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추계 모범 ACMMP, 전문과목별 추계…전문의 증원 결론에도 자료 미비하자 의대정원은 유지 권고
국내 추계위는 거꾸로 전체 의사 수 추계…추계위원들 자료 부족 지적에도 결과 내놓기 ‘급급’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의사인력 수급추계 결과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모범 사례로 꼽히는 네덜란드의 추계기구는 전문의 인력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추계 결과에도 불구하고 관련 자료 미비를 이유로 의대정원을 유지하라고 권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런 의견을 수용하기 위해 기존에 추계기구 권고 대비 소폭 높았던 의대정원 규모를 되레 축소했다.
추계위원들의 자료 부족 지적에도 2027년도 의대정원을 결정해야 한다는 이유로 서둘러 추계 결과를 내놓고, 이를 기반으로 정부가 의대증원을 추진하고 있는 국내 상황과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11일 메디게이트뉴스가 네덜란드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ACMMP)가 지난 2022년 발간한 의사 수급추계 관련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ACMMP는 전문과목별 신규로 수련 과정에 들어와야 할 의사 수(연간 전공의 총 정원)를 추계한 후 이를 기반으로 의대정원을 권고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ACMMP는 의료 공급과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50여개 변수를 반영한 모형을 통해 31개 과목의 필요한 신규 유입 전공의 수를 산출한다. 이 과정에서 각 전문과 학회 관계자, 병원 경영진, 보험사, 정책연구자 등을 포함한 250명 이상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델파이 조사 결과도 반영한다.
ACMMP, 50여개 변수 반영해 추계…전문학회 관계자 등 전문가 인터뷰도 진행
ACMMP 관계자는 메디게이트뉴스에 “공급 측면에서는 신규 전공의 유입 규모, 수련 완료율, 외부 이탈률, 전문의 유출 규모, 수요 측면에서는 인구 추계와 연동된 과거∙현재 데이터에 더해 정책 등 사회∙문화적 변화, 역학적 변화, 업무 프로세스 변화 등을 고려해 미래 변화를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다양한 도구를 결합하고 불확실성을 함께 고려하는 게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추계를 가능하게 한다고 판단한다”며 “전문과목 의사들의 의견도 함께 반영한다. 이들은 새로운 변화가 자신들의 업무에 미칠 영향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ARIMA 모형에 대해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ACMMP는 필요한 신규 전공의 유입 수를 1221명으로 권고하며, 31개 전문과목별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2019년 권고치에 비해 2.9% 늘어난 수치였다.
이 같은 네덜란드의 방식과 달리 국내 의사인력 수급추계는 필요한 전체 의사 수를 먼저 산출해 발표했다. 현재 제기되는 의사 부족 주장이 산부인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등 소위 필수과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것과는 괴리가 있는 셈인데, 의대정원을 서둘러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추계위 위원은 “전문과목별로 추계를 하기 위해선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며 “추계위가 의정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급하게) 결성되면서 2027년도 의대정원 결정을 위한 시간적 제약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전체 의사 수가 아니라) 전문과목별, 지역별 수급까지 고려하는 추계 방식으로 가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韓 추계위는 의정갈등 해결 위해 결성…의대정원 결정 시한에 쫓겨
ACMMP는 이 같은 추계 결과를 기반으로 의대정원도 함께 권고한다. 전문과목별로 필요한 의사 수가 산출됐으니 그에 맞춰 적절한 의대정원을 권고하는 방식인 셈이다.
주목할 부분은 2022년에는 전문의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대정원 권고 수치는 3년 전인 2019년에 제시했던 2850명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신규 유입 전공의 인력 풀이기도 한 일반의들의 수련 수요, 수련을 받지 못하고 적체돼 있는 일반의 규모 등의 데이터가 불확실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과거 추계 때와 달라진 유럽 개인정보보호규정 탓에 해당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ACMMP는 먼저 추가 연구를 완료한 후에 의대정원 규모를 재산정할 필요가 있다며 기존 권고치인 2850명을 유지했다. 대신 2023년에 추가 조사를 실시해 신중하게 정원을 책정하라고 정부에 제안했다. 이에 정부는 ACMMP의 권고를 최대한 수용하기 위해 2024년도 의대정원을 기존 3050명에서 3015명으로 감축했다.
반면 우리나라 추계위의 경우 위원들 사이에서 추계에 필요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음에도 추계 결과를 서둘러 발표했다. 정부는 이를 기반으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의대정원을 논의하고 있는데, 사실상 증원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의대정원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줄이겠다는 추계위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실제 한 위원은 9차 회의에서 “미국이나 네덜란드처럼 많은 요소를 고민하고 봐야 한다”며 “준비가 안 돼 있으니 기존에 했던 대로 가자는 분위기로 몰아가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정재훈 추계위원(고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도 추계 결과 발표 후 SNS를 통해 “가장 뼈아픈 부분은 자료원의 한계”라며 “우리가 실제로 검토할 수 있었던 자료는 기존 연구들에서 아주 약간만 더해진 수준에 불과했다. 여전히 많은 불확실성과 한계를 내포한 데이터, 딱 그 정도의 재료로는 결국 그 정도 수준의 결과물밖에 만들어낼 수 없다”고 했다.