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06.20 01:59최종 업데이트 25.06.20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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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 형사처벌 면제가 '의사에 대한 특권'?…"환자 살리기 위해 필요한 제도"

형사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필수의료 기피하고 방어진료 늘어…피해자 구제제도 강화하고 형사처벌 제한 필요

왼쪽부터  대한의사협회 김성근 대변인, 이준석 변호사, 이동진 변호사. 사진=KMATV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로 꼽히는 의료사고 형사 부담 완화 대책이 의사에 대한 '특권'으로 비춰지며 제도화되지 못하고 있다.

의료계는 물론 법조계에서도 의사들이 마음껏 의술을 행할 수 있는 안전한 의료환경 마련을 위해서는 필수의료에 한해 형사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9일 '사단법인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이 서울변호사회관에서 '의료책임제한법 필요성과 문제점' 세미나를 개최한 자리에서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됐다.

해외, 의료사고 민사로 해결하거나 배상제도 갖춰…"환자 살리는 의료진, 국가 차원 보호 필요"

이날 대한의사협회 김성근 대변인(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교수)는 우리나라의 잦은 의료사고의 형사소송 제기가 사람을 살려야 할 의사들을 의료현장에서 떠나가게 만든다고 지적하며, 필수의료 분야 의사에게 형사처벌 면제를 '특권'이 아닌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제도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17년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 사망 사건의 담당의들이 법정 구속을 당했다가 무죄 선고를 받은 사건, 태아 사망 사건에서 형사 재판 1심 유죄를 받은 사건 등으로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과로 불리는 전문과 전공의 기피 현상이 극심해졌다.

김 대변인은 "대부분 나라는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본적으로 형사처벌을 바라지 않고, 대개 민사 배상으로 해결한다. 영국과 캐나다는 국가 차원에서 1차로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한 뒤 구상권을 청구한다. 미국은 자본주의적 의료제도를 갖고 있지만 의료사고는 민사재판으로 해결하고, 필요할 때 징벌적 배상제도를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독일도 업무상 과실치사상죄가 있어 의료사고 시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하지만, 중과실에 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라서 1년에 형사소송이 제기되는 건수도 적지만, 유죄 선고가 나는 케이스도 의사가 환자를 해할 명확한 의도가 있는 경우가 아닌 이상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이처럼 의료사고에서 형사처벌을 피하고, 민사로 해결하거나 국가 보상이나 배상제도를 갖고있는 나라의 사례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결국 어려운 일을 하고, 환자를 살려야 하는 의료진을 국가 차원에서 보호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환자, 시민단체들은 그간 의료계가 주장해왔던 ‘의료사고 처벌특례법’에 대해 의사 특권을 이야기하며 반대하고 있다.

김 대변인은 "형사면책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결코 특권을 달라는 것이 아니다. 의료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야 열심히 일할 수 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더 이상 의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를 살리도록 움직이지 않는 사회가 되고 있다. 괜히 환자를 수술했다가 환자를 살리지 못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의사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김 대변인은 의료사고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대신 피해자 구제를 위한 의료배상 공제 조합 및 국가 우선 배상제 등의 제도 등 방안, 의료사고 심의 기구 혹은 조사기구를 통해 객관적인 조정이 이뤄지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있지만 환자와 의료진 양쪽 모두 불만이 있는 만큼 전문가가 참여하는 별도 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또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 제도가 현재 산부인과 태아분만 사고에만 적용되고 있는데, 다른 분야로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제시한 '사과법'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그는 "우리나라는 사과나 유감을 표명했을 때 향후 민형사 소송에서 굉장히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통념이 있다. 그렇다보니 병원에서 피해자와 의료진을 분리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과법이 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없다면 의사로서는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굉장히 힘들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대변인은 "의사들의 '형무소의 담장을 걷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끝나길 바란다"며 "환자를 살리는 역량있는 의사가 최근 하나 둘 떠나고 있다. 이들을 붙잡아 두지 못하면 많은 환자들이 삶을 유지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암울한 미래를 경고했다.

불확실성·위험성 내포한 의료행위, 형사책임 제한 필요…"고위험 환자 기피 불이익, 환자에게"

대한의사협회 법률자문단 변호사인 이준석 변호사는 "의료인은 생명을 다루는 직업적 특수성으로 인해 높은 책임이 있으나 동시에 진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가피한 결과로 인해서 형사책임이 위험에 상실 노출돼 있다"며 "진료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합병증이 생긴다든지 통제 불가능한 신체 반응에서 환자의 상태가 악화된다든지 이런 것은 전적으로 의료행위 과실로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의료인에게 형사책임을 물 수 있는 현행 법체계는 의료진에게 방어 진료라, 고위험 진료 기피, 응급 의료 회피 등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

이에 이 변호사는 의료행위라는 것이 그 특성상 본질적으로 불확실성과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에 형사책임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환자의 개별적 체질이 다를 수 있고, 시술 중에 발생한 변수 등은 의료인이 사전에 통제한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결과나 합병증조차 형사 고소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현행 법체계는 의료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게 될 수 있고, 의사의 진료 자율성과 전문성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문제다"라고 말했다.

또 이 변호사는 "형사책임 부담은 의료인에게 심리적 위축을 불러와서 소극적 진료 이른바 방어 진료를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의료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그 결과 형사책임 위험을 면피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검사와 전원 조치를 한다든지, 고위험 환자를 기피할 경우 그 불이익은 환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전했다. 

응급의학이나 산부인과 소아과 등 고위험 진료 분야의 인력 이탈과 진료 공백이 초래될 수 있고 이는 결국에는 국민 생명 건강권 침해로 직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이 변호사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도입을 통해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아닌 한 형사처벌을 면제하고 독립적 논쟁 조정 기구를 통한 비형사적 해결을 유도함으로써 분쟁이 신속하고 합리적 해결을 가능하게 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환자·의료진 의견 차 커…"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공적 보상 범위 확대로 절충"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상임 조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동진 변호사는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을 둘러싼 환자와 의료진의 의견 차를 지적하며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방안을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환자들은 의료 소송에서 과실 및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 책임을 의료인에게 완전히 전환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의료인 측에서 받아들이기 굉장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 측의 주장을 외면한 채 의료인의 민형사 책임을 줄이는 방향으로만 정책을 이끌기도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그는 "결국 불가항력 의료사건에 대한 공적 보상 범위를 넓히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 의료분쟁은 대부분 의료인 과실에 의한 것인지 불가항력적인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과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범위와 별개로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사회 보장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 제도는 평가 부분에서 과거 3000만원에서 3억원까지 확대됐다. 현재는 산부인과 분만에 한정돼 있지만, 앞으로는 소아과 부분 등 필수 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확대돼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물론 재원의 한계가 있으므로 그 범위를 사망, 중한 장애 등으로 제한해서 운영될 필요는 있다고 보인다. 정부도 2025년 3월 2차 의료개혁 실행 방안 발표에서 책임보험 가입 의무와 아동 보상심의위원회 직제 개편에서 책임보험 상품이나 국가 재정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심의하도록 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밝혔다"고 전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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