너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환자 가치와 시장 가치로 풀어내는 스토리텔링, 사업개발 역량,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28일 열린 BIO KOREA 2026 '제약바이오 혁신을 위한 글로벌 투자 지형 Part.1' 세션에 글로벌 VC 전문가들이 참석해 바이오 투자 시장의 최신 흐름과 기업 평가 기준, 임상 단계별 투자 전략, 기술 사업화 가능성 등을 논의했다.
해당 세션에는 AusBiotech 케리 리 싱클레어(Kerri Lee Sinclair) 투자 디렉터, 버티컬(Vertical) 제이슨 힐(Jason Hill) 최고전략책임자(CSO), 베살리우스 바이오캐피털(Vesalius Biocapital) 장-크리스토프 르농댕(Jean-Christophe Renondin) 매니징 파트너, 애노멀리(Anomaly) 바수데브 베일리(Vasudev Bailey) CEO, 블루오션캐피털(Blue Ocean Capital) 프랭크 양(Frank Yang) 창업 파트너 겸 CEO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투자 기준 바뀐 글로벌 바이오 시장…"자본 있지만 선별적으로"
이날 패널들은 현재 바이오 투자 시장을 단순한 유동성 축소보다 '기준의 변화'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자본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투자자가 요구하는 준비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싱클레어 디렉터는 "자본은 여전히 투입되고 있다. 다만 투자자들이 훨씬 더 선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과거에는 기업이 현재 단계에 맞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 통했지만, 이제는 현재 임상 단계뿐 아니라 향후 상업화 전략과 후속 투자 유치 가능성까지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바이오 기업은 현재 기술이) 임상 1상 단계에 있다면 그 이후의 상업화 전략과 누가 다음 단계 자금을 댈 것인지까지 생각해야 한다"며 "이런 질문에 답할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자본 조달에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힐 CSO는 "글로벌 바이오 투자 환경이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섰다"며 "기술 중심의 피치와 기술적 매력만으로 관심을 받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제는 기업이 시장에 어떤 가치를 가져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기술을 갖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 기술을 어떻게 사업화하고, 어떤 의료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르농댕 매니징 파트너는 현재 투자 시장 상황에 경기적 요인과 구조적 변화가 함께 존재한다고 짚었다. 동시에 투자 방식도 바뀌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시장 유동성이 줄었고, 기업과 펀드 모두 자금 조달에 이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엑시트 시장도 예전 같지 않아 투자금을 회수하고 다시 재투자하는 순환이 원활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이어 "우리는 이제 플랫폼보다 개별 자산을 더 보고 있다"며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해당 자산을 매각하거나 파트너링할 수 있을지 훨씬 앞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베일리 CEO는 초기 기업이 단순히 흥미로운 전임상 데이터를 보유한 것만으로는 투자자를 설득하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좋은 기업은 언제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며 "공모시장에도 임상 단계 자산을 보유했지만 현금이 부족한 기업이 많다. 초기 비상장 기업은 실제 임상 자산을 가진 기업들과도 경쟁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좋은 과학, 좋은 데이터와 함께 자본을 효율적으로 쓰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져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싱클레어 디렉터는 "자본을 단순히 머리를 두드리는 망치처럼 봐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며 "자본은 회사와 아이디어 안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충족 수요·임상 PoC·엑시트 전략…파트너십 문턱 높아졌다
이날 글로벌 투자자들은 투자 판단의 핵심으로 미충족 의료수요, 차별화된 기술, 데이터, 임상적 개념입증 등을 꼽았다.
양 CEO는 "바이오 투자에서 가장 먼저 보는 요소는 혁신성과 차별성"이라며 "같은 분야 안에서도 경쟁자 대비 더 나은 기술과 더 좋은 데이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직 충족되지 않은 의료 수요도 중요하다"며 "신경과학이나 암처럼 여전히 충분한 치료 성과를 내지 못한 분야가 많다. 실험실의 혁신을 시장까지 끌고 갈 수 있는 팀 역량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르농댕 매니징 파트너는 환자에게 실질적 혜택을 줄 수 있는지가 투자 판단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항암 분야에 대해 "딜 플로우는 많지만 개발은 매우 복잡하다"며 "기술의 혁신성, 지식재산권, 그리고 환자에게 실제로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가 모두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이어지기 위한 조건으로는 진전된 임상 개발 단계가 제시됐다. 르농댕 매니징 파트너는 "매우 획기적인 신기술이 아니라면 대형 제약사가 임상 1상 단계만 보고 움직이기는 어렵다"며 "최소한 안전성과 효능 신호가 확인되는 임상 2a상 수준의 개념입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힐 CSO는 파트너십은 기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파트너십은 기술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신뢰 위에 세워진다"며 "대형 제약사와 의료 시스템은 모두 리스크를 피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함께 일하고 싶은 파트너와 가까이에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엑시트 전략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르농댕 매니징 파트너는 IPO를 최종 엑시트라기보다 추가 자금 조달 수단에 가깝게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관점에서 IPO는 엑시트가 아니라 파이낸싱"이라며 "상장 이후에도 유동성이 충분하지 않으면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르농댕 매니징 파트너는 "한국에서는 IPO를 주요 엑시트 경로로 보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며 "글로벌 투자자와 협력하기 위해서는 초기부터 투자자와 경영진이 엑시트 방향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떻게 엑시트할 것인지에 대해 투자자와 회사가 완전히 정렬돼 있는지"라고 부연했다.
크로스보더 전략도 달라지고 있다. 양 CEO는 최근 아시아에서 라이선싱, 조인트벤처, 뉴코(NewCo) 설립 등 다양한 방식의 거래가 늘고 있다며 "특정 자산을 별도 회사로 분리해 가치를 키운 뒤 다시 매각하거나 엑시트하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Vesalius Biocapital 장-크리스토프 르농댕 매니징 파트너, Blue Ocean Capital 프랭크 양 CEO, Vertical 제이슨 힐 CSO
글로벌 투자자 'K바이오' 기술·제조 경쟁력 인정…과제는 '설득력'
이어진 인터뷰에서는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의 강점과 보완 과제에 대한 제언이 나왔다.
힐 CSO는 한국 바이오헬스 기업의 기술력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기술력이 곧바로 글로벌 투자와 파트너십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힐 CSO는 "한국 바이오헬스 기업들은 AI 진단, 정밀의료, 병원 IT 시스템, 웨어러블 모니터링 등에서 진정으로 세계적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글로벌하게 앞서가고 있다"면서도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은 특정 시장 맥락에서 실제 임상적 또는 운영적 가치를 입증한 기업들이다. 성공 기준은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르농댕 매니징 파트너는 한국의 강점으로 바이오 제조 역량을 꼽았다. 다만 글로벌 투자자와 협력하려면 투자 조건과 거버넌스도 글로벌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르농댕 매니징 파트너는 "한국은 제조 측면에서 매우 잘 알려져 있다. 바이오 제조와 CMC 역량은 한국이 가진 큰 자산"이라면서도 "초기 기업일수록 현지 투자자와 글로벌 투자자 사이의 권리, 조건, 의사결정 구조가 유럽·미국·중국 시장에서 통용되는 방식과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양 CEO는 한국과 아시아 기업이 기술력과 실행력에서는 강점을 갖고 있지만, 글로벌 사업개발과 커뮤니케이션 역량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같은 자산이라도 누가, 어떤 네트워크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디지털헬스 분야에서는 북유럽이 한국 기업의 유럽 진출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특히 최근 발생한 미-이란 사태에 따른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오히려 한국과 유럽 간 협력 통로를 강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힐 CSO는 "일부 시장은 진입이 더 복잡해지고 있지만, 디지털헬스에는 국경이 없다"며 "좋은 AI 진단 도구, 환자 경로 관리, 웨어러블 모니터링, 병원 정보 시스템은 모든 의료 시스템이 풀고 싶어 하는 문제다. 한국 헬스케어 기업에게 유럽 파트너십은 더 매력적이고 전략적으로 중요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북유럽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안정적이고 규제가 투명하고, 주요 지정학적 갈등의 한가운데 있지 않다"며 "장기적인 유럽 거점을 고민하는 한국 기업에는 이런 안정성이 매우 가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만 유럽 진출을 위해서는 현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한국 바이오 기업은 단순한 기술력 입증을 넘어선 글로벌 설득력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기술과 데이터, 임상 개발 역량을 갖춘 기업이라도 이를 환자 가치와 시장 가치, 파트너십 전략으로 연결하지 못하면 글로벌 자본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는 의미다.
베일리 CEO는 "결국 모든 것은 사람으로 귀결된다"며 "때로는 최고의 데이터가 가장 많은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스타트업 투자에서 팀과 크로스보더 실행 역량, 자본 여정에 대한 설득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